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책 내용
1. 제 1부 : 기존 연구, 한국전쟁 발발 기원론 검토
(1)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2)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주도설
2. 제 2부 : 35년 전 나의 추론의 요지
(1) 중·소 양국의 갈등·대립 구조
(2) 스탈린의 전쟁 의도와 중국의 참전 동기
3. 제 3부 : 나의 추론이 타당한 이유와 그 근거
(1) 한국전쟁 발발 이전의 논거
(2) 한국전쟁 발발 이후의 논거
(3) 전쟁의 결과와 영향, 그리고 중국의 참전동기
Ⅲ. 느낀 점
Ⅳ. 참고문헌
Ⅱ. 책 내용
1. 제 1부 : 기존 연구, 한국전쟁 발발 기원론 검토
(1)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2)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주도설
2. 제 2부 : 35년 전 나의 추론의 요지
(1) 중·소 양국의 갈등·대립 구조
(2) 스탈린의 전쟁 의도와 중국의 참전 동기
3. 제 3부 : 나의 추론이 타당한 이유와 그 근거
(1) 한국전쟁 발발 이전의 논거
(2) 한국전쟁 발발 이후의 논거
(3) 전쟁의 결과와 영향, 그리고 중국의 참전동기
Ⅲ. 느낀 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는 무엇보다 소련이 지원하기로 한 무기와 장비들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강 도강을 원활히 해낼 수 없었으며 스탈린이 전선의 북한군에 파견되었던 소련군 고문들을 통신장비와 함께 모두 철수시켜 북한군 간부들의 군대지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한데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스탈린은 무기와 장비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부산까지 진격을 계속하라고 북한군에 지시하였다. 이와 같이 겉과 속, 말과 행동이 다른 스탈린의 지시에 김일성은 불만이 많았지만 이를 충실히 수행하였고 스탈린은 전쟁의 전 과정과 전술전략을 구체적으로 통제하였다. 여기에서 스탈린의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북한군의 남진이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면서도, 조기 진격이 이루어졌다면 부산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스탈린의 행동이 바로 그의 의도를 말해준다. 즉, 스탈린은 한반도에 미국과 중국군을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군이 너무 빨리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종식시키거나 완전히 승리해서는 안됐던 것이다. 실제로 소련은 북한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또한 뿐만 아니라 유엔의 참전 결의 시 소련 대표가 불참한 것 역시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트루먼 대통령은 “만일 남한을 북한의 손에 들어가도록 허용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자유국가들을 유린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자유세계는 북한의 침략을 굳게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그날 오후 유엔 안보리는 결의 제 82호를 채택,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군의 무력공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러한 행위를 평화의 파괴로 결정 내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결의 제 83호를 채택하여 북한의 침략행위가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해 국제질서에 위협이 되었음을 선호하고 유엔의 집단안보권을 발동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회의에 중화민국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표권에 항의해 참석을 거부하던 소련 대표 말리크가 참석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고슬라비아는 반대, 이집트와 인도는 거부를 했다. 이와 동시에 당일 소련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한국전쟁의 시작은 이승만의 북침에 의한 것이며, 유엔의 결정은 무효로서 미국의 개입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련 정부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본원칙을 준수하는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즉, 외형상으로는 유엔 결의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에 대해 소련이 한반도 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고 미국은 이를 보고 보다 안심하며 6월 27일 맥아더에게 미군의 한반도 투입을 지휘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처럼 전쟁 발발 직후 이와 같은 미국의 적극적은 개입에 대응, 전쟁의 결정에 깊숙이 개입한 소련은 겉으로는 빠지려는 은폐의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의 선택과 행동을 보다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3) 전쟁의 결과와 영향, 그리고 중국의 참전동기
이상의 논의를 기반으로 살펴보자면 우선 스탈린의 책략이 가능했던 주요인으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치명성을 들 수 있다. 북한의 남침은 미국의 즉각적 개입을 초래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중국의 참전을 유발한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이라는 국제적이자 대리전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하기 충분했다. 특히 한반도는 양 진영 모두 타 진영에 넘기기에는 민감한 지정학적 위치이자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의 전략은 정확히 시행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는 소른턴 교수의 지적과 같이 ‘왕따’ 그 자체였으며 사실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는 냉전의 전차 속에 갇히며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즉, 결과적으로 중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은 것이다.
