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소개글
2. 저자소개
3. 미디어 리뷰
4. 독자서평
2. 저자소개
3. 미디어 리뷰
4. 독자서평
본문내용
다.
간단히 그의 논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널리즘의 장(場)은 자신의 고유한 법칙을 가지면서 구조화된 곳이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장은 문학의 장, 법의 장, 학문의 장 등등과의 관계에서는 위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즉 텔레비전은 정보에 대한 신속한 접근('속보')뿐만 아니라 대중 전달력에 있어서도 신문이나 잡지를 능가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텔레비전이 민주주의를 위한 기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요구하는 일회적이고 '신속한-사고(fast-thinking)'에 반해, 부르디외는 사회학자의 문제는 낯선 것을 낯설게 하는 것임을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들고, 평범한 것이 어떤 점에서 특이한 것인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문제'임을 주장한다.
부르디외의 이런 주장은 그렇게 새롭거나 참신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저널리즘 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배제와 불평등의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면서―1부 '스튜디오와 그 내막'[방송이 가하는 제약들, 특히 발언시간의 분배 문제]이 대표적이다―텔레비전의 영향력에 맞서야 할 장들의 자율성 유지 투쟁이라는 문제도 제기한다.
아마도 부르디외의 글의 힘은 미디어에 대한 냉소적 거부나 아니면 미디어와의 협력으로 전락하는 두 길 사이에서 미디어를 통한 지식인의 사회적 참여 문제를 제시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체 없이' 대중에게 곧바로 전달되는 시청각 이미지 앞에 놓인 시청자 대중과 지식인을 매개할 매체가 무엇인가라는 중요한 문제는 빠져있다―부르디외는 조금은 평범하게 조금은 안이하게 '보편성에의 접근 조건을 보편화하기 위해 노력'을 지적하는 것으로 자신의 논의를 끝마칠 뿐이다.
다양한 매체의 증식 속에서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 자체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단순한 기술적 매체만이 아닌) 상징적 매개체가 무엇일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필수적이리라.
읽을 대상으로서의 텔레비전
문형준(cau_jun@yahoo.com, 중앙대학교 영문과) 2000년 1월 5일 서평자 글 모두 보기
부르디외의 <텔레비전에 대하여>는 제목 그대로 '텔레비전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텔레비전의 기능이나 형태, 혹은 텔레비전이 우리 생활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텔레비전을 중심으로한 저널리즘의 내막(문제점)과 구조, 그리고 다른 문화분야들과의 관계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다.
이 책은, 형식적으로는 '제2의 사르트르'라고도 불리는 부르디외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텔레비전을 비판한 화상강의 대본(과 부록논문)이다.
부르디외는 먼저 「스튜디오와 그 내막」이라는 글을 통해 텔레비전의 여러 문제점들(예를 들면, 제작체제에서부터 주체의 자율성이 상실되는 '보이지 않는 검열의 매체', 선정적인 사건사고 뉴스를 통한 관심의 재배치, 객관적 기준 아닌 기자의 특수한 '안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선별의 원칙, 매체들 사이의 정보가 동질화되는 '거울게임' 등)을 지적한다.
그리고 다음 글「보이지 않는 구조와 그 효과」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기자나 제작자/편집자의 개별적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고 밝힌다. 여기서 나오는 부르디외의 독창적 개념이 '저널리즘의 장(場, champ)'이다.
