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강독한 저작의 주요내용 및 논지 요약
□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및 그 이유
□ 강독내용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이해되지 않는 내용, 의문점 등
□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본인의 평가 : 예컨대 연구 주제, 연구 방법, 자료, 분석의 시각 및 해석 등 해당 저작의 성과와 한계
□ 새로운 문제 제기 : 해당 저자작의 강독을 통해 관련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연구 주제나 영역 등
□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및 그 이유
□ 강독내용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이해되지 않는 내용, 의문점 등
□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본인의 평가 : 예컨대 연구 주제, 연구 방법, 자료, 분석의 시각 및 해석 등 해당 저작의 성과와 한계
□ 새로운 문제 제기 : 해당 저자작의 강독을 통해 관련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연구 주제나 영역 등
본문내용
인민의 제2차 진공에 맞추어 제2전선을 형성시키는데 큰 공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때의 전원회의를 통해 숙청된 민족보위성 문화담당 부상 김일을 1952년 12월 15일 제5차 전원회의 때 다시 복권시켜 당시의 결정이 김일성을 대신하여 김일이 대신 책임을 부담한 임시적인 조치였다라는 사실이다.
625 전쟁 기간 중 김일성 항일빨치산투쟁의 강조는 눈에 띄지 않고 연안계 지휘관들의 부대가 훨씬 더 뛰어난 전투능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이중영웅 칭호를 받은 방호산과 영웅 칭호를 받은 리권무였다. 그러한 점에서 김일성을 비롯한 빨치산파의 전투능력은 정규전보다는 유격전에 특화되어 있다는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며 오히려 정치적인 감각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625전쟁을 통해 인민전쟁형 군대의 열세를 깨닫고 중국과 북한이 군의 근대화를 위해서 적극 노력하였다는 점 또한 알게 되었다.
2. 이해되지 않는 내용
상기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공군이 참전함으로서 북조선 군 내의 정치장교에 대한 역할이 상당 부분이 변경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조치가 김일성으로 하여금 큰 위험을 느끼게 할 수도 있냐라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군사위원회를 통한 군 통제나 당중앙위원회가 군을 통제하거나 어찌 되었든 두 조직 역시 김일성이 확실하게 권력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헌영의 남로파이나 연안계, 소련계가 당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김일성이 심각한 위기를 느낀 만큼의 위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자신들이 만든 군 조직이 외부세력에 의해 변화된다는 점에서 권위가 손상되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3. 의문점
1956년 9월의 중국공산 제8차 전국대회가 베이징에서 개최될 당시 중국과 소련은 1956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발생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김일성을 축출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소 대표단 평양에 도착하자, 당초 이들이 예상했던 것과 사태가 전혀 판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는데 분명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애초 연안계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망명한 이유 자체가 본인들의 신변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인데 이는 그만큼 확고하게 김일성의 세력이 강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데 이 점을 중국이나 소련이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북한을 방문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김일성이 그들의 목적을 알고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 일정 수준에서 원만하게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중소 대표단의 방문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 가능했다고 본다.
□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본인의 평가 : 예컨대 연구 주제, 연구 방법, 자료, 분석의 시각 및 해석 등 해당 저작의 성과와 한계
전쟁 이후 발생한 각 정파의 정치투쟁에 대하여 표면에 나타난 이유 이외에 북조선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각 정파의 입장을 명확하게 분석하여 제시하여 북조선은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으며, 그에 대한 사후 조치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한 점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쟁 기간과 기간 이후 북조선의 경제분야에서 나타난 여러 통계 수치 등을 분석하여 각 정파가 추구하는 경제노선과 정책을 연결하는 부분은 단순히 북조선의 정치 분야에서의 투쟁만을 분석한 여타의 연구와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또한 북조선의 내부 정치투쟁과 경제사정에서 국제적인 상황이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어떤 부분에서 더욱 효과를 미쳤는지를 그 원인과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이 대부분 북한 내부의 직접적인 자료가 아닌 주변국의 자료와 북조선에서 대외적으로 발표한 자료를 통해서 이루어진 점에서 그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이 연구를 포함하여 모든 북조선 관련 연구가 그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뢰도 여부와 관계없이 새로운 방식의 연구방법이라는 데서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전쟁 기간을 포함하여 전쟁 이후 중공군이 북조선에서 주둔하는 동안 군사적 지원 이외에 부분에서 북조선의 전쟁 복구를 위한 노력 등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부분의 연구는 함께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충분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 새로운 문제 제기 : 해당 저자작의 강독을 통해 관련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연구 주제나 영역 등
1. 전쟁 이후 북조선 재건에 지원되는 국제적인 지원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을 순방하고 난 다음에 북조선에 지원되는 각 국가의 지원 내용과 그 지원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경제 부분의 성과에 대한 연구는 향후 북조선의 사회주의 국가로 발전되는 과정을 규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특히 이는 많은 동유럽 국가의 경우 스탈린의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이 있은 후 여러 변혁의 사태에 직면하는데 이러한 시기에 북조선 지원이 이루어진 국가는 그러한 변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625전쟁을 전후로 군 내의 당조직 변화
전쟁 이전 조선인민군의 내부조직, 특히 당에 관한 1차 자료는 거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군 내에도 당이 일정부분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그 방식은 중공군과 비슷한 구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완벽하게 파악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체계는 625전쟁 기간 중 중공군의 참전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조선인민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하게 분석이 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물론 관련 자료의 한계로 인한 이유가 가장 크지만 현재의 북한에서 군이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조선인민군이 전쟁 이후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하는 연구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일성이 중공의 참전 이후 군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이 약화되었다는 주장을 한 이 연구를 볼 때 분명 어느 시점부터 이전의 김일성이 가진 군에 대한 통제력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통제력을 발휘하는 시기가 있다고 본다. 이 때의 군 내 당조직은 또 어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625 전쟁 기간 중 김일성 항일빨치산투쟁의 강조는 눈에 띄지 않고 연안계 지휘관들의 부대가 훨씬 더 뛰어난 전투능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이중영웅 칭호를 받은 방호산과 영웅 칭호를 받은 리권무였다. 그러한 점에서 김일성을 비롯한 빨치산파의 전투능력은 정규전보다는 유격전에 특화되어 있다는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며 오히려 정치적인 감각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625전쟁을 통해 인민전쟁형 군대의 열세를 깨닫고 중국과 북한이 군의 근대화를 위해서 적극 노력하였다는 점 또한 알게 되었다.
