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제 (선제) 5년27)(B.C. 69) 3월 초하룻날에 있었던 일이다.
6부의 조상, 즉 6촌의 우두머리들은 각기 그 자제들을 데리고 알천가 언덕에 모였다. 회의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우리에겐 위에 군림하여 백성을 다스려 갈 군주가 없다. 때문에 백성들은 각자 제 마음 내키는 대로들 행동하여 질서가 잡혀지지 않고있다. 어찌 덕 있는 분을 찾아내어 군주로 맞이하지 않겠으며, 나라를 세우고 도성을 갖추지 않을까보냐?"
그때다. 회의장소인 알천가 언덕에서 남쪽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양산 기슭에 이상한 기운이 보였다. 그들은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바라보았다. 양산 기슭의 나정(나정) 곁, 그 신비스러운 기운은 땅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전광과 같았다. 그리고 그 서기가 드리워진 곳엔 흰 말 한 마리가 꿇어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흰 말이 절하고 있는 곳을 찾았다. 그 흰 말 앞에는 자줏빛 알(혹은 푸른 빛깔의 큰 알이라고도 함)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소리쳐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갈라 보았다. 알에선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생김새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모두들 놀라고 신기해했다. 아이를 동천(동천사는사뇌야(사뇌야) 북쪽에 있다)에 데리고 가서 몸을 씻겼다. 아이의 몸에선 광채가 났다. 새와 짐승들이 덩달아 춤을 추었다. 하늘과 땅이 울렁이고 해와 달의 빛이 더욱 청명해졌다.
그래서 혁거세왕(혁거세왕)28)이라 이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직위에 대한 칭호는 거슬한(거슬감)29)이라고 했다.
6촌 사람들은 하늘이 자기들의 임금님을 내려 준 이 경사를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다.
"이제 천자님은 이미 강림하셨다. 그렇다면 또 덕 있는 아가씨를 찾아 왕후로 짝을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역시 이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 우물가에서 한 마리 계룡이 나타나더니 그 왼편 옆구리로 한 계집아이를 탄생시켰다.30) 그 자태가 유달리 고왔다. 그러나 한 가지 그의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처럼 생겼었다. 곧 월성 북쪽에 있는 시내로 데리고 가서 씻겼더니 그 부리가 빠지면서 예쁘장한 사람의 입술이 나타났다. 부리가 빠졌다고 해서 그 시내의 이름을 발천(발천 )이라 했다.
남산 서쪽 비탈(지금의 창림사터임)에다 궁실을 짓고서 두 신성한 아이들을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태어났고, 그 알이 마치 박 같았으므로 박(박)이라 성을 지었다. 그리고 계집아이는 그가 나왔던 우물의 이름 알영 (알영)을 따서 이름으로 했다. 성남아(성흑아)와 성녀아(성여아), 이 둘이 자라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즉 한의 선제 17년(B.C. 57)에 성남아 혁거세는 왕으로 추대되었고 성녀아 알영은 왕후가 되었다. 그리고 국호를 '서라벌(서나벌)' 또는 '서벌'이라 일컬었다. 혹은 '사라'·'사로'라고도 했다. 처음 왕이 계정(계정)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국호를 '계림국(계림국)이라 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계림이 상서로움을 나타낸 때문이었다. 한편 다른 얘기로는 탈해왕 시대에 김알지(금알지)를 얻게 될 때, 닭이 숲 속에서 울었다고 해서 국호를 계림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신라'란 국호를 정한 것은 후대의 일이다.
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간 뒤 7일 만에 왕의 유체(유체)가 흩어져 땅으로 떨어지며 알영 왕후도 따라 돌아가셨다고 한다. 서라벌 사람들이 그 흩어져 내린 왕의 유체를 한자리에 모아 장사지내려 했더니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사람들을 쫓아내며 그렇게 못하게 했다. 하는 수 없어 다섯 부분으로 흩어져 놓인 그대로 각기 따로 능을 모았다. 다섯 개의 능, 그래서 오릉이라 했다. 한편 구렁이에 관련된 능이기 때문에 사능이라고도 했다. 담엄사 북쪽에 있는 능이 그것이다.
태자 남해(남해)가 왕위를 계승했다.