다만 전쟁 이후 한국전쟁을 부추겼음에도 불구하고 진행과정에서 소극적이었던 스탈린의 영향력은 감소하였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순망치한의 혈맹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참전하게 된 동기는 일반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오는 안보위협이라고 이야기 된다. 즉, 중국의 참전은 북한 정권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기 보다는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
Ⅲ. 느낀 점
한국 전쟁, 즉 6.25전쟁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김정은은 여전히 핵개발이라는 무기를 통해 남한에 대한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자기 매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 외교, 군사적 위험 뿐 아니라 분단을 통해 존재하는 이산가족을 생각한다면 6.25전쟁과 남북 분단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더욱 큰 충격을 전해준다. 일반적으로 내정불간섭 등의 원칙과 국가자결주의, 즉 국가의 운명은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결정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가깝게 영향을 미치는 처참한 전쟁의 발발과 전개, 종결에 이르기까지 타국의 의도에 따라 휘둘렸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이 지게 된다는 점은 분노마저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 등을 통해 한국전쟁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분단국가라는 더 큰 비극을 만들어냈다면, 분단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만들어낸 ‘한국전쟁’에 작용했던 역학관계 등과 그 실상을 명확히 파악하여 현재의 상태를 교정하는데 유의미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국전쟁이 북한의 독재자의 욕심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통일이나 앞으로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단선적인 정책만이 가능하겠으나 한국전쟁이 당시 소련, 그리고 현재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국 등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 풀이 역시 단순히 대북포용정책 혹은 제재정책 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외교 등을 통해 실타래를 풀어나가듯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Ⅳ. 참고문헌
6·25 전쟁과 중국 : 스탈린과 마오쩌둥 제압전략. 이세기. 나남. 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스탈린은 무기와 장비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부산까지 진격을 계속하라고 북한군에 지시하였다. 이와 같이 겉과 속, 말과 행동이 다른 스탈린의 지시에 김일성은 불만이 많았지만 이를 충실히 수행하였고 스탈린은 전쟁의 전 과정과 전술전략을 구체적으로 통제하였다. 여기에서 스탈린의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북한군의 남진이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면서도, 조기 진격이 이루어졌다면 부산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스탈린의 행동이 바로 그의 의도를 말해준다. 즉, 스탈린은 한반도에 미국과 중국군을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군이 너무 빨리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종식시키거나 완전히 승리해서는 안됐던 것이다. 실제로 소련은 북한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또한 뿐만 아니라 유엔의 참전 결의 시 소련 대표가 불참한 것 역시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트루먼 대통령은 “만일 남한을 북한의 손에 들어가도록 허용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자유국가들을 유린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자유세계는 북한의 침략을 굳게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그날 오후 유엔 안보리는 결의 제 82호를 채택,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군의 무력공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러한 행위를 평화의 파괴로 결정 내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결의 제 83호를 채택하여 북한의 침략행위가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해 국제질서에 위협이 되었음을 선호하고 유엔의 집단안보권을 발동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회의에 중화민국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표권에 항의해 참석을 거부하던 소련 대표 말리크가 참석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고슬라비아는 반대, 이집트와 인도는 거부를 했다. 이와 동시에 당일 소련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한국전쟁의 시작은 이승만의 북침에 의한 것이며, 유엔의 결정은 무효로서 미국의 개입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련 정부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본원칙을 준수하는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즉, 외형상으로는 유엔 결의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에 대해 소련이 한반도 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고 미국은 이를 보고 보다 안심하며 6월 27일 맥아더에게 미군의 한반도 투입을 지휘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처럼 전쟁 발발 직후 이와 같은 미국의 적극적은 개입에 대응, 전쟁의 결정에 깊숙이 개입한 소련은 겉으로는 빠지려는 은폐의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의 선택과 행동을 보다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3) 전쟁의 결과와 영향, 그리고 중국의 참전동기
이상의 논의를 기반으로 살펴보자면 우선 스탈린의 책략이 가능했던 주요인으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치명성을 들 수 있다. 북한의 남침은 미국의 즉각적 개입을 초래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중국의 참전을 유발한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이라는 국제적이자 대리전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하기 충분했다. 특히 한반도는 양 진영 모두 타 진영에 넘기기에는 민감한 지정학적 위치이자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의 전략은 정확히 시행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는 소른턴 교수의 지적과 같이 ‘왕따’ 그 자체였으며 사실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는 냉전의 전차 속에 갇히며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즉, 결과적으로 중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은 것이다.
다만 전쟁 이후 한국전쟁을 부추겼음에도 불구하고 진행과정에서 소극적이었던 스탈린의 영향력은 감소하였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순망치한의 혈맹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참전하게 된 동기는 일반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오는 안보위협이라고 이야기 된다. 즉, 중국의 참전은 북한 정권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기 보다는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
Ⅲ. 느낀 점
한국 전쟁, 즉 6.25전쟁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김정은은 여전히 핵개발이라는 무기를 통해 남한에 대한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자기 매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 외교, 군사적 위험 뿐 아니라 분단을 통해 존재하는 이산가족을 생각한다면 6.25전쟁과 남북 분단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더욱 큰 충격을 전해준다. 일반적으로 내정불간섭 등의 원칙과 국가자결주의, 즉 국가의 운명은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결정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가깝게 영향을 미치는 처참한 전쟁의 발발과 전개, 종결에 이르기까지 타국의 의도에 따라 휘둘렸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이 지게 된다는 점은 분노마저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 등을 통해 한국전쟁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분단국가라는 더 큰 비극을 만들어냈다면, 분단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만들어낸 ‘한국전쟁’에 작용했던 역학관계 등과 그 실상을 명확히 파악하여 현재의 상태를 교정하는데 유의미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국전쟁이 북한의 독재자의 욕심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통일이나 앞으로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단선적인 정책만이 가능하겠으나 한국전쟁이 당시 소련, 그리고 현재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국 등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 풀이 역시 단순히 대북포용정책 혹은 제재정책 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외교 등을 통해 실타래를 풀어나가듯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Ⅳ. 참고문헌
6·25 전쟁과 중국 : 스탈린과 마오쩌둥 제압전략. 이세기. 나남.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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