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제천·단양 개관
Ⅱ. 신라 적성비와 적성
Ⅲ. 의림지
Ⅳ. 제천 · 단양의 탑들
Ⅴ. 단양팔경
Ⅱ. 신라 적성비와 적성
Ⅲ. 의림지
Ⅳ. 제천 · 단양의 탑들
Ⅴ. 단양팔경
본문내용
히 탑신부의 각 층 옥신 굄이 각형 2단씩이며, 경쾌한 옥개석의 조성수법 등 각 부의 건조양식과 결구수법으로 보아, 이 석탑의 건립연대는 신라 하대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에서 특기할 것은 죽령(竹嶺) 북쪽에 위치한 신라석탑이라는 점과 석탑 자체의 구성에서 상층기단의 면석이 8매석으로 조립된 점, 초층옥신 남쪽면에 문비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Ⅴ. 단양팔경
옛사람들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무슨무슨 팔경’을 꼽기 좋아했지만, 단양팔경은 관동팔경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확고히 인정받은 경승지이다. 소백산맥 줄기와 남한강 및 그 지류가 엮어내는 단양의 풍광은 산과 물이 어울려 보기 드물게 빼어나다.우선 제1경인 하선암과 2경인 중선암, 3경인 상선암은 월악산 동북쪽 기슭에서 흘러나와 남한강으로 합쳐지는 단양천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며 자리잡고 있다. 기암절벽과 청계옥류라는 말이 전혀 고리타분한 상투적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은 곳, 말 그대로 차고 맑은 계곡물과 멋진 바위들이 선경을 느끼게 하고 쉼 없는 물소리가 가슴을 씻어내는 곳이다. 거기에 계절마다의 변화가 아름다움을 더하니, 일찍이 이곳을 찾았던 퇴계 이황은 하선암의 절경을 묘사하면서 ‘봄이면
철쭉꽃이 노을과 같고 가을이면 단풍이 비단과 같다’고 하였다.
<사인암>
제4경인 사인암(舍人巖)은 단양팔경 가운데서도 다시 손꼽히는 경승지이다. 깎아지른 암벽이 하늘에서 내려뜨린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아래로는 맑은 물이 질펀히 흐른다. 치솟은 바위벽은 가로세로로 금이 가서 요모조모 쌓고 끼운 듯, 바둑판을 세워놓은 듯하다. 큰 붓으로 죽죽 그은 듯한 먹물색 암벽 위에 군데군데 녹색과 황토색, 밝은 노랑색이 비끼고 그 틈에 끼어 자라는 소나무와 들꽃, 단풍나무들이 점점이 붉고 푸른 색깔을 뿌린다. 단양사람으로서 고려 때 경사역학의 대가였던 역동 우탁(易東 禹倬, 1263~1342)이 사인 벼슬을 지낼 무렵 여기에 와서 노닐었는데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를 지낸 임재광이 그것을 기려 사인암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의 풍광을 사랑하였음을 말하듯 암벽 아래 너럭바위에는 바둑판과 장기판이 새겨져 있고 암벽 아래와 옆으로 돌아가며 구석구석에 이황, 이인상, 이윤영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구담봉>
제5경인 구담봉과 제6경인 옥순봉은 단양과 제천시 청풍면의 경계를 이루는 장회리에 있다. 이곳의 장회여울은 남한강 줄기에서도 급류가 심한 곳이라 노를 저어도 배가 잘 나아가지 않고 노에서 손만 떼면 금세 도로 흘러내려가므로 오가던 배와 뗏목이 무진 애를 써야 했던 곳이다. 구담봉(龜潭峰)은 남한강가 깎아지른 듯 장엄하게 치솟은 기암절벽 위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봉, 물 속의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 하여 구담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옥순봉(玉筍峰)은 희고 푸른 암봉들이 비온 후 죽순 솟듯이 미끈하고 우뚝하게 줄지어 있어 소금강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봉우리의 생김새도 절묘하지만 푸른 강물과 어울려 세상에 드문 절경을 빚어낸다. 특히 봄이나 가을, 꽃과 단풍으로 점점이 수놓인 봉우리들이 되비치는 구담의 뱃놀이는 천하 제일의 흥취로 꼽혔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은 그 광경을 ‘바위벼랑에는 군데군데 단풍이 물들고, 서리가 내리니 가을물은 더욱 맑아, 조각배에 탄 사람은 병풍 속으로 들어가더라······’ 하고 읊었다.명종 초 단양군수로 부임하던 퇴계 이황은 청풍에서 배를 타고 단양으로 거슬러 오르며 여울마다 시를 지었다고 한다. 구담봉과 옥순봉 사이의 소석대(농암)에는 이인상의 글씨 ‘流水高山’(유수고산)과 함께 구담봉의 장관을 노래한 퇴계의 시가 새겨져 있으며 옥순봉에도 이황의 글씨로 ‘丹邱洞門’(단구동문) 넉 자가 새겨져 단양과 제천시의 경계임을 알려주었는데 지금은 충주호 물에 잠겨서 가뭄 때나 물 밖으로 살짝 드러난다.