27) 고본에는 건무 원년이라 하고, 또는 건원 3년 등이라고 하나 모두 잘못이다 여기서 건무는 후한 광무제의 연호로 그 원년은 AD. 25년, 건원은 전한의 무제 연호로 그 3년은 B.C. 138년이 된다.
28) '혁거세'란 아마 향언(향언)일 것이다 혹은 '불구내왕(불거내왕)'이라고도 하니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29) 혹은 거서간(거서간)이라고도 하니 이는 그가 최초로 입을 열 때 스스로 일컫기를 '알지 거서간 한번 일어나다'고 했으므로 그 말에 따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거서간'은 왕자의 존칭이 되었다.
30) 흑은 용이 나타나 죽기에 그 배를 갈라 동녀를 얻었다고 한다.
해설 및 감상
이 신화(신화)는 『삼국사기』권1에 있는 '신라본기 혁거세 거서간 (혁거세거서간)'조에도 전한다. 이때 '거서간'은 왕이라는 뜻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그리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이 신화는 천강 난생(천강난생) 신화이다 이런 유형에는 「김수로왕 신화」가 있다. 천제 (천제)가 직접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빛과 같은 신비스러운 서기(서기)가 땅으로 드리워져 있었다든지, 백마가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든지 하는 것 등으로 혁거세의 본향이 하늘임을 시사하고 있다. 혁거세는 또 「선도산 성모 이야기」에 보면 선도산 성모(성모)가 낳았다고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신화는 고구려나 부여의 신화처럼 시련이나 투쟁의 과정이 없이 아기 때부터 숭앙을 받았다는 점이 그들 신화와는 다르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은 천마(천마)로서 천신족의 권위의 상징이며,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신화와의 관계는 「단군신화」,「동명왕신화」, 「김수로왕신화」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편 우리 현행 교과서에서는 다소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으나 과거 개화기부터 1950년대까지는 초등용 국어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실려있어 그 중요성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 문헌
김병규(1985), 『박혁거세 신화의 상징 연구』(성균관대학원 석사논문)
김현룡(1984), 「혁거세 신화와 수로왕 신화」, 『한국 고소설론』 (새문사)
이재수(1960), 「박혁거세 전설 논고」(『고병간 박사 송수기념 논총』)
6부의 조상, 즉 6촌의 우두머리들은 각기 그 자제들을 데리고 알천가 언덕에 모였다. 회의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우리에겐 위에 군림하여 백성을 다스려 갈 군주가 없다. 때문에 백성들은 각자 제 마음 내키는 대로들 행동하여 질서가 잡혀지지 않고있다. 어찌 덕 있는 분을 찾아내어 군주로 맞이하지 않겠으며, 나라를 세우고 도성을 갖추지 않을까보냐?"
그때다. 회의장소인 알천가 언덕에서 남쪽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양산 기슭에 이상한 기운이 보였다. 그들은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바라보았다. 양산 기슭의 나정(나정) 곁, 그 신비스러운 기운은 땅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전광과 같았다. 그리고 그 서기가 드리워진 곳엔 흰 말 한 마리가 꿇어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흰 말이 절하고 있는 곳을 찾았다. 그 흰 말 앞에는 자줏빛 알(혹은 푸른 빛깔의 큰 알이라고도 함)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소리쳐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갈라 보았다. 알에선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생김새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모두들 놀라고 신기해했다. 아이를 동천(동천사는사뇌야(사뇌야) 북쪽에 있다)에 데리고 가서 몸을 씻겼다. 아이의 몸에선 광채가 났다. 새와 짐승들이 덩달아 춤을 추었다. 하늘과 땅이 울렁이고 해와 달의 빛이 더욱 청명해졌다.
그래서 혁거세왕(혁거세왕)28)이라 이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직위에 대한 칭호는 거슬한(거슬감)29)이라고 했다.
6촌 사람들은 하늘이 자기들의 임금님을 내려 준 이 경사를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다.
"이제 천자님은 이미 강림하셨다. 그렇다면 또 덕 있는 아가씨를 찾아 왕후로 짝을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역시 이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 우물가에서 한 마리 계룡이 나타나더니 그 왼편 옆구리로 한 계집아이를 탄생시켰다.30) 그 자태가 유달리 고왔다. 그러나 한 가지 그의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처럼 생겼었다. 곧 월성 북쪽에 있는 시내로 데리고 가서 씻겼더니 그 부리가 빠지면서 예쁘장한 사람의 입술이 나타났다. 부리가 빠졌다고 해서 그 시내의 이름을 발천(발천 )이라 했다.
