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퇴계철학의 근본문제
- 한명수 박사
Ⅱ. 이퇴계의 이기호발설 연구
- 송긍섭 교수
- 한명수 박사
Ⅱ. 이퇴계의 이기호발설 연구
- 송긍섭 교수
본문내용
'변증법적' 논리라 말할 수 밖에는 없으며 그것들을 달리 나타낼 용어가 없음은 한박사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강호제위의 엄격한 비판이 있기를 바란다"는 한박사에게 평자로서 가장 엄격한 비판의 말을 던진다면, 한 세대 앞선 일인학자의 학문적 동향 이상으로 동시대에 같은 학문에 종사하는 동포의 학문적 동향을 겸허한 태도로 조밀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라는 조언이다. 그렇게 한다면 同논문의 주제와 아무 관계가 없는 엉뚱한 '헤겔 변증법 공격'에 짧은 논문의 아까운 지면을 8쪽이나 할당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562-
Ⅱ. 李退溪의 理氣互發說 硏究 ― 송긍섭 교수
퇴계의 理氣論, 특히 四七論의 진수에 파고든 논문이라 하겠다. 송교수의 부단한 硏鑽에 머리가 숙여짐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46쪽에서 57쪽에 걸쳐서 전개된 "發"자의 천착에 의한 '理之發' '氣之發'의 본뜻의 해명은 이 논문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발"자가 지닌 함축은 정녕 顯現임에 틀림 없을 것 같다. 평자 역시 일찍이 주자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서 "발"의 서양철학적 조명을 통하여 그것이 '개명하면서 은폐함' 즉 '나타나면서 숨김'-풀어 말하면 '제한(한정)하면서 현현함'임을 이해한 바 있었으니, 대체로 동감이다(졸저 「存在와 理氣-하이데거와 율곡의 비교연구 1967년 11월 선명문화사刊」 참조). 한편, 기초적인 개념풀이가 너무 많은 것이 어떻게 보면 하자인 듯 하지만 초학자를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리라 추측되어서 좋게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를테면 44쪽에 있는 것 같은 "二而一"이며 一而二라는 말의 풀이는 독자를 너무 얕보는 인상을 주었다. 그것이 '二인' 理와 氣의 '대대관계'를 나타낸 말임은 程朱學에 속하는 이기론의 상식이다. "二而一이며 一而二"를 '내용이 없는 絶對無'와 '有'의 변증법적 통일이라 해석하는 학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이 '내용이 있는' 전연 이질적인 二者의 '상호매개 관계'임을 부인하는 학자는 전연 없으리라 본다.
그리고 송교수는 단순히 '理顯'이 善이고 '理隱'이 惡이라는 '이분법'을 쓰고 있으나, 그렇게만 한정하면, '理發而氣隨之의 善(보편적 선)'과 '氣發而理乘之에서 善인 경우(개인적 선)'의 구별이 불투명하게 될 것이다.
