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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통영시와 거가대교 그리고 통영의 예술인들
통영의 역사, 지리, 거가대교, 박경리· 유치진· 유치환 · 윤이상
Ⅱ. 통제영의 유적
세병관 · 통제영 · 충렬사 · 문화동벅수
Ⅲ. 미륵도지역 유적
미륵도 · 용화사 · 효봉스님 · 달아공원
Ⅳ. 한산도지역
한산도 · 한려해상공원 · 한산도 이충무공유적
Ⅴ. 한산도대첩
개관 · 한산해전 · 왜군의 퇴각 · 한산도와 삼도수군통제영
Ⅵ. 일본 · 중국인들이 보는 이순신
통영의 역사, 지리, 거가대교, 박경리· 유치진· 유치환 · 윤이상
Ⅱ. 통제영의 유적
세병관 · 통제영 · 충렬사 · 문화동벅수
Ⅲ. 미륵도지역 유적
미륵도 · 용화사 · 효봉스님 · 달아공원
Ⅳ. 한산도지역
한산도 · 한려해상공원 · 한산도 이충무공유적
Ⅴ. 한산도대첩
개관 · 한산해전 · 왜군의 퇴각 · 한산도와 삼도수군통제영
Ⅵ. 일본 · 중국인들이 보는 이순신
본문내용
전의 한 청년이 그래했듯이. 이순신 장군은 그 처절한 전쟁 속에서 忠 · 孝 · 義 · 愛 · 善 을 가르치신 분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들은 이순신장군을 영웅 이순신이라 말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 \"성웅 이순신장군\"
8. 장군님의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1996. 4월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중, (14부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에서.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 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수많은 전공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 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에게는 단 한 번의 혁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먼저, 우린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이순신장군은 혁명에 성공과 함께 조선의 멸(滅)과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 장군에겐 2만 여명의 수군과 약 5천여 명으로 추정되는 의병.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이남. 경상도부근에 이순신을 따르는 군(軍)의 수는 1만 여명에 이른다. 총 3만 5천여 명에 다다르고 이 군대에 대응할 조선의 군대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이와 함께 이순신에겐 두 가지의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심과 명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명나라의 군대였다. 명나라 군대 역시 이순신에 대한 반감이 컸으며, 명나라의 장수 유정은 바로 곧 명나라의 황제를 대신 하는 것이기에 이순신에겐 유정을 넘어서야 1차적인 혁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혁명 후 명나라 황제의 질타를 과연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였다. 조선의 선조는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키자 바로 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을 것이다. 명나라의 황제가 도와준다면 이순신의 군대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자신을 도와줄 군대가 올 것이라 생각 했지만, 뜻밖에도 명나라에서는 군대가 아닌 사신이 온다. 조선 조정으로가 아닌 명나라의 장수 유정에게. 명나라의 황제는 조선의 왕 선조가 아닌 이순신 통제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왜였을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였다. 그 당시 명나라의 국력은 임진왜란(정유)으로 인하여 국력이 크게 약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북으로의 오랑캐(훗날 청)의 견제가 심해져 있었으니. 전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강력한 이순신 군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나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조선의 민심역시 이순신에게 있는 것을 알기에) 바로 이순신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 이것은 또한 명나라에게도 커다란 이득인 것이다. 힘없는 선조가 조선의 왕이 되기보다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이순신을 도와 그에게 왕의 자리를 주고 그 이순신의 군대로 하여금 후에 명(明)을 위협하는 오랑캐를 견제 하자는 것이다.
명나라의 문록(文錄)을 보면. 조선으로 건너간 명나라 장수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에 의하면.
“폐하 이 전란이 끝나면 즉시 조선의 수군통제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부르소서. 그로 하여금 북의 오랑캐를 견제토록 하소서. 이순신통제사는 능히 우리 명(明)의 후환을 없애 줄 것이라고 신(臣) 진린은 굳게 믿사옵니다.” 등등 이에 명(明)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의 군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자. 라는 대신들의 논의(論議)가 있었음 알 수 있었다. 이는 이미 명나라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 선조에게 우리 명(明)의 도움을 받았으니 조선도 명(明)을 도우라.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오라하라. 이미 각본은 짜여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혁명을 하든 안 하든, 이미 명나라에서는 훗날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혁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왜였을까? 중국역사 조선의 역사,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는 반드시 쿠테타든 혁명이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니면 토사구팽이라도. 그런데 이순신은 쿠테타도 혁명도 토사구팽도 모두 거절하였다. 이순신은 오직 죽음만을 선택 한 것이었다. 이순신 과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에서는 명나라가 이순신장군을 끌어드려서 북의 오랑캐 (훗날 청나라)를 견제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단순히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이룩하면 조선이 발전되었을 거라고 단정을 내리곤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정세란 매우 이해관계가 복잡한 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어쩌면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셨는지도 모른다.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키고 명나라가 장군을 도와주면 낭떠러지에 몰린 조선 왕 선조와 조정대신 (이순신의 반대파 세력)들이 뜻밖에도 일본과 손을 잡게 되고 비밀협약을 한다면, 과연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혹시, 이순신장군은 그러한 모든 과정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이순신장군은 너무나도 치밀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드라마를 보고 흥분해서 가설을 내세우지만, 이순신장군은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정확이 아셨던 분이다. 400년이 지난 지금 장군께 질문을 던져 본다. 장군님 당신은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도 두려우셨습니까? 조선이 피로 물들여질 거라는 걱정이 그리도 두려우셨습니까?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신 건가요? 2000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장군님도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건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일을 주관 하셨지만 미약한 인간의 몸이셨던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당신 앞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립니다. 장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책이 총32권. 그것도 한국 학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학자들에 의해 저서가 된 책. 그들은 우리를 알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린 저들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 역사에 대해서만은 더 알아야 하지 않을 까요? 우리는 얼마나 그 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그 분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씀 이 무엇이었는지?
