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국 행복의 기원 5_9장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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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은국 행복의 기원 5_9장 요약 발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chapter 5. 결국은 사람이다
chapter 6.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chapter 7. ‘사람쟁이’ 성격
chapter 8. 한국인의 행복
chapter 9.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본문내용

않은 결과가 올 수 있다.(178)
chapter 9.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표현이 있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였던 오컴의 이름에서 탄생한 이 용어는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 이상의 가정과 개념들은 면도날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로 쓰인다. 사고의 절약을 요구하는 이 원리는 좋은 과학 이론의 기본 지침이다.(183)
최근 심리학에 등장한 진화생물학적 견해는 이 날카로운 면도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를 전면 개편 중이다. 아브라함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간의 다양한 욕구들은 피라미드 모양의 위계적 단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가장 아래 단계의 생리적 욕구들(식욕 등)이 채워져야 보다 고차원적인 상위 욕구(자아성취 등)에 관심이 생긴다는 전제다. 한마디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메시지다.(183-184)
하지만 철옹성 같던 매슬로우의 이론도 최근 위아래가 바뀌고 있다. 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자가 되려 하고 가장 빠른 직구를 던지려고 할까? 즉 왜 자아성취를 하려고 할까? 그동안 심리학자들은 온갖 철학적 도덕적 이유를 더한 장황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진화 생물학적 해석은 모든 것을 간명하게 만들었다.(184)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 심리학적 설명이다. 혁명적이다.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184)
앞에서 살펴본 피카소나 칭기즈칸뿐 아니라, 자아 성취의 교과서적 인물인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사실은 대단한 여성 편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금강산을 찾아가는 이유를 본인도 모른다. 그래서 본인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까지도 지나치게 긴 설명을 늘어놓았던 것이다.(184-185)
자아성취와 마찬가지로 행복에 대한 논의들은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고 추상적이다. 오랫동안 철학자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의 정신적 교주로 일컬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히 말하면 행복에 대한 논의를 한 것이 아니었다.(185)
그는 칭송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삶’에 대해 말했던 것이고, 또 그것은 ‘유데모니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좋은’과 ‘정신’의 합성어인 ‘유데모니아’는 앞에서 언급한 자아성취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지금까지 많은 서양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가치 있는 삶이 곧 행복이라는 해석을 해왔다. 그 결과, 행복을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185)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 거창한 이유가 있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귀족 가문에서 최고만을 누리며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스승은 플라톤, 제자는 알렉산더 대왕. 인류 역사에 이렇게 하려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의 행복관도 매우 엘리트주의적이다.(185)
그에 의하면 여자나 노예들은 행복을 누릴 최소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은 ‘칭송받을 만한’ 삶의 구성 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착각’이다.(185-186)
사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정확히 말해 ‘가치 있는 삶’이지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 둘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초엘리트주의적 행복관의 잔재 때문에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이 뒤엉켜 있다.(186)
행복도 오컴의 날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186)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첫째,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선택과 관심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내 선택을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내가 지금 좋고 즐거운 것보다 남들 눈에 사려 깊고 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앞에서 설명했듯 여기 행복은 역풍을 맞기 시작한다.(186-187)
이런 사고는 쾌락적 즐거움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미국 시카고 대학 크리스토퍼 씨이 교수의 유명한 초콜릿 연구가 있다. 대학생들에게 커다란 바퀴벌레 모양의 초콜릿(2온스)과 작은 하트 모양의 초콜릿(0.5온스)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먹는 즐거움은 하트 모양 초콜릿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결국 대다수(68%)는 커다란 바퀴벌레 모양 초콜릿을 선택했다.(187)
행복하기 위해 쾌락주의자가 되자는 말인가? 다소 그럴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자신을 집단의 일부로 생각할수록 행복의 쾌락적 부분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188)
그동안 우리는 내일이 없이 즐겁게 사는 여름 배짱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도록 세뇌 받고 살았다. 두 가지 염려 때문에. 첫째, 쾌락주의자들의 즐거움은 저급하다. 둘째, 그런 삶의 말로는 한심할 것이다. 둘 다 근거 없는 염려다. 세상 모든 배짱이들이 루저가 된다는 증거는 없다. 수많은 최근 연구들에서 나오는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다.(188)
행복한 사람들을 오랜 시간 추적한 연구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사회적 관계도 윤택해지고 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된다. (198)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하였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 기쁨 등을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즉 우리가 온갖 오명을 씌우는 쾌락주의자들의 모습이다. 하루를 보면 이들의 삶이 조금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10년 뒤는 이야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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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5.04
  • 저작시기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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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24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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