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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동아시아 문화권
Ⅱ. 서아시아 문화권
Ⅲ. 남아시아 문화권
Ⅱ. 서아시아 문화권
Ⅲ. 남아시아 문화권
본문내용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옥순,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책세상>
마무리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였는가?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최초에 인류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언어를 사용하고 도구를 만들면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짐으로써 오히려 환경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인류는 그들의 앞날을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인류 그들 자신에 의해 만들어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인류 특유의 생활 방법과 소산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르며, 인류의 역사는 이와 같이 인간이 자연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연 환경을 인간의 생활에 유익하도록 이용, 개선하면서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도구의 제작·사용은 인류에게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먼저 도구의 발달과 이에 따른 생산력의 발달은 무엇보다도 인류가 획득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또 의생활과 주생활면에서도 충실해졌다. 이제 인류는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의 무방비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통하여 자연의 여러 가지 성질을 배우고 그것들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을 증대시켜 갔다. 이는 끊임없는 도구의 발달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후 화살촉, 돌괭이를 지나 바퀴, 쟁기, 그리고 증기 기관, 반도체의 발명과 함께 인류 사회는 선사 시대 수렵 채취 사회로부터 농경 사회를 거쳐 오늘날의 산업 사회로 발전해 왔다.
이제 인류는 인디언들을 사실상 절멸시켰던 천연두를 박멸했고, 많은 사람들은 굶주림보다는 비만을 걱정하게 되었으며, 이런 의학의 발달과 풍요는 인간의 기대 수명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런데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여 환경을 지배하고 생산력을 증대시키면서 자연은 여태컷 자연이 스스로 해왔던 조절의 역할, 즉 '분배'의 역할마저 인류에게 떠 넘기게 되었다. 이로부터 인류는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기대하지 않았던 이전에는 없었던 문제들, 즉 인류 상호간의 불평등과 이에 따른 갈등, 그리고 인간에 의한 자연의 정복과 그에 대한 자연의 보복에 직면하게 된다.
먼저 생산력의 증대에 따른 잉여 생산물의 창출은 인간 상호 간의 불평등 구조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도구에 개발에 있어서도 생산력의 발달을 위한 것 보다도 오히려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무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압할 수 있는 상징물 등의 개발에 더 주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자연 재해보다도 더 큰 재앙을 인류는 다른 인류에게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5,6년간의 전쟁 기간에 5,000만명이 사망하였고, 단 한발의 원자폭탄으로 10만명을 죽일 수도 있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자연의 정복이라는 과제 외에 새로이 다른 인간의 지배로부터의 탈피라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후 인류의 역사라는 기록물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은 생산력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국가, 권력, 전쟁, 혁명 등 사람과 사람간의 문제였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가정과 공장, 그리고 길거리 등에서 화석 연료를 태우고 있다. 이는 공기 오염을 가져오고, 다시 그로 인해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공기 청정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또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흙냄새 나는 교외 언덕에 몇백만 달러 짜리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상대적으로 스모그가 적은 교외 지대에서 도심지 직장까지 150마일을 매일 출퇴근해야 한다.
) 마빈 해리스, 1995, 「작은 인간」, 민음사, p.134
물론 공기 청정기, 자동차는 화석 연료로 움직인다.
한편 물질 문명의 비약적인 발달은 풍요로운 삶과 함께 인류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들을 초래하였다. 우리는 교통이 정체되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 까닭은 모른 채 10마일이나 길게 차가 막혀 있어 불안과 긴장에 시달리는 것, 그렇게 지루하게 2시간을 그 정체 구간을 빠져나가 보니 길거리에 부숴진 차와 흥건한 피가 널려 있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그리고 오늘날 도시에서 자동차가 옛날의 마차보다 더 느리게 달리리라는 것 역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음이 확실하다.
) 위 책, p.459
그렇다고 하여 생산력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결코 아니다. 1980년대에 사상 최악의 굶주림이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강타했다. 21세기를 불과 몇 년 앞둔 지금,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죽어 가고 있다.