이렇게 말한다. \"성웅 이순신장군\"
8. 장군님의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1996. 4월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중, (14부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에서.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 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수많은 전공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 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에게는 단 한 번의 혁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먼저, 우린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이순신장군은 혁명에 성공과 함께 조선의 멸(滅)과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 장군에겐 2만 여명의 수군과 약 5천여 명으로 추정되는 의병.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이남. 경상도부근에 이순신을 따르는 군(軍)의 수는 1만 여명에 이른다. 총 3만 5천여 명에 다다르고 이 군대에 대응할 조선의 군대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이와 함께 이순신에겐 두 가지의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심과 명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명나라의 군대였다. 명나라 군대 역시 이순신에 대한 반감이 컸으며, 명나라의 장수 유정은 바로 곧 명나라의 황제를 대신 하는 것이기에 이순신에겐 유정을 넘어서야 1차적인 혁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혁명 후 명나라 황제의 질타를 과연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였다. 조선의 선조는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키자 바로 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을 것이다. 명나라의 황제가 도와준다면 이순신의 군대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자신을 도와줄 군대가 올 것이라 생각 했지만, 뜻밖에도 명나라에서는 군대가 아닌 사신이 온다. 조선 조정으로가 아닌 명나라의 장수 유정에게. 명나라의 황제는 조선의 왕 선조가 아닌 이순신 통제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왜였을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였다. 그 당시 명나라의 국력은 임진왜란(정유)으로 인하여 국력이 크게 약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북으로의 오랑캐(훗날 청)의 견제가 심해져 있었으니. 전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강력한 이순신 군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나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조선의 민심역시 이순신에게 있는 것을 알기에) 바로 이순신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 이것은 또한 명나라에게도 커다란 이득인 것이다. 힘없는 선조가 조선의 왕이 되기보다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이순신을 도와 그에게 왕의 자리를 주고 그 이순신의 군대로 하여금 후에 명(明)을 위협하는 오랑캐를 견제 하자는 것이다.
명나라의 문록(文錄)을 보면. 조선으로 건너간 명나라 장수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에 의하면.
“폐하 이 전란이 끝나면 즉시 조선의 수군통제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부르소서. 그로 하여금 북의 오랑캐를 견제토록 하소서. 이순신통제사는 능히 우리 명(明)의 후환을 없애 줄 것이라고 신(臣) 진린은 굳게 믿사옵니다.” 등등 이에 명(明)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의 군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자. 라는 대신들의 논의(論議)가 있었음 알 수 있었다. 이는 이미 명나라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 선조에게 우리 명(明)의 도움을 받았으니 조선도 명(明)을 도우라.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오라하라. 이미 각본은 짜여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혁명을 하든 안 하든, 이미 명나라에서는 훗날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혁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왜였을까? 중국역사 조선의 역사,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는 반드시 쿠테타든 혁명이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니면 토사구팽이라도. 그런데 이순신은 쿠테타도 혁명도 토사구팽도 모두 거절하였다. 이순신은 오직 죽음만을 선택 한 것이었다. 이순신 과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에서는 명나라가 이순신장군을 끌어드려서 북의 오랑캐 (훗날 청나라)를 견제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단순히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이룩하면 조선이 발전되었을 거라고 단정을 내리곤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정세란 매우 이해관계가 복잡한 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어쩌면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셨는지도 모른다.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키고 명나라가 장군을 도와주면 낭떠러지에 몰린 조선 왕 선조와 조정대신 (이순신의 반대파 세력)들이 뜻밖에도 일본과 손을 잡게 되고 비밀협약을 한다면, 과연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혹시, 이순신장군은 그러한 모든 과정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이순신장군은 너무나도 치밀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드라마를 보고 흥분해서 가설을 내세우지만, 이순신장군은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정확이 아셨던 분이다. 400년이 지난 지금 장군께 질문을 던져 본다. 장군님 당신은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도 두려우셨습니까? 조선이 피로 물들여질 거라는 걱정이 그리도 두려우셨습니까?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신 건가요? 2000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장군님도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건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일을 주관 하셨지만 미약한 인간의 몸이셨던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당신 앞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립니다. 장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책이 총32권. 그것도 한국 학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학자들에 의해 저서가 된 책. 그들은 우리를 알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린 저들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 역사에 대해서만은 더 알아야 하지 않을 까요? 우리는 얼마나 그 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그 분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씀 이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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