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영화는 독일역사에 대한 일종의 학습이다. 영화는 오스카라는 비정상적인 아이의 시각이라는 우회도로를 통해 이 학습에 이르게 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인류에 대한 최대의 죄악을 범한 이 역사에 대한 접근을 아주 기이하고 변태적인 것으로 만든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과거 독일을 죽이고 아버지가 남긴 정부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르는 동생, 즉 아버지의 짐을 지고 어딘지 모를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오스카는 어쩌면 독일 전후세대의 자화상이자 새로운 독일영화의 자기선언일지도 모른다.
난쟁이는 또래집단에서 비정상이라는 스티그마를 부여받아 소위 왕따가 된 자이다.
왕따가 된 난쟁이는 소리를 지르며 요란스럽게 북을 두드린다. 그러면 반투명으로 채색된 유리는 산산조각이 되어 그 안에서 잠자던 투명한 실상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채색된 난쟁이의 눈은 너무나 조숙하게 사회상황을 꿰 뚫고 있다. 숙성한 성인이 아닌 난쟁이 아이의 눈은 투명한 유리의 상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현실인식이다.
알프레드의 장례식은 전쟁이 끝난 시기에 이루어진다. 부조리 인간들을 단죄하자 오스카는 다시 성장하게 된다. 마치 전쟁이 끝나고 인류가 다시 역사의 진보를 시작하듯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과거 독일을 죽이고 아버지가 남긴 정부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르는 동생, 즉 아버지의 짐을 지고 어딘지 모를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오스카는 어쩌면 독일 전후세대의 자화상이자 새로운 독일영화의 자기선언일지도 모른다.
난쟁이는 또래집단에서 비정상이라는 스티그마를 부여받아 소위 왕따가 된 자이다.
왕따가 된 난쟁이는 소리를 지르며 요란스럽게 북을 두드린다. 그러면 반투명으로 채색된 유리는 산산조각이 되어 그 안에서 잠자던 투명한 실상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채색된 난쟁이의 눈은 너무나 조숙하게 사회상황을 꿰 뚫고 있다. 숙성한 성인이 아닌 난쟁이 아이의 눈은 투명한 유리의 상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현실인식이다.
알프레드의 장례식은 전쟁이 끝난 시기에 이루어진다. 부조리 인간들을 단죄하자 오스카는 다시 성장하게 된다. 마치 전쟁이 끝나고 인류가 다시 역사의 진보를 시작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