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_가자아메리카로 제2부_저자 리오 휴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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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_가자아메리카로 제2부_저자 리오 휴버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
2.
아무도 굶주리게 할 수는 없다.
3.
다시 일자리를 주기 위해
4.
판매자도 주의하라
5.
세계적인 무법상태의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
6.
일자리와 평화

본문내용

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상충하는 세력들의 복합적인 산물이었다. 뉴딜의 대외정책은 비교적 비능률적이었고, 침략을 중지시키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뉴딜의 대외정책이 비능률적이었던 원인은 열강의 모순되고 변화하는 세력배치 안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객관적인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뉴딜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어떠한 일관성없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수사는 길었지만, 행동은 짧았다. 1933년 이후 세계는 약한 이웃들이 필사적인 경제적 경쟁에 뛰어들었고, 인종과 종교, 소수민족을 박해하면서 대적하고 조약을 위반하였다. 미국은 침략자가 아니었으며 평화유지와 수출무역의 확장만이 미국의 지배적인 관심사였다. 뉴딜 철학의 일반적인 경향과 일치하는 대외정책의 프로그램을 제시했지만, 행동은 달랐다. 1936년 스페인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미국의 중립법규는 내란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으나, 명백한 미국의 이익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측에도 무기의 수출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미국은 침략자를 격리하는 대시 피침략자를 격리함으로써 편을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39년, 대통령은 미국이 원조했던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침략자임을 시인하면서 정책이 역효과 적이었음을 인정했다.
극동에서의 기록 역시 충분히 나쁜 것이었다. 20세기 초 이후 제국주의적 세계세력으로 일본의 출현과 확장으로 극동이 지배됐다. 영국은 일본의 확장을 저지하는 것에 있어서 미국과의 협력을 주저했다. 중국에서 일본의 위치가 소련 보다 강화되는 것이 영국으로서는 반대할 처지가 아녔기 때문이다. 일본은 극동에서 미국의 조약상의 권리를 마구 짓밟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중국 침략과 야만적 행위에 대해 고상한 설교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야만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수단을 그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1933년 미국은 일본에 대한 평형추로 사용하기 위하여 소련을 승인했다. 하지만 이내 소련에 대한 평형추로 다시 일본을 이용하게 되었고 국무성이 일본과 강력한 유대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럴듯한 말과 약간의 진보적인 행동, 역행적 행동이 반복되었다.
쿠바는 달러 외교가 적용되었던 전형적인 나라였다. 쿠바에 투자된 미국의 재산은 약 10억 달러에 가까웠으며, 쿠바의 정치, 경제에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은 뉴욕의 체이스내셔널 은행이었다. 1933년 쿠바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새로운 대통령이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지르면서 미국 정부는 신정부를 승인하기를 거부했다. 두 달 후 임시 대통령이 새롭게 취임하면서 신정부는 미국의 신정부 승인을 받았고 쿠바 문제에 간섭할 권한을 폐기했다.
멕시코에서는 사정이 훨씬 나았다. 1939년 멕시코 정부는 외국 석유회사들의 재산을 국유화하였다. 정부는 석유회사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고 장래의 배상을 약속한 채 국유화하였다. 석유회사들은 격분했고 외교상의 압력과 간섭을 가해 주시를 요구하였다. 이에 미국은 선린정책을 펼쳤다. 멕시코 정부가 자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두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의 멕시코에 대한 정책은 결코 평화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은의 매입에 대한 멕시코 정부와의 협정을 폐기함으로써 반동적인 세력을 강화해 이웃 나라와의 정치관계를 악화시켰다.
라틴 아메리카 제국에서의 선린정책은 평탄할 수 없었다. 미국은 그들에게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고 관계를 담당하고 있던 외교관들도 달러 외교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대기업에 우호적이고 비민주적 전통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뉴딜이 국제적인 무역과 화폐 관계에서 이렇다 하게 보여줄 게 없었다. 다만 자유무역을 통한 처방을 통해, 관세 특혜를 통해 통상협정 계획을 시도하여 미국의 무역에 개방시키려고 노력했다. 미국 무역정책의 기본적인 약점은 그것을 정치적 수단으로써 이용될 수 있었던 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화폐정책에서도 역시 무역정책에서와같이 미국의 경제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못했다.
1939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간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미국은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음을 느끼고 스스로 방어에 나섰다. 영국의 패전을 막아야 했고 영국에서 필요했던 군수물자를 그들에게 공급하였다. 1941년 일본의 폭격기가 진주만의 미국 태평양함대 소속의 함선을 격침 시켰고, 미국은 민주주의의 병기고가 되어야 했다. 1945년 독일은 항복했고,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6. 일자리와 평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안정된 일자리와 평화는 간절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전 세계의 독점자본은 전시체제를 이용하거나 공공사업 등에 대한 재정지출 때문에 존속했다. 전자의 경우 모든 경제는 전쟁에 맞추어져 있었고, 민간의 자유는 부분적으로 억압되어 있었다. 이는 가장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형태였다. 후자의 경우 거대 기업으로 흘러들어 가는 이윤을 보장할 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폐해의 일부를 제거하는 재정지출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시적 완화제도는 자본가들에게는 불쾌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한편으로 옳았고 한편으로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집중된 사적인 경제력이 자유와 민주적 정부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분석은 옳았으나, 사기업이 자유기업으로서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사기업은 이미 오래전에 자유기업으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소수의 지배력 집중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더욱 심해졌다. 일자리와 평화의 문제는 이와 같은 독점구조와 이윤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미국의 경제가 독점자본의 사적 목적을 위해 독점자본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국민 자신의 복지를 위해 국민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뉴딜은 귀중한 경험으로서 민중은 뉴딜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했으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일자리와 평화를 원하고 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자리와 평가는 이윤을 위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을 위한 생산제도 아래에서만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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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감상문,   서평,   비평
  • 가격1,8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23.05.18
  • 저작시기2023.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208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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