<옥순봉>
남한강가에 섰던 구담봉과 옥순봉은 충주댐이 생긴 후로 아랫도리가 물에 잠겨 충주호 안의 섬처럼 되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장회나루에서 뜨는 유람선을 타고 물 위를 맴돌며 구경한다. 멋진 자연경관을 표현하는 말 중에 ‘꼭 만들어놓은 것 같다’느니 ‘그림 같다’느니 하는 말이 있다. 저런 것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걸 믿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는 뜻이겠다. 그림 같은 옥순봉, 구담봉, 사인암 들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에 의해 진짜 그림으로도 남아 있다.
단양팔경의 제7경은 도담삼봉(嶋潭三峰)이다. 매포읍 도담리 앞으로 흐르는 남한강 가운데 봉우리 세 개가 떠 있어서 삼봉이고 또 섬이 있는 물이므로 도담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매포읍 도전리 출신으로, 수학하던 시절에 자주 찾던 이곳을 사랑하여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지었다고 한다. 세 봉우리의 모양 때문에 생겨난 전설에 따르면 셋 중에서 가운데 있는 것이 남편, 북쪽 것이 아내, 남쪽 것이 첩 봉우리이다. 남편과 아내는 사이가 좋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첩을 얻었고, 곧 아기를 가진 첩은 남편 쪽을 향해 자랑스레 배를 내밀며 배시시 웃고 앉았고 아내는 눈꼴이 시어 등을 돌리고 앉았다고 한다.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이 세 봉우리는 강원도 정선에 있었는데 어느 해 장마 때 흘러흘러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정선땅 관리들이 삼봉을 찾아 이곳까지 와서는 원래 자기들 것이라면서 해마다 세금을 걷어갔다. 그러던 어느 해 정선에서 세리들이 오자 한 아이가 나섰다. “저 삼봉은 우리가 부른 것도 아니고 제멋대로 온 것이오. 그렇게 중요하다면 도로 가져가시오.” 그후로 도담사람들은 삼봉에 대한 세금을 물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도담 삼봉>
제8경은 도담삼봉에서 상류로 조금 거슬러 오른 곳 강가에 있는 석문(石門)이다. 너비 15~20m 높이 25m에 이르는 천연 석문이 산 위에 걸쳐져 훌륭한 경관을 이룬다.
<석문>
단양팔경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먼저 단양팔경 중 제7경과 8경인 도담삼봉과 석문을 돌아보고 다시 제4경인 사인암과 제2경, 3경인 중선암과 상선암을 그리고 제1경인 하선암을 본 후 장회나루에서 배를 타고 제5경, 6경인 구담봉과 옥순봉을 돌아보는 동선이 일반적이다.
이 석탑에서 특기할 것은 죽령(竹嶺) 북쪽에 위치한 신라석탑이라는 점과 석탑 자체의 구성에서 상층기단의 면석이 8매석으로 조립된 점, 초층옥신 남쪽면에 문비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Ⅴ. 단양팔경
옛사람들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무슨무슨 팔경’을 꼽기 좋아했지만, 단양팔경은 관동팔경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확고히 인정받은 경승지이다. 소백산맥 줄기와 남한강 및 그 지류가 엮어내는 단양의 풍광은 산과 물이 어울려 보기 드물게 빼어나다.우선 제1경인 하선암과 2경인 중선암, 3경인 상선암은 월악산 동북쪽 기슭에서 흘러나와 남한강으로 합쳐지는 단양천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며 자리잡고 있다. 기암절벽과 청계옥류라는 말이 전혀 고리타분한 상투적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은 곳, 말 그대로 차고 맑은 계곡물과 멋진 바위들이 선경을 느끼게 하고 쉼 없는 물소리가 가슴을 씻어내는 곳이다. 거기에 계절마다의 변화가 아름다움을 더하니, 일찍이 이곳을 찾았던 퇴계 이황은 하선암의 절경을 묘사하면서 ‘봄이면
철쭉꽃이 노을과 같고 가을이면 단풍이 비단과 같다’고 하였다.
