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絶島) 적거와 문학의 길- <만언사>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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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절도(絶島) 적거(謫居)를 문제삼는 까닭

2.<만언사(萬言詞)>를 둘러싼 문제들

3.지리적 절도와 삶의 지도

4.절도(絶島) 혹은 객지(客地)

5.이유 달기를 통한 자기 위안

6.웃음으로의 전위(轉位)를 통한 해소

7.<만언사> 그리고 문학 이해의 틀

본문내용

리티보다는 오락적 관심과 흥미 위주의 편향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만언사> 그리고 문학 이해의 틀
지금까지 <만언사>가 지니고 있는 절도 체험의 양상을 살피면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그 절망적인 고립과 고난을 어떻게 해소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이유 달기'와 '전위'의 두 방어기제라는 진단을 했고, 전자의 방어기제는 그의 적거 사유가 이념으로는 정당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기 정당화의 방편으로 절도 주민의 생활 풍습에 대한 비난을 앞세워서 그리된 것으로 본 바 있다.
이제 대상의 비소화를 통한 해학을 통해 전위라는 방어기제로 절도 적거의 고난을 표출하고 해소한 <만언사>의 또 다른 특징을 통해 우리는 문학을 이해하는 한 고삐를 쥘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웃음을 통한 정서적 해소가 이념의 공백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만언사>의 적거 사유가 이념적인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근대로 이행하면서 문학이 보여주는 성향과 동궤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중세의 문학이 이념적 경직으로 표현될 만큼 강렬한 이념 지향을 보였다는 점은 유배가사의 경우에도 충분히 확인이 된다. 이 점은 <정과정(鄭瓜亭)>을 비롯하여 <사미인곡> 계열의 작품들에서 충분히 읽어낼 수 있으며, 절도 적거의 상황에서 노래한 작품인 <별사미인곡>이나 <속사미인곡> 모두에 두루 공통되는 특질이다.
그러나 <만언사>는 이념의 문제에서는 공백에 해당한다. 우선 안조환(安肇煥)의 적거 사유가 그러하다. 그런데 이념의 공백이라는 바로 이 점이 동시대의 상업문화적 특질을 보여주는 가사 작품들에도 공통되는 특질이다. <우부가>나 <용부가> 또는 <백발가>나 <노처녀가> 등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나 삶의 리얼리티에 대한 관심은 방기(放棄)해버리고 그 대신 열등한 조건이나 특질을 지닌 대상에 대해 우월한 자로서의 웃음을 보내는 것으로 흥미를 삼는 오락지향성을 지녔다는 점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삶과 문학 그리고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이념이 차지했던 자리를 오락이 대신한 것으로 해석된다.
<만언사>가 노래한 것은 절도에서의 절망적 삶이었다는 점을 다시 환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절망적 삶은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절도 주민의 삶이 아니라 적객(謫客)의 그것이다. 바라보고 체험한 절도의 상황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그것도 적객의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 문학작품은 그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세상을 보되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이고 그래서 그려낸 세상은 결국 자기 눈이 그렇게 된 것을 그려낼 따름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것을 일러 문학의 자아화 원리라 일러 두자.
자기 눈으로 본 것 그리고 자기가 생각한 것에 따라 세상이 재단되며 그래서 문학이 개별적일 수 있는가 하면, 그 세계관의 문제가 문학 작품의 이해에 필연적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에 속한다. 자아화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고서 어떻게 문학이 가능할 수 있는가? 이 원리는 그 장르에 관계 없이 혹은 그 창작 의도에 관계 없이 두루 기반이 되는 원리라는 점을 가사 작품인 <만언사>에서 확인한 것이다. 가사 작품이 세계를 자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유념하자.
그 다음으로는, 그 절도 적거 체험이 빚어내는 절망적 심리의 갈등은 일차적으로 절도의 환경과 주민의 삶에서 느끼는 이질성에 이유를 달아 비난함으로써 해소하고, 그 표현에서는 절망을 웃음으로 치환하는 전위를 통해 갈등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만언사>의 정서적 과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필자는 문학에 나타난 인간의 행동을 경건 지향과 흥미 지향으로 유형화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검토한 바 있는데, <만언사>가 보여주는 것은 후자의 경향으로 일단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만언사>의 이러한 특질이 근원적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뿌리박은 이념과는 거리가 먼 적거 사유에서 유래했다는 점이 파악된 이상, 이제 우리는 문학과 이념의 관계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금수와는 같을 수 없다는 본질에 기반한 이념의 문학은 그 작품 행위 스스로가 정서적 해소의 과정이면서 소산일 수 있으며 그 방법은 자신의 내부에서 찾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생물적 개념으로 파악되는 이념에 기반한 문학일 경우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시선은 밖으로 향하게 마련이며 그 결과로 오락적인 흥겨움을 통한 해결을 지향하게 된다는 점이다.
문학사가 보여주는 변화의 궤적은 그 이념이 전자에서 후자로 전이되어 왔던 것으로 해석된다. <만언사> 역시 후자의 한 예가 된다. 이제 이런 문학 작품을 앞에 두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저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데 대한 대답의 방식과 관련된다.
이제 마지막으로 절도의 조건과 그 삶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만언사>가 보여 주는 추자도는 절도의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그것을 일러 절도의 진정한 삶의 모습이거나 역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문학은 카메라로 사진 찍기와 같은 결과물이 아니다. 문학이 철저하게 자아화의 원리에 기반하여 이루어짐이 분명한 이상 우리는 절도에 투사되는 그 사람을 볼 수는 있을지언정 절도 그 자체를 보는 일은 그리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 표현과 사실과의 관계에 대한 반추가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가를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절도의 실상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 분명히 떠오르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만언사> 이전에도 제주도는 절도였고 <만언사> 이후에도 여전히 제주도는 절도다. 그러나 거기서의 삶이 갖는 의미와 질은 <만언사>가 규정한 바와 같을 수 없음을 확인한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문학은 결국 어떤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대상의 의미가 객관적으로 자재하지는 않는다는 것, 문학적 대상을 바라보는 눈은 그 이념의 성격이 결정한다는 것, 그러나 문학은 어차피 심리적 불안정을 정돈해 가는 정서적 과정이라는 것 --- 이것이 이 글의 소득이라면, 이제 제주도의 삶을 싸잡아 일의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또한 무망하다는 점도 함께 밝혀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키워드

절도,   문학,   만언사,   적거,   객지,   전위
  • 가격3,300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02.03.18
  • 저작시기2002.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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