저자에 따르면, '저널리즘의 세계는 하나의 소우주로서 그 자신의 법칙을 갖고, 전체 세계 안에서의 위치와 다른 소우주와의 친화·배척관계에 의하여 정의'(67쪽)되는데, 이러한 하나의 세계를 '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문의 장·예술의 장·문학의 장·법학의 장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저널리즘 장은 나머지 분야들과 얽혀있으며, 대개는 그것들을 규정해버릴 정도의 엄청난 영향력을 현대사회에서 획득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저널리즘은 '시청률의 매개에 의하여 경제적 장에 구속되어 있'고(93쪽), 상업적 논리에 휘둘린 텔레비전과 신문은 다른 '진지한' 매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며, 다른 문화분야에도 '구속을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저널리즘 장은 자율성을 잃어버린 채 상업주의에 끌려다니는 타율적 세계가 돼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예로 들지만,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일례(一例)로, 대학을 찾아가 벌이는 쇼프로그램들을 보자. 이미 그 프로그램 속에는 '○○대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구나무 오래 서있기 대회와 연예인 흉내내는 장기자랑을 통해서 '대학'의 속모습이 아닌 '20대'의 겉모습만 드러나는 것이다.
어떤 매체보다 실감있고 설득력있게 대학 내부의 현실을 전할 수 있는 텔레비전은 시청률만 좇아가고, 이런 저널리즘에 영향받아 대학생들의 문화(학문의 장.예술의 장)는 10대 문화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우리는 점차 텔레비전에 의해 설명되고 지시받는 세계로 향하고 있'(35쪽)다는 부르디외의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정확한 지적이다.
결국 해결책은 저널리즘 장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이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수정과정을 갖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종의 상아탑을 만들어야'하며 '그 안에서 서로 판단하고 비판하며 원인을 알고 심지어 싸우'(105쪽)자고 말한다. 앞서 제시한 심각한 문제점에 비하면 해결책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르디외의 말을 곱씹어보면 여러가지 현실적인 방법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지속적 모니터활동은 언론의 과도한 상업주의에 대한 감시자의 역할을 할 것이고, 언론사 내부의 합리적 토론을 통한 자정활동은 '자율성 확보'의 도구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계, 정부,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간의 끊임없는 교류와 토론, 실천적 방안 마련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은 나로서는, 더욱 비판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며 궁시렁거리는 것에서 벗어나 텔레비전을 '읽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어쩌면 텔레비전에 대한 내 이중적인, 그래서 수동적인 태도를 적극적인 것으로 바꾸는 첩경이 아닐까 한다.
간단히 그의 논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널리즘의 장(場)은 자신의 고유한 법칙을 가지면서 구조화된 곳이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장은 문학의 장, 법의 장, 학문의 장 등등과의 관계에서는 위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즉 텔레비전은 정보에 대한 신속한 접근('속보')뿐만 아니라 대중 전달력에 있어서도 신문이나 잡지를 능가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텔레비전이 민주주의를 위한 기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요구하는 일회적이고 '신속한-사고(fast-thinking)'에 반해, 부르디외는 사회학자의 문제는 낯선 것을 낯설게 하는 것임을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들고, 평범한 것이 어떤 점에서 특이한 것인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문제'임을 주장한다.
부르디외의 이런 주장은 그렇게 새롭거나 참신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저널리즘 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배제와 불평등의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면서―1부 '스튜디오와 그 내막'[방송이 가하는 제약들, 특히 발언시간의 분배 문제]이 대표적이다―텔레비전의 영향력에 맞서야 할 장들의 자율성 유지 투쟁이라는 문제도 제기한다.
아마도 부르디외의 글의 힘은 미디어에 대한 냉소적 거부나 아니면 미디어와의 협력으로 전락하는 두 길 사이에서 미디어를 통한 지식인의 사회적 참여 문제를 제시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체 없이' 대중에게 곧바로 전달되는 시청각 이미지 앞에 놓인 시청자 대중과 지식인을 매개할 매체가 무엇인가라는 중요한 문제는 빠져있다―부르디외는 조금은 평범하게 조금은 안이하게 '보편성에의 접근 조건을 보편화하기 위해 노력'을 지적하는 것으로 자신의 논의를 끝마칠 뿐이다.
다양한 매체의 증식 속에서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 자체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단순한 기술적 매체만이 아닌) 상징적 매개체가 무엇일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필수적이리라.
