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지역 답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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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주지역 답사자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여주개관
Ⅱ. 명성황후 생가터
Ⅲ. 영월루와 창리 · 하리 삼층석탑
Ⅳ. 신륵사(神勒寺)
Ⅴ. 고달사(高達寺) 터

본문내용

우로 각각 2마리씩 4마리의 용을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용의 모습은 서로 조금씩 다른 형태이다. 측면부는 용의 몸이 구름에 내비친 격동적인 모습을 조각하였고, 후면 역시 2구의 용을 조각하였다.
이 귀부와 이수는 탑비에 기록된 명문에 의하여 97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귀두가 험상궂은 용두형(龍頭形)에 가깝고, 목이 짧고 정면 직시형(直視形)인 점, 이수의 표현이 격동적이며, 특히 와운문으로 번잡하게 장식한 점 등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진전되는 탑비 형식을 잘 보여준다.
2-3. 원종대사 혜진탑 : 보물 제7호
높이 4.5m. 기단 위에 탑신을 안치하고 옥개석을 덮은 일반형 승탑으로 기단부에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4매석으로 짜인 네모난 지대석 위에 하대 · 중대 · 상대가 차례로 형성되어 있는데, 하대는 방형이고 중대석 상단부터가 8각의 평면을 보이고 있다. 하대는 복련대로서 한 면에 5판씩, 각 모서리에 1판씩, 모두 24판의 단엽(單葉) 연화문이 돌려졌는데, 수법이 매우 정돈되었다.
그 위에 1단의 굄이 있고, 중대석과의 사이에 갑석형의 네모난 각출판석이 얹혀 있다. 중대석은 한 개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상단부에 갑석형처럼 팔각으로 돌린 띠가 있어 8각 평면의 의장(意匠)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부(身部)는 이에 구애됨이 없이 상하에 권운문(卷雲文)을 조각하였는데, 밑이 약간 넓은 편이다.
정면에는 거북 한 좌를 조각하였는데, 몸은 정면을 향하고 머리만 우향하고 있다. 양쪽 앞발과 귀갑(龜甲) 부분이 그대로 잘 표현되어서 마치 석비의 귀부(龜趺)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두상은 용두(龍頭)로서 부리부리한 눈과 코 · 입 등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이 귀부를 중심으로 구름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네 마리의 용이 부조되어 있다.
상대석은 앙련석(仰蓮石)으로 하면에는 8각의 각형받침 2단이 각출되었으며, 가운데는 8판의 큼직한 단엽연화문이 각 모서리에 한 판씩 조식되었고, 상단은 갑석형처럼 8각의 띠가 돌려졌다. 상면에는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석을 받고 있다.
한 개의 돌로 조성된 8각 탑신은 4면에 문호형(門戶形)이 모각되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 입상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도 한 개의 돌로 다듬은 8각형인데, 하면부에 연목(椽木 : 서까래) 등의 모각은 없으나 호형(弧形)을 중심으로 상하에 낮은 받침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넓고 높은 또 한 단의 받침이 있어 연목을 대신하고 있다.
추녀는 수평이나 전각에 이르면서 상향(上向)하였고, 특히 여덟 귀퉁이의 전각은 반전이 큰 편이며, 그 위에는 삼산형(三山形) 고사리모양의 귀꽃이 조각되었다.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없으나 각 면의 합각에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이 표시되었으며,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정상부에는 석형처럼 8각의 띠를 돌리고 상륜부를 받고 있다.
상륜부는 8각의 노반과 화문이 조식된 복발 위에 보개를 얹었으며 보륜과 보주까지 남아 있다. 보개는 8각 1석으로 옥개석의 형식과도 같이 여덟 귀퉁이 전각에는 삼산형 고사리모양의 귀꽃이 원각되어 있고 낙수면도 완만하다. 보주는 함주(含珠)한 화염형(火焰形)이다.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기본으로 하되 하대석을 방형으로 조성하였음은 시대적인 특색이라 하겠다. 기단부 중대석의 조각은 가장 현저하게 고려시대의 수법을 나타내었고, 각 부의 조화도 우아하고 화려하다.
이와 같이 기단부의 중대석을 운룡(雲龍)으로 조식한 것은 선림원홍각선사탑과 흥법사진공대사탑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운룡만 조각하고 평면도 원형과 8각을 유지한 데 비하여, 원종대사혜진탑 하단부도 8각이란 규범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어 조성시기가 내려감을 짐작하게 한다.
이 승탑의 주인공인 원종대사는 신라 경문왕 9년(869)에 출생하여 고려 광종 9년(958)에 입적한 고승이다. 이 승탑의 건립연대는 원종대사혜진탑비의 비문에 의하여 975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2-4. 고달사지 석불대좌 : 보물 제8호
높이 1.57m. 상대 · 중대 · 하대와 지대석을 모두 갖춘 사각대좌로, 현재 그 위에 불상은 없고 하대석 서쪽 면에 약간의 균열과 파손이 있을 뿐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각 단은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구성하였다.
상대의 윗면은 불상이 놓여져 있던 곳으로 잘 다듬어져 있으며, 1단의 각형 받침이 마련되어 있다. 그 각 면에 다섯 잎, 모서리마다 한 잎씩 모두 24잎의 아래로 복판앙련화문(複瓣仰蓮花文: 겹꽃잎의 연꽃이 위로 향하고 있는 무늬)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 받침은 역계단식 3단으로, 가운데 것은 둥글게 공글렸고 위아래는 각형이다. 중대는 사각형 간석(竿石)으로 되어 있다. 각 면 좌우에 우주형(隅柱形) 테를 세우고 다시 상하에 테를 두어 윤곽을 잡은 속에 큼직한 안상(眼象)을 하나씩 네 면에 조각하였다.
하대는 맨 위에 간석을 받치는 3단 받침이 있고 그 밑에 상대석에서와 같은 배열로 24잎의 복판복련화문(複瓣覆蓮花文: 겹꽃잎의 연꽃이 아래로 향하고 있는 무늬)이 있다.
그리고 다시 그 밑에 한 단의 턱을 이룬 각형 받침이 있다. 이 각형 받침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유지하게 하며, 각 면에는 네 개씩 모두 16개의 안상을 조각하였다.
지면에는 지대석이 놓여 대좌 전체를 받치고 있다. 이 대좌가 거대한 규모의 네모반듯한 모양임에도 불구하고 유연한 느낌을 주는 것은 팽창감이 있고 율동적인 연꽃잎의 묘사 때문이다. 반면에 중대석의 단조로운 표현은 전체적인 중량감과의 조화를 고려한 듯하다.
특히 피어오르는 상대석 연꽃의 활력 있는 표현과 간석을 받치고 있는 하대석 연꽃의 둥근 묘사 등은 사실적 조형성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꽃잎의 표현 수법은 이 대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있는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 하대석의 연꽃잎과 매우 비슷하다. 이처럼 중앙의 꽃잎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엇비끼게 배열하는 방법은 고려시대 연꽃잎 배열 방법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절터에 함께 있는 고달사지부도와 원종대사혜진탑(元宗大師慧眞塔, 보물 제7호)이 고려 초기의 일반적인 양식임을 미루어 볼 때 이 대좌도 10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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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3
  • 저작시기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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