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조선의 3번째 왕, 태종 이방원
2.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여가에 담긴 야망
3. 왕권정치와 신권정치의 정면 대결 – 1차 왕자의 난
4. 2차 왕자의 난(박포의 난)
5. 태종 이방원의 업적
6. 태종 이방원에 대한 나의 해석과 재평가
2.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여가에 담긴 야망
3. 왕권정치와 신권정치의 정면 대결 – 1차 왕자의 난
4. 2차 왕자의 난(박포의 난)
5. 태종 이방원의 업적
6. 태종 이방원에 대한 나의 해석과 재평가
본문내용
한, 1417년 공사노비소량지한을 정하여 노비결송을 마무리했다
7) 사회정책
1401년 신문고를 설치해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자유롭게 상소할 수 있도록 했다. 1410년에 호포세, 1415년에는 포백세를 폐지했다. 1415년 보충군제를 실시하여 양천혼인의 소생의 경우 아버지가 양인이면 보충군에 편입시켜 일정기간의 군역을 담당하면 전역후 양인이 되게 했다. 한 가족의 노비는 동일 관청에서 같이 일하게 해 가족이 분리되는 일이 없게 했다. 하지만 1415년 서얼차대법을 정하여 서얼을 차별하는 악법을 만들어 500년 조선역사에서 서얼 차별이 이뤄졌다. 이후 정조 대에 서울출신 검서관으로 등용한다.
6. 태종 이방원에 대한 나의 해석과 재평가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방원을 본인의 권력을 위해서 친인척, 충신, 공신, 형제까지 죽이고 아버지도 무시하는 폐륜을 저질렀고 이것은 거의 세조, 연산군과 동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형제들을 죽이긴 했지만 그건 배다른 이복형제들이었고 2차 왕자의 난에서도 셋째, 넷째형은 죽이지 않고 유배를 보냈다. 또한 그 둘은 살육을 목적으로 한 숙청이었고 태종은 숙청을 정치를 목적으로 한 왕이다. 그게 살인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원래 왕조나 정권이 바뀔 때는 어느 정도의 숙청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이방원의 정치관에서 고려가 흔들린 이유는 중기 이후에 인척, 여진, 원, 권문세족에 흔들리면서 너덜너덜해진 왕권에 있다. 왕이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니까 귀족들은 갈수록 부패하고 백성들은 궁핍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당대 상황이나 시대상으로 인해 야기된 불가피함과 결과적으로는 왕권강화와 신생국 조선의 기틀 마련, 그리고 세종대의 태평성대라는 것까지 고려해 세조나 연산군과는 ‘왕으로서’의 평가를 달리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인물을 판단할 때는 항상 그 시대상과 상황을 파악해야한다. 후대에 안정적이던 왕조를 뒤흔든 세조나 연산군의 숙청과 조선 초기 혼란기 태종의 숙청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도덕성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후대의 왕들처럼 부작용만 가져온 숙청이 아닌 필요약 으로서의 숙청으로 합리적인 정치를 했던 명군이 태종이다.
사람들이 태종을 폭군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덕성의 결여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왕조나 정권이 바뀌면 숙청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 한데 특히 반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역성형명 국가인 조선에서는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7) 사회정책
1401년 신문고를 설치해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자유롭게 상소할 수 있도록 했다. 1410년에 호포세, 1415년에는 포백세를 폐지했다. 1415년 보충군제를 실시하여 양천혼인의 소생의 경우 아버지가 양인이면 보충군에 편입시켜 일정기간의 군역을 담당하면 전역후 양인이 되게 했다. 한 가족의 노비는 동일 관청에서 같이 일하게 해 가족이 분리되는 일이 없게 했다. 하지만 1415년 서얼차대법을 정하여 서얼을 차별하는 악법을 만들어 500년 조선역사에서 서얼 차별이 이뤄졌다. 이후 정조 대에 서울출신 검서관으로 등용한다.
6. 태종 이방원에 대한 나의 해석과 재평가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방원을 본인의 권력을 위해서 친인척, 충신, 공신, 형제까지 죽이고 아버지도 무시하는 폐륜을 저질렀고 이것은 거의 세조, 연산군과 동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형제들을 죽이긴 했지만 그건 배다른 이복형제들이었고 2차 왕자의 난에서도 셋째, 넷째형은 죽이지 않고 유배를 보냈다. 또한 그 둘은 살육을 목적으로 한 숙청이었고 태종은 숙청을 정치를 목적으로 한 왕이다. 그게 살인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원래 왕조나 정권이 바뀔 때는 어느 정도의 숙청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이방원의 정치관에서 고려가 흔들린 이유는 중기 이후에 인척, 여진, 원, 권문세족에 흔들리면서 너덜너덜해진 왕권에 있다. 왕이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니까 귀족들은 갈수록 부패하고 백성들은 궁핍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당대 상황이나 시대상으로 인해 야기된 불가피함과 결과적으로는 왕권강화와 신생국 조선의 기틀 마련, 그리고 세종대의 태평성대라는 것까지 고려해 세조나 연산군과는 ‘왕으로서’의 평가를 달리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인물을 판단할 때는 항상 그 시대상과 상황을 파악해야한다. 후대에 안정적이던 왕조를 뒤흔든 세조나 연산군의 숙청과 조선 초기 혼란기 태종의 숙청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도덕성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후대의 왕들처럼 부작용만 가져온 숙청이 아닌 필요약 으로서의 숙청으로 합리적인 정치를 했던 명군이 태종이다.
사람들이 태종을 폭군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덕성의 결여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왕조나 정권이 바뀌면 숙청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 한데 특히 반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역성형명 국가인 조선에서는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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