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위한 부적절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서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또 한가지는 “어떻게 이런 본질적인 회복을 이루지!” 저자가 3장에서 교회가 유기적 생명체로서 활력을 되찾는 것이 갱신이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교회가 유기적 생명체로서 갖는 예배와 공동체, 복음증거의 생태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균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것은 결국 또 하나의 방법론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그가 제시하는 모델들은 방법론적 대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인위적 성장이 아닌 유기적 성장을 이야기 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결국 인간의 개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된다. 물론 저자는 여러 부분에서 과거의 방법론적인 성장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과연 방법론적 성장주의자들도 그 본질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 교회 성장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맥가브란같은 분도 분명히 교회의 외적성장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교회의 건강에 충실한 면이 있다. 본질을 무시하지 않았다. 저자는 3장 말미에서 직접 자신이 말하는 갱신은 “갱신이라기 보다는 활력을 되찾는 문제”라고 했는데, 활력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생명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흥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스나이더가 말하는 갱신이라는 말은 부흥에 더 가까운 것인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갱신이라는 말이야 말로 개인과 교회의 노력을 대변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부흥과 갱신은 다른 것이다. 이런 용어의 혼동은 제쳐 두고라도 내 생각으로는 너무 인위적인 성장전략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교회가 유기체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회복해야 하지만 조직적이고 인위적인 노력들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에는 적어도 목회 현장에 있어서는 교회의 갱신과 방법론적 성장전략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도와 노행동이 교회를 향한 열심에서 비롯되었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 것으로 바꾸신다는 확신이 있다. 나의 이야기는 이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스케일로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은 저자보다 훨씬 포용력이 있으신 분이시고 경륜에 뛰어난 분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우리가 이미 사형선고를 내린 교회도 부활의 능력으로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런 낙관론적 신앙에서 좀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교회의 회복과 갱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작용이든 반작용이든 수많은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다.
※ 인상 깊었던 「문장」
“교회가 종교적인 제도로서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거나, 정치경제적인 체제(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전체주의든 민주주의든)를 대변하거나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 나라를 대변할 만큼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 책 속에서 -
또 한가지는 “어떻게 이런 본질적인 회복을 이루지!” 저자가 3장에서 교회가 유기적 생명체로서 활력을 되찾는 것이 갱신이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교회가 유기적 생명체로서 갖는 예배와 공동체, 복음증거의 생태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균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것은 결국 또 하나의 방법론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그가 제시하는 모델들은 방법론적 대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인위적 성장이 아닌 유기적 성장을 이야기 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결국 인간의 개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된다. 물론 저자는 여러 부분에서 과거의 방법론적인 성장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과연 방법론적 성장주의자들도 그 본질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 교회 성장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맥가브란같은 분도 분명히 교회의 외적성장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교회의 건강에 충실한 면이 있다. 본질을 무시하지 않았다. 저자는 3장 말미에서 직접 자신이 말하는 갱신은 “갱신이라기 보다는 활력을 되찾는 문제”라고 했는데, 활력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생명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흥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스나이더가 말하는 갱신이라는 말은 부흥에 더 가까운 것인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갱신이라는 말이야 말로 개인과 교회의 노력을 대변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부흥과 갱신은 다른 것이다. 이런 용어의 혼동은 제쳐 두고라도 내 생각으로는 너무 인위적인 성장전략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교회가 유기체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회복해야 하지만 조직적이고 인위적인 노력들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에는 적어도 목회 현장에 있어서는 교회의 갱신과 방법론적 성장전략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도와 노행동이 교회를 향한 열심에서 비롯되었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 것으로 바꾸신다는 확신이 있다. 나의 이야기는 이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스케일로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은 저자보다 훨씬 포용력이 있으신 분이시고 경륜에 뛰어난 분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우리가 이미 사형선고를 내린 교회도 부활의 능력으로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런 낙관론적 신앙에서 좀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교회의 회복과 갱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작용이든 반작용이든 수많은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다.
※ 인상 깊었던 「문장」
“교회가 종교적인 제도로서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거나, 정치경제적인 체제(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전체주의든 민주주의든)를 대변하거나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 나라를 대변할 만큼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 책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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