목차
1. 교재 2강은 여러 철학자들의 다양한 인간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 교재 3강은 유가와 도가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 교재 5강은 행복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2. 교재 3강은 유가와 도가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 교재 5강은 행복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내용
물질주의, 자본주의의 사회인 지금, 우리의 행복의 기준은 물질적인 수단이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만족 된다면, 그것이 행복과 직결된다. 과거에는 이러한 욕구의 충족이 행복은 아니었다. 물질적인 것에 의존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물론 속으로는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어쩔 수 없다고 보아야겠다. 없는 것과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삶, 이것은 너무도 힘든 것이다. 이렇게 눈앞에 있는 것만 보다가는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에피쿠로스의 입장을 보자. 우리의 현실과 비슷하다. 마냥 돈만 바라보다가 사랑을 잃는 경우 등 TV를 보면 뉴스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어쩔 수 없이 현실의 고통은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는 것이다. 야스퍼스도 말한다. 우리는 고통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며, 이것은 피할 수 없다. 당연한 상황이라는 것이며,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 자체로 인해 고통스러움을 인식한다고 한다. 우리는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 고통의 인식이 더 힘들게 우리를 만든다. 아무리 행복함을 알고 있어도 그것이 사라진 순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없어지면 슬픈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상실감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 이유까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을 하이데거가 \"피투\"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고통에 던져졌다. 이렇게 이해하면 더 쉬울 것이다. 고통의 원인,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도 있으나 언제나 찾아올 죽음도 있다. 우리는 인간의 정해진 시간, 즉 실존적 조건에 있다. 그래서 스토아학파는 잘 살기 위해서 잘 죽는 법을 배우자고 하였고, 실존철학에서 죽음에 관한 것을 다룬다. 인간의 불안,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돈을 벌기 위하여 살아가고, 결국에는 그것을 모으기 위해 살아가는 삶,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세상. 하지만 그런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정말 행복을 살 수 있는가? 우정과 사랑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철학자는 여기서 쾌락의 역설이라고 한다.
계속된 물질적 욕구는 결과적으로 불만족과 허무함을 남긴다. \"배부른 돼지\"로 살아가도 마지막은 그 돈을 가지고 갈 수 없는 죽음이 있는데 돈으로 편리함을 사는 세상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철학자들이 욕망과 이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덕적인 삶과 이성적인 삶이 행복을 가져올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행복을 자신의 완성이라고 했지만, 이것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렇겠지만, 또 아닌 사람에게는 힘들고 불행한 것이 아닐까? 행복을 위해서는 나를 찾아야 한다. 나의 욕구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것부터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왜 기준이 타인에게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타인이 아닌 내가 나를 온전히 마주 보아야 한다. 나만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이 문제를 떠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사회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강조한다.
어쩔 수 없이 현실의 고통은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는 것이다. 야스퍼스도 말한다. 우리는 고통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며, 이것은 피할 수 없다. 당연한 상황이라는 것이며,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 자체로 인해 고통스러움을 인식한다고 한다. 우리는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 고통의 인식이 더 힘들게 우리를 만든다. 아무리 행복함을 알고 있어도 그것이 사라진 순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없어지면 슬픈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상실감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 이유까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을 하이데거가 \"피투\"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고통에 던져졌다. 이렇게 이해하면 더 쉬울 것이다. 고통의 원인,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도 있으나 언제나 찾아올 죽음도 있다. 우리는 인간의 정해진 시간, 즉 실존적 조건에 있다. 그래서 스토아학파는 잘 살기 위해서 잘 죽는 법을 배우자고 하였고, 실존철학에서 죽음에 관한 것을 다룬다. 인간의 불안,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돈을 벌기 위하여 살아가고, 결국에는 그것을 모으기 위해 살아가는 삶,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세상. 하지만 그런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정말 행복을 살 수 있는가? 우정과 사랑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철학자는 여기서 쾌락의 역설이라고 한다.
계속된 물질적 욕구는 결과적으로 불만족과 허무함을 남긴다. \"배부른 돼지\"로 살아가도 마지막은 그 돈을 가지고 갈 수 없는 죽음이 있는데 돈으로 편리함을 사는 세상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철학자들이 욕망과 이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덕적인 삶과 이성적인 삶이 행복을 가져올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행복을 자신의 완성이라고 했지만, 이것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렇겠지만, 또 아닌 사람에게는 힘들고 불행한 것이 아닐까? 행복을 위해서는 나를 찾아야 한다. 나의 욕구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것부터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왜 기준이 타인에게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타인이 아닌 내가 나를 온전히 마주 보아야 한다. 나만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이 문제를 떠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사회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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