아직 인류는 도구의 개발과 그에 따르는 갖가지의 역기능이라는 두 자루의 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루느냐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아직도 많은 합리주의자들은 모든 난관들을 과학 기술의 발달이 보다 풍족한 생산력을 보장해 줌으로써 극복해 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류의 앞날은 오직 神에 의해 좌우될 뿐으로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비해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길밖에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인류의 현주소는 자연(神)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이 선택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물질 문명의 발달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풍요로운 생활일뿐만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재앙이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양도한 한계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20세기까지 인류가 숨가쁘게 달려온 물질 문명 발달의 역기능에 주목해야 한다. 잠시 물질적 진보에만 매달리는 것을 멈추고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비만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여유 식량을 굶주리는 이웃에게 양보할 수 있고, 윤택한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파괴한 자연을 복구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어리석음을 막을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이 지구와 인류의 보존을 연장시킬 수 있는 올바른 선택이다. 이게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다면 우리는 정말 신에 의해 예정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옥순,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책세상>
마무리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였는가?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최초에 인류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언어를 사용하고 도구를 만들면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짐으로써 오히려 환경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인류는 그들의 앞날을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인류 그들 자신에 의해 만들어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인류 특유의 생활 방법과 소산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르며, 인류의 역사는 이와 같이 인간이 자연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연 환경을 인간의 생활에 유익하도록 이용, 개선하면서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도구의 제작·사용은 인류에게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먼저 도구의 발달과 이에 따른 생산력의 발달은 무엇보다도 인류가 획득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또 의생활과 주생활면에서도 충실해졌다. 이제 인류는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의 무방비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통하여 자연의 여러 가지 성질을 배우고 그것들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을 증대시켜 갔다. 이는 끊임없는 도구의 발달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후 화살촉, 돌괭이를 지나 바퀴, 쟁기, 그리고 증기 기관, 반도체의 발명과 함께 인류 사회는 선사 시대 수렵 채취 사회로부터 농경 사회를 거쳐 오늘날의 산업 사회로 발전해 왔다.
이제 인류는 인디언들을 사실상 절멸시켰던 천연두를 박멸했고, 많은 사람들은 굶주림보다는 비만을 걱정하게 되었으며, 이런 의학의 발달과 풍요는 인간의 기대 수명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런데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여 환경을 지배하고 생산력을 증대시키면서 자연은 여태컷 자연이 스스로 해왔던 조절의 역할, 즉 '분배'의 역할마저 인류에게 떠 넘기게 되었다. 이로부터 인류는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기대하지 않았던 이전에는 없었던 문제들, 즉 인류 상호간의 불평등과 이에 따른 갈등, 그리고 인간에 의한 자연의 정복과 그에 대한 자연의 보복에 직면하게 된다.
먼저 생산력의 증대에 따른 잉여 생산물의 창출은 인간 상호 간의 불평등 구조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도구에 개발에 있어서도 생산력의 발달을 위한 것 보다도 오히려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무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압할 수 있는 상징물 등의 개발에 더 주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자연 재해보다도 더 큰 재앙을 인류는 다른 인류에게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5,6년간의 전쟁 기간에 5,000만명이 사망하였고, 단 한발의 원자폭탄으로 10만명을 죽일 수도 있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자연의 정복이라는 과제 외에 새로이 다른 인간의 지배로부터의 탈피라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후 인류의 역사라는 기록물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은 생산력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국가, 권력, 전쟁, 혁명 등 사람과 사람간의 문제였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가정과 공장, 그리고 길거리 등에서 화석 연료를 태우고 있다. 이는 공기 오염을 가져오고, 다시 그로 인해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공기 청정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또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흙냄새 나는 교외 언덕에 몇백만 달러 짜리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상대적으로 스모그가 적은 교외 지대에서 도심지 직장까지 150마일을 매일 출퇴근해야 한다.
) 마빈 해리스, 1995, 「작은 인간」, 민음사, p.134
물론 공기 청정기, 자동차는 화석 연료로 움직인다.
한편 물질 문명의 비약적인 발달은 풍요로운 삶과 함께 인류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들을 초래하였다. 우리는 교통이 정체되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 까닭은 모른 채 10마일이나 길게 차가 막혀 있어 불안과 긴장에 시달리는 것, 그렇게 지루하게 2시간을 그 정체 구간을 빠져나가 보니 길거리에 부숴진 차와 흥건한 피가 널려 있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그리고 오늘날 도시에서 자동차가 옛날의 마차보다 더 느리게 달리리라는 것 역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음이 확실하다.
) 위 책, p.459
그렇다고 하여 생산력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결코 아니다. 1980년대에 사상 최악의 굶주림이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강타했다. 21세기를 불과 몇 년 앞둔 지금,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죽어 가고 있다.
아직 인류는 도구의 개발과 그에 따르는 갖가지의 역기능이라는 두 자루의 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루느냐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아직도 많은 합리주의자들은 모든 난관들을 과학 기술의 발달이 보다 풍족한 생산력을 보장해 줌으로써 극복해 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류의 앞날은 오직 神에 의해 좌우될 뿐으로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비해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길밖에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인류의 현주소는 자연(神)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이 선택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물질 문명의 발달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풍요로운 생활일뿐만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재앙이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양도한 한계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20세기까지 인류가 숨가쁘게 달려온 물질 문명 발달의 역기능에 주목해야 한다. 잠시 물질적 진보에만 매달리는 것을 멈추고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비만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여유 식량을 굶주리는 이웃에게 양보할 수 있고, 윤택한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파괴한 자연을 복구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어리석음을 막을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이 지구와 인류의 보존을 연장시킬 수 있는 올바른 선택이다. 이게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다면 우리는 정말 신에 의해 예정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