읽을 대상으로서의 텔레비전
문형준(cau_jun@yahoo.com, 중앙대학교 영문과) 2000년 1월 5일 서평자 글 모두 보기
부르디외의 <텔레비전에 대하여>는 제목 그대로 '텔레비전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텔레비전의 기능이나 형태, 혹은 텔레비전이 우리 생활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텔레비전을 중심으로한 저널리즘의 내막(문제점)과 구조, 그리고 다른 문화분야들과의 관계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다.
이 책은, 형식적으로는 '제2의 사르트르'라고도 불리는 부르디외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텔레비전을 비판한 화상강의 대본(과 부록논문)이다.
부르디외는 먼저 「스튜디오와 그 내막」이라는 글을 통해 텔레비전의 여러 문제점들(예를 들면, 제작체제에서부터 주체의 자율성이 상실되는 '보이지 않는 검열의 매체', 선정적인 사건사고 뉴스를 통한 관심의 재배치, 객관적 기준 아닌 기자의 특수한 '안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선별의 원칙, 매체들 사이의 정보가 동질화되는 '거울게임' 등)을 지적한다.
그리고 다음 글「보이지 않는 구조와 그 효과」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기자나 제작자/편집자의 개별적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고 밝힌다. 여기서 나오는 부르디외의 독창적 개념이 '저널리즘의 장(場, champ)'이다.
저자에 따르면, '저널리즘의 세계는 하나의 소우주로서 그 자신의 법칙을 갖고, 전체 세계 안에서의 위치와 다른 소우주와의 친화·배척관계에 의하여 정의'(67쪽)되는데, 이러한 하나의 세계를 '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문의 장·예술의 장·문학의 장·법학의 장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저널리즘 장은 나머지 분야들과 얽혀있으며, 대개는 그것들을 규정해버릴 정도의 엄청난 영향력을 현대사회에서 획득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저널리즘은 '시청률의 매개에 의하여 경제적 장에 구속되어 있'고(93쪽), 상업적 논리에 휘둘린 텔레비전과 신문은 다른 '진지한' 매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며, 다른 문화분야에도 '구속을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저널리즘 장은 자율성을 잃어버린 채 상업주의에 끌려다니는 타율적 세계가 돼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예로 들지만,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일례(一例)로, 대학을 찾아가 벌이는 쇼프로그램들을 보자. 이미 그 프로그램 속에는 '○○대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구나무 오래 서있기 대회와 연예인 흉내내는 장기자랑을 통해서 '대학'의 속모습이 아닌 '20대'의 겉모습만 드러나는 것이다.
어떤 매체보다 실감있고 설득력있게 대학 내부의 현실을 전할 수 있는 텔레비전은 시청률만 좇아가고, 이런 저널리즘에 영향받아 대학생들의 문화(학문의 장.예술의 장)는 10대 문화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우리는 점차 텔레비전에 의해 설명되고 지시받는 세계로 향하고 있'(35쪽)다는 부르디외의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정확한 지적이다.
결국 해결책은 저널리즘 장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이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수정과정을 갖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종의 상아탑을 만들어야'하며 '그 안에서 서로 판단하고 비판하며 원인을 알고 심지어 싸우'(105쪽)자고 말한다. 앞서 제시한 심각한 문제점에 비하면 해결책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르디외의 말을 곱씹어보면 여러가지 현실적인 방법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지속적 모니터활동은 언론의 과도한 상업주의에 대한 감시자의 역할을 할 것이고, 언론사 내부의 합리적 토론을 통한 자정활동은 '자율성 확보'의 도구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계, 정부,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간의 끊임없는 교류와 토론, 실천적 방안 마련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은 나로서는, 더욱 비판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며 궁시렁거리는 것에서 벗어나 텔레비전을 '읽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어쩌면 텔레비전에 대한 내 이중적인, 그래서 수동적인 태도를 적극적인 것으로 바꾸는 첩경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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