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와생활문화 2024년 2학기 방송통신대 중간과제물)조선 후기 오일장의 출현과정을 설명하고, 보부상 조직과 그 특징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택과 향촌의 민가 조선시대 과거와 학교교육에 관하여 설명하고 과거의 종류와 시험과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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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통사회와생활문화 2024년 2학기 방송통신대 중간과제물)조선 후기 오일장의 출현과정을 설명하고, 보부상 조직과 그 특징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택과 향촌의 민가 조선시대 과거와 학교교육에 관하여 설명하고 과거의 종류와 시험과목 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아래 문제에 대해 각각 서술해주세요(총 3문제. 문제별 10점. 총 30점 만점).
※ 문제 답안 작성에 활용한 참고 자료를 문제별로 표기할 것(과제 작성 시 지시사항 내용 참조).

(1) 조선 후기 ‘오일장’의 출현과정을 설명하고, 보부상 조직과 그 특징을 서술해주세요.
① 조선후기 오일장의 출현 과정
② 보부상 조직과 그 특징

(2)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택과 향촌의 민가에 관하여 서술해주세요.
①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택
② 조선시대 향촌의 민가

(3) 조선시대 과거와 학교교육에 관하여 설명하고, 과거의 종류와 시험과목에 관해 서술해주세요.
① 조선시대 과거와 학교교육
② 과거의 종류와 시험과목

(4) 참고문헌

본문내용

교육을 담당하게 했다. 이러한 국가에서 세운 학교들을 관학(官學)이라 불렀다. 유생들은 지역의 학당이나 향교에서 기본 소양을 익히고 생원·진사시를 통해 생원 또는 진사의 자격을 얻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성균관에서는 주로 경서(經書)와 역사서를 읽고, 여러 문체의 글을 짓는 제술(製述)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유생들은 매일 경서를 공부하는 일강(日講)에 참여하고, 열흘에 한 번씩 정해진 문체로 글을 짓는 순제(旬製)를 통해 평가받았다. 이 글의 형식은 경서의 의(義), 논(論), 부(賦), 표(表), 대책(對策), 기(記) 등으로, 문과 시험의 주요 과목과 일치했다. 즉, 성균관의 교육 과정은 문과 시험을 준비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성균관의 역할은 문관을 양성하고, 문과를 통해 이들을 국가에 배치하는 데 있었다.
향교와 사학의 교육 내용은 성균관과 비슷하게 경학 중심이었으며, 제술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학의 시험 과목이 시(詩)와 부(賦)였다는 점에서 그 교육 내용 역시 시와 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교육 내용은 생원·진사시의 시험 과목과도 연관이 있었다. 결국, 성균관이 문과 시험을 위한 교육을 제공한 것처럼, 향교와 사학 역시 생원·진사시를 준비하는 교육을 담당했다.
조선 시대의 관학은 현대의 학교와 달리, 입학이나 졸업이 정해진 시점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학기도 일정하지 않았다. 유생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학교에 들어와 공부하거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매일 출석할 필요는 없었다. 유생들은 집안일을 돌보거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학교에 꾸준히 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시대의 관학교육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각 유생은 자신의 진도에 맞추어 독서와 강론에 참여했고, 시험도 각자의 독서량에 따라 달라졌다. 교관(敎官), 교수(敎授), 훈도(訓導) 등으로 불린 교사들은 정해진 교육 과정보다는 개별 학업을 도와주는 역할에 더 가까웠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향교는 교육 기능이 점점 약해졌으며, 교수와 훈도의 파견도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16세기 중반부터는 민간에서 주도한 서원(書院)이라는 새로운 교육기관이 등장했다. 서원은 관학과 달리 과거 시험 준비보다는 학문 연구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또한 일정한 교육 과정이 없었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며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때로는 강회(講會)라는 특강 프로그램이 운영되었지만, 전반적으로 서원은 유생들이 자율적으로 학문을 탐구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송찬섭 외 공저,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195~197쪽.
② 과거의 종류와 시험과목
조선 시대에는 문과, 무과, 잡과, 그리고 생원·진사시가 있었다. 문과와 무과는 각각 문관과 무관을 선발하는 시험으로, 문무 양면의 전문 관료를 등용하기 위한 제도였다. 잡과는 통역관을 뽑는 역과(譯科), 의사를 선발하는 의과(醫科), 천문학자를 뽑는 음양과(陰陽科), 법률가를 선발하는 율과(律科) 등 다양한 전문직 관료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었다. 이와 달리 생원·진사시는 관료 선발이 아닌 자격시험으로, 합격자는 생원 또는 진사의 자격을 얻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으며, 관료와 비슷한 예우를 받았다. 양반들이 주로 응시한 시험은 문과와 생원·진사시였다.
문과는 그 형식과 시행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식년시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치러졌고, 알성시는 국왕이 성균관을 방문한 기념으로 실시되었으며, 시험 일정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국가의 경사를 기념하는 경과(慶科)로는 증광시, 별시, 정시가 있었는데, 증광시는 초시, 회시, 전시의 3단계로 구성되었고, 별시는 초시와 전시의 2단계 시험이었다. 정시는 전시(殿試)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백일장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경과의 경우, 상황에 따라 증광시, 별시, 정시 중 하나를 선택하여 시행했으며, 동일한 사건을 기념하는 시험이라도 시기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왕의 즉위를 기념하는 과거는 항상 증광시로 시행되었고, 이 증광시는 가장 큰 규모의 시험이었다.
문과 시험의 과목은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과목이 포함된 시험은 3년마다 시행되는 식년시였다. 증광시와 별시는 식년시에서 몇 가지 과목을 제외한 간소화된 시험이었다. 예를 들어, 증광시는 식년시에서 강경(講經) 시험을 제외한 형식이었으며, 별시는 경학과 사서의(四書疑)를 제외하고 제술만을 치렀다. 알성시와 정시는 대책문, 표, 전 등 다양한 문체 중 하나가 출제되었으며, 이는 식년시 전시와 유사한 형식을 띠었다.
생원·진사시는 식년시와 증광시에서만 치러졌으며, 시험 과목과 절차는 동일했다. 초시와 회시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생원시는 사서의(四書疑)와 오경의(五經義), 진사시는 시(詩)와 부(賦)로 시험을 보았다. 생원·진사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하여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으며, 이후 문과에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문과는 생원·진사뿐만 아니라 일반 유생인 유학(幼學)도 응시할 수 있었지만, 생원이나 진사가 되면 성균관에서의 교육과 시험을 통해 문과에 합격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조선 시대의 과거 제도는 여러 단계와 시험 종류가 존재해 복잡해 보일 수 있었지만, 응시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시험 과목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시험마다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시험 종류에 따라 배점이나 출제 경향이 달랐기 때문에 시험 공고가 나면 해당 시험에 맞는 대비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식년시에서는 회시 초장의 사서삼경(四書三經) 강경 시험이 당락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는 데 많은 노력이 요구되었다. 반면 증광시 등 부정기 시험에서는 강경 시험이 생략되고 제술만 치러졌기 때문에, 제술 과목 위주의 준비가 요구되었다.
송찬섭 외 공저,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199~201쪽.
(4) 참고문헌
송찬섭 외(2020),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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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9.08
  • 저작시기20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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