남산 서쪽 비탈(지금의 창림사터임)에다 궁실을 짓고서 두 신성한 아이들을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태어났고, 그 알이 마치 박 같았으므로 박(박)이라 성을 지었다. 그리고 계집아이는 그가 나왔던 우물의 이름 알영 (알영)을 따서 이름으로 했다. 성남아(성흑아)와 성녀아(성여아), 이 둘이 자라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즉 한의 선제 17년(B.C. 57)에 성남아 혁거세는 왕으로 추대되었고 성녀아 알영은 왕후가 되었다. 그리고 국호를 '서라벌(서나벌)' 또는 '서벌'이라 일컬었다. 혹은 '사라'·'사로'라고도 했다. 처음 왕이 계정(계정)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국호를 '계림국(계림국)이라 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계림이 상서로움을 나타낸 때문이었다. 한편 다른 얘기로는 탈해왕 시대에 김알지(금알지)를 얻게 될 때, 닭이 숲 속에서 울었다고 해서 국호를 계림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신라'란 국호를 정한 것은 후대의 일이다.
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간 뒤 7일 만에 왕의 유체(유체)가 흩어져 땅으로 떨어지며 알영 왕후도 따라 돌아가셨다고 한다. 서라벌 사람들이 그 흩어져 내린 왕의 유체를 한자리에 모아 장사지내려 했더니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사람들을 쫓아내며 그렇게 못하게 했다. 하는 수 없어 다섯 부분으로 흩어져 놓인 그대로 각기 따로 능을 모았다. 다섯 개의 능, 그래서 오릉이라 했다. 한편 구렁이에 관련된 능이기 때문에 사능이라고도 했다. 담엄사 북쪽에 있는 능이 그것이다.
태자 남해(남해)가 왕위를 계승했다.
27) 고본에는 건무 원년이라 하고, 또는 건원 3년 등이라고 하나 모두 잘못이다 여기서 건무는 후한 광무제의 연호로 그 원년은 AD. 25년, 건원은 전한의 무제 연호로 그 3년은 B.C. 138년이 된다.
28) '혁거세'란 아마 향언(향언)일 것이다 혹은 '불구내왕(불거내왕)'이라고도 하니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29) 혹은 거서간(거서간)이라고도 하니 이는 그가 최초로 입을 열 때 스스로 일컫기를 '알지 거서간 한번 일어나다'고 했으므로 그 말에 따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거서간'은 왕자의 존칭이 되었다.
30) 흑은 용이 나타나 죽기에 그 배를 갈라 동녀를 얻었다고 한다.
해설 및 감상
이 신화(신화)는 『삼국사기』권1에 있는 '신라본기 혁거세 거서간 (혁거세거서간)'조에도 전한다. 이때 '거서간'은 왕이라는 뜻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그리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이 신화는 천강 난생(천강난생) 신화이다 이런 유형에는 「김수로왕 신화」가 있다. 천제 (천제)가 직접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빛과 같은 신비스러운 서기(서기)가 땅으로 드리워져 있었다든지, 백마가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든지 하는 것 등으로 혁거세의 본향이 하늘임을 시사하고 있다. 혁거세는 또 「선도산 성모 이야기」에 보면 선도산 성모(성모)가 낳았다고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신화는 고구려나 부여의 신화처럼 시련이나 투쟁의 과정이 없이 아기 때부터 숭앙을 받았다는 점이 그들 신화와는 다르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은 천마(천마)로서 천신족의 권위의 상징이며,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신화와의 관계는 「단군신화」,「동명왕신화」, 「김수로왕신화」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편 우리 현행 교과서에서는 다소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으나 과거 개화기부터 1950년대까지는 초등용 국어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실려있어 그 중요성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 문헌
김병규(1985), 『박혁거세 신화의 상징 연구』(성균관대학원 석사논문)
김현룡(1984), 「혁거세 신화와 수로왕 신화」, 『한국 고소설론』 (새문사)
이재수(1960), 「박혁거세 전설 논고」(『고병간 박사 송수기념 논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