<사인암>
제4경인 사인암(舍人巖)은 단양팔경 가운데서도 다시 손꼽히는 경승지이다. 깎아지른 암벽이 하늘에서 내려뜨린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아래로는 맑은 물이 질펀히 흐른다. 치솟은 바위벽은 가로세로로 금이 가서 요모조모 쌓고 끼운 듯, 바둑판을 세워놓은 듯하다. 큰 붓으로 죽죽 그은 듯한 먹물색 암벽 위에 군데군데 녹색과 황토색, 밝은 노랑색이 비끼고 그 틈에 끼어 자라는 소나무와 들꽃, 단풍나무들이 점점이 붉고 푸른 색깔을 뿌린다. 단양사람으로서 고려 때 경사역학의 대가였던 역동 우탁(易東 禹倬, 1263~1342)이 사인 벼슬을 지낼 무렵 여기에 와서 노닐었는데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를 지낸 임재광이 그것을 기려 사인암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의 풍광을 사랑하였음을 말하듯 암벽 아래 너럭바위에는 바둑판과 장기판이 새겨져 있고 암벽 아래와 옆으로 돌아가며 구석구석에 이황, 이인상, 이윤영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구담봉>
제5경인 구담봉과 제6경인 옥순봉은 단양과 제천시 청풍면의 경계를 이루는 장회리에 있다. 이곳의 장회여울은 남한강 줄기에서도 급류가 심한 곳이라 노를 저어도 배가 잘 나아가지 않고 노에서 손만 떼면 금세 도로 흘러내려가므로 오가던 배와 뗏목이 무진 애를 써야 했던 곳이다. 구담봉(龜潭峰)은 남한강가 깎아지른 듯 장엄하게 치솟은 기암절벽 위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봉, 물 속의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 하여 구담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옥순봉(玉筍峰)은 희고 푸른 암봉들이 비온 후 죽순 솟듯이 미끈하고 우뚝하게 줄지어 있어 소금강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봉우리의 생김새도 절묘하지만 푸른 강물과 어울려 세상에 드문 절경을 빚어낸다. 특히 봄이나 가을, 꽃과 단풍으로 점점이 수놓인 봉우리들이 되비치는 구담의 뱃놀이는 천하 제일의 흥취로 꼽혔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은 그 광경을 ‘바위벼랑에는 군데군데 단풍이 물들고, 서리가 내리니 가을물은 더욱 맑아, 조각배에 탄 사람은 병풍 속으로 들어가더라······’ 하고 읊었다.명종 초 단양군수로 부임하던 퇴계 이황은 청풍에서 배를 타고 단양으로 거슬러 오르며 여울마다 시를 지었다고 한다. 구담봉과 옥순봉 사이의 소석대(농암)에는 이인상의 글씨 ‘流水高山’(유수고산)과 함께 구담봉의 장관을 노래한 퇴계의 시가 새겨져 있으며 옥순봉에도 이황의 글씨로 ‘丹邱洞門’(단구동문) 넉 자가 새겨져 단양과 제천시의 경계임을 알려주었는데 지금은 충주호 물에 잠겨서 가뭄 때나 물 밖으로 살짝 드러난다.
<옥순봉>
남한강가에 섰던 구담봉과 옥순봉은 충주댐이 생긴 후로 아랫도리가 물에 잠겨 충주호 안의 섬처럼 되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장회나루에서 뜨는 유람선을 타고 물 위를 맴돌며 구경한다. 멋진 자연경관을 표현하는 말 중에 ‘꼭 만들어놓은 것 같다’느니 ‘그림 같다’느니 하는 말이 있다. 저런 것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걸 믿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는 뜻이겠다. 그림 같은 옥순봉, 구담봉, 사인암 들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에 의해 진짜 그림으로도 남아 있다.
단양팔경의 제7경은 도담삼봉(嶋潭三峰)이다. 매포읍 도담리 앞으로 흐르는 남한강 가운데 봉우리 세 개가 떠 있어서 삼봉이고 또 섬이 있는 물이므로 도담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매포읍 도전리 출신으로, 수학하던 시절에 자주 찾던 이곳을 사랑하여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지었다고 한다. 세 봉우리의 모양 때문에 생겨난 전설에 따르면 셋 중에서 가운데 있는 것이 남편, 북쪽 것이 아내, 남쪽 것이 첩 봉우리이다. 남편과 아내는 사이가 좋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첩을 얻었고, 곧 아기를 가진 첩은 남편 쪽을 향해 자랑스레 배를 내밀며 배시시 웃고 앉았고 아내는 눈꼴이 시어 등을 돌리고 앉았다고 한다.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이 세 봉우리는 강원도 정선에 있었는데 어느 해 장마 때 흘러흘러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정선땅 관리들이 삼봉을 찾아 이곳까지 와서는 원래 자기들 것이라면서 해마다 세금을 걷어갔다. 그러던 어느 해 정선에서 세리들이 오자 한 아이가 나섰다. “저 삼봉은 우리가 부른 것도 아니고 제멋대로 온 것이오. 그렇게 중요하다면 도로 가져가시오.” 그후로 도담사람들은 삼봉에 대한 세금을 물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도담 삼봉>
제8경은 도담삼봉에서 상류로 조금 거슬러 오른 곳 강가에 있는 석문(石門)이다. 너비 15~20m 높이 25m에 이르는 천연 석문이 산 위에 걸쳐져 훌륭한 경관을 이룬다.
<석문>
단양팔경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먼저 단양팔경 중 제7경과 8경인 도담삼봉과 석문을 돌아보고 다시 제4경인 사인암과 제2경, 3경인 중선암과 상선암을 그리고 제1경인 하선암을 본 후 장회나루에서 배를 타고 제5경, 6경인 구담봉과 옥순봉을 돌아보는 동선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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