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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가 결혼하였지만 실패하고 3개월 뒤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하고 만다. 어찌 한 여인의 운명이 이토록 애닯고 고달플 수가 있을까.
고국을 떠난 지 37년만인 1962년 1월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어느 누구도 반기는 이 없었다. 호적도 귀국후 20년만인 1982년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조선의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서 가장 냉대 받으며 어느 곳에서도 반기는 이 없이 외롭고 고달프게 산 삶이었다.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낙선재에서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洪裕陵)에서 피곤한 육신을 쉬고 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 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덕혜옹주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고국을 떠난 지 37년만인 1962년 1월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어느 누구도 반기는 이 없었다. 호적도 귀국후 20년만인 1982년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조선의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서 가장 냉대 받으며 어느 곳에서도 반기는 이 없이 외롭고 고달프게 산 삶이었다.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낙선재에서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洪裕陵)에서 피곤한 육신을 쉬고 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 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덕혜옹주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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