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게보르그 바하만-삼십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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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되었을 때 화물차도 방향을 돌려 옆길로 빠지려 들었다.
그들의 차는 몇 미터를 날라 어느 벽을 들이받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이 떠들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그는 곧 다시 의식을 잃고 이따금 가벼운 충격을 느끼고는 바야흐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예감했다. 그는 병원에 있는 것이 틀림 없고, 이동 침대에 태워져 있었고, 누구인가 주사를 놓고 그의 머리맡에서 무슨 말을 건네고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그의 의식이 맑아졌다. 수술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스크를 한 두 사람의 의사가 테이블 곁에서 서둘러 대고 있었고 여의사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잡고는 문질렀다. 그는 약간 간지러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그에게는 정말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의사들이 그를 잠 속으로 가라앉히고 나면 그는 도저히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생각에 꼼짝 없이 사로잡혔다. 그는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서 혀를 움직여 자신의 음성을 찾았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이 쉽게 술술 나오자 기뻤다. 그는 종이와 연필을 청했다. 간호부가 그것을 가져오고 마취약이 아주 서서히 효력을 내는 동안에, 그는 연필을 잡고 간호부가 받침으로 고여주고 있는 종이에 연필을 갖다 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느다란 글씨를 써 나갔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그리고 나서 그는 당장 두 개의 단어를 십자를 그어 지우고는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이에게……」 그는 손을 멈추고 열심히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종이를 구겨서 간호부에게 돌려주고,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으리라. 그는 무겁게 눈꺼풀을 드리우고는 거기 누운 채 야릇하게 나른해져서, 무의식의 상태에 이르기를 기다렸다.
이 해는 결국 그의 뼈를 박살을 냈다. 그는 두 세 군데 아주 볼 만한 검붉게 내출혈한 상처자국을 안은 채 병원에 누워서, 쾌유의 약속을 싸고 있는 기브스의 갑옷이 벗겨질 날까지 날짜를 헤아리지 않고 지냈다. 그 미지의 사나이는 이제사 들어 알았지만 현장에서 즉사를 했다. 그는 이따금 그 사나이를 생각하며 병원의 천정을 응시했다. 자기 대신에 죽은 사람을 생각하듯이, 그는 그 사나이를 생각했고, 얼굴에 밝은 긴장의 빛을 띠고 젊고 튼튼한 양손을 핸들에 맡기고 있던 사내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는 것이었다. 이 세상의 암흑의 중추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 그 곳에서 불꽃이 되어 산화해 버린 그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던 것이다.
5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방안에는 꽃들이 날마다 신선한 것으로, 한층 화사한 것으로 바뀌어져 갔다. 낮이면 미늘창문이 몇 시간씩 내려져 있어서, 방안에서는 방향이 그대로 간직되었다.
만약 지금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한 젊은 인간의 얼굴이리라. 또한 그는 자신이 젊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으리라. 실상 훨씬 젊었을 한때에 그는 꽤나 늙은 것처럼 느껴졌었고 머리를 떨구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사상과 육체가 너무나 그를 심란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한창 젊었을 때 그는 일찍 죽기를 소원했었고 30세가 되고 싶다고는 조금치도 바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삶을 원하고 있었다. 그 당시엔 그의 머리 속에는 세계를 향해 찍을 수 있는 구두점만이 사방에서 뒤흔들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계가 등장하는 최초의 문장이 수중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엔 그는 무엇이든 궁극에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자기가 현실 속으로는 이제 겨우 최초의 몇 발자국을 들여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그 현실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궁극에까지 생각하게 허용하지를 않고, 여전히 숱한 일들을 보류해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또는 무엇을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도대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어떤가를 그는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다. 지금 그는 무슨 일을 하든가, 표현을 할 때마다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기가 증명할 수 없는 일, 자신의 피부의 털구멍이라든가, 바다의 짠 맛, 과일같은 대기라든가, 단적으로 말해 인반적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도 그는 신뢰를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얼마 전에 그는 머리를 빗으려고 처음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낯이 익긴 하지만 동시에 약간 더 투명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이 불더미를 배경으로 해서 고개를 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엉겨붙은 갈색의 머리털 한가운데 무엇인가 흰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손으로 만져보고 거울을 가까이 비춰보았을 때 그것은 한 가닥의 흰 머리털이었다!
그의 심장은 목언저리까지 고동을 쳤다.
그는 멍청하니 꼼짝 않고 그 머리털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그는 다시금 거울을 비춰보고 더 많은 흰 머리가 보일세라 겁을 내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닥의 흰 머리털이 그냥 있을 뿐, 그것에서 늘어나 있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나는 진정 살아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욱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의 고통, 初老의 밝은 증거인 이 흰머리. 이것이 도대체 왜 나를 이토록 놀라게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이삼일 지나 그것이 빠져버리고 새로운 흰머리가 그렇듯 쉬 나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試食의 맛을 잊지 않으리라. 그래서 구체화되어 가는 나의 과정에 대해 다시는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리라.
나는 진정 살아 있지 않은가!
그는 곧 회복을 할 것이다.
그는 곧 30세가 된다. 서른번째의 생일이 올 것이다. 하지만 종을 울려 그날을 고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아니, 그날은 새삼스레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써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안간힘하며 간신히 버티어 온 이 일 년간의 하루하루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생기에 넘쳐 닥쳐 올 것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을 생각하며 저 밑 병실 문을 어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병약한 사람들, 빈사의 사람들 곁을 떠나서.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 가격3,300
  • 페이지수30페이지
  • 등록일2002.03.18
  • 저작시기2002.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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