2. 이해되지 않는 내용
상기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공군이 참전함으로서 북조선 군 내의 정치장교에 대한 역할이 상당 부분이 변경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조치가 김일성으로 하여금 큰 위험을 느끼게 할 수도 있냐라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군사위원회를 통한 군 통제나 당중앙위원회가 군을 통제하거나 어찌 되었든 두 조직 역시 김일성이 확실하게 권력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헌영의 남로파이나 연안계, 소련계가 당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김일성이 심각한 위기를 느낀 만큼의 위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자신들이 만든 군 조직이 외부세력에 의해 변화된다는 점에서 권위가 손상되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3. 의문점
1956년 9월의 중국공산 제8차 전국대회가 베이징에서 개최될 당시 중국과 소련은 1956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발생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김일성을 축출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소 대표단 평양에 도착하자, 당초 이들이 예상했던 것과 사태가 전혀 판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는데 분명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애초 연안계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망명한 이유 자체가 본인들의 신변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인데 이는 그만큼 확고하게 김일성의 세력이 강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데 이 점을 중국이나 소련이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북한을 방문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김일성이 그들의 목적을 알고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 일정 수준에서 원만하게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중소 대표단의 방문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 가능했다고 본다.
□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본인의 평가 : 예컨대 연구 주제, 연구 방법, 자료, 분석의 시각 및 해석 등 해당 저작의 성과와 한계
전쟁 이후 발생한 각 정파의 정치투쟁에 대하여 표면에 나타난 이유 이외에 북조선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각 정파의 입장을 명확하게 분석하여 제시하여 북조선은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으며, 그에 대한 사후 조치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한 점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쟁 기간과 기간 이후 북조선의 경제분야에서 나타난 여러 통계 수치 등을 분석하여 각 정파가 추구하는 경제노선과 정책을 연결하는 부분은 단순히 북조선의 정치 분야에서의 투쟁만을 분석한 여타의 연구와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또한 북조선의 내부 정치투쟁과 경제사정에서 국제적인 상황이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어떤 부분에서 더욱 효과를 미쳤는지를 그 원인과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이 대부분 북한 내부의 직접적인 자료가 아닌 주변국의 자료와 북조선에서 대외적으로 발표한 자료를 통해서 이루어진 점에서 그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이 연구를 포함하여 모든 북조선 관련 연구가 그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뢰도 여부와 관계없이 새로운 방식의 연구방법이라는 데서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전쟁 기간을 포함하여 전쟁 이후 중공군이 북조선에서 주둔하는 동안 군사적 지원 이외에 부분에서 북조선의 전쟁 복구를 위한 노력 등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부분의 연구는 함께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충분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 새로운 문제 제기 : 해당 저자작의 강독을 통해 관련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연구 주제나 영역 등
1. 전쟁 이후 북조선 재건에 지원되는 국제적인 지원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을 순방하고 난 다음에 북조선에 지원되는 각 국가의 지원 내용과 그 지원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경제 부분의 성과에 대한 연구는 향후 북조선의 사회주의 국가로 발전되는 과정을 규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특히 이는 많은 동유럽 국가의 경우 스탈린의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이 있은 후 여러 변혁의 사태에 직면하는데 이러한 시기에 북조선 지원이 이루어진 국가는 그러한 변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625전쟁을 전후로 군 내의 당조직 변화
전쟁 이전 조선인민군의 내부조직, 특히 당에 관한 1차 자료는 거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군 내에도 당이 일정부분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그 방식은 중공군과 비슷한 구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완벽하게 파악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체계는 625전쟁 기간 중 중공군의 참전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조선인민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하게 분석이 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물론 관련 자료의 한계로 인한 이유가 가장 크지만 현재의 북한에서 군이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조선인민군이 전쟁 이후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하는 연구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일성이 중공의 참전 이후 군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이 약화되었다는 주장을 한 이 연구를 볼 때 분명 어느 시점부터 이전의 김일성이 가진 군에 대한 통제력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통제력을 발휘하는 시기가 있다고 본다. 이 때의 군 내 당조직은 또 어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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