52쪽에서 55쪽에 걸쳐서 송교수는 "理에 動靜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약간의 미묘한 문제가 남는다.-즉, 顯現하는 理에 '자기제약(한정)작용'이 전연 없다면 '理一分殊'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理一이 그대로 곧 理分殊겠는가? 그렇다면, 개별적인 하나의 理에 理전체가 그때마다 남김 없이 드러나 있다는 논의가 된다. 다시 말하면 뭇 사물 하나하나에 있는 理(各具一太極)가 理전체(統體一太極=無極而太極)라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고, 이의 동은 바로 '理顯'이기에, 그것은 '밝히면서 숨기는 것' 즉 '開明하면서 은폐하는 것'-풀어 말하면 '그 자신을 제약(한정)하는 작용'일 것이다. 理의 動靜의 진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563-
72쪽에서 73쪽에 걸쳐서 송교수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으나, 그것의 분석이 불철저하다는 느낌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그리고, '기질지성이 發한 것이 七情'이라 함은 옳은 말이지만, '본연지성이 발한 것이 四端'이라 함에는 약간의 이의가 없을 수 없다. 즉, '未發'인 때는 '마음' 가운데서 기질지성에 對待하여 본연지성이 '그대로'자각될 수 있지만, '已發'인 때는, 역시 '理氣共在'여서 '본연지성'만이 '나타날' 수는 없고 그것에도 기질이 묻어 있으나, 그러나 이 경우에는 '理가 압도적으로 강해서' 氣가 전연 用事하지 못하므로 純善일 수밖에 없는 것이 四端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73쪽에서 76쪽에 걸쳐서 송교수는 "선천적 선"과 "수양적 선"을 가르고 있다. 평자는 '四端의 善'은 기질 속에 있는 본연지성이 발함에서 '氣가 전연 用事하지 못하므로' '보편적 선'이고 '七情의 善'은 기질지성이 발함에서 '기가 用事하지만' 理가 氣보다 강하기에 善이므로 '개인적 선'이라고 본다(1973년 3월 高大 亞硏刊 「아세아연구」 49호 게재 拙稿 「퇴계의 관점에서 본 고봉의 인성론」 및 1975년 4월 일지사刊 졸저 「퇴계사상연구」 所載 「퇴계의 인성론」 참조). 송교수가 이런 뜻으로 "선천적 선"과 "수양적 선"을 구별했다면 전면적으로 동감이다. 그러나 73쪽에서 76쪽에 걸쳐 있는 송교수의 논의에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관계의 천착이 '불철저'하기 때문에, '사단의 선'과 칠정 가운데서 선인 경우라는 두 선의 성격차가 '뚜렷이' 드러나지 못했다는 감이 없지 않다.
76쪽에 있는 결론에서, 송교수가 發=顯現=나타남이라고 지적한 것은 뜻을 엄밀히 표현했다는 점에서 탁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理靜氣動'이기에 '理는 無情意·無計度·無造作·無形迹'이라는 주자의 '우주론에만 한정된' 원리를 따르기만 하는 것은 퇴계의 '理發'의 본뜻을 이해함에서 경계되어야 할 태도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理靜氣動을 함부로 강조해서 顯現하는 理의 '자기제약(한정)작용'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자연 '理一分殊'개념이 성립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564-
그리고, 마지막 표에서, 송교수가 "理發而氣隨之=理强氣弱"이라고 본 것은 옳지만 "氣發而理乘之=氣强理弱"이라 본 것은 단순히 '氣가 用事해서 理를 이기기에 惡이 되는 경우'만을 지적했을 뿐이므로 반쪽만 말한 것이라 생각된다. "기발이리승지"에서도 '기가 용사하지만 역시 이가 기보다 강해서 이가 기를 이기기에 선이되는 경우'가 실상은 더 많으므로, "기발이리승지=理强氣弱 및 氣强理弱"이라 하고, 나아가서 '사단의 理强氣弱'과 '칠정의 理强氣弱'의 차이를 '氣의 不用事'와 '氣의 用事'를 제시함으로써 구획지워야, 비로소 '보편적 선'(="선천적 선")과 '개인적 선'(="수양적 선")의 차이가 뚜렷해져서 '畵龍點睛의 實'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 實을 거두지 못한 근본원인은 송교수가 아직도 "氣 즉 惡"(43쪽)이라는 선입견을 불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귀인하고 있다는 것을 선의로 한 마디 조언해 두는 바다.
"강호제위의 엄격한 비판이 있기를 바란다"는 한박사에게 평자로서 가장 엄격한 비판의 말을 던진다면, 한 세대 앞선 일인학자의 학문적 동향 이상으로 동시대에 같은 학문에 종사하는 동포의 학문적 동향을 겸허한 태도로 조밀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라는 조언이다. 그렇게 한다면 同논문의 주제와 아무 관계가 없는 엉뚱한 '헤겔 변증법 공격'에 짧은 논문의 아까운 지면을 8쪽이나 할당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562-
Ⅱ. 李退溪의 理氣互發說 硏究 ― 송긍섭 교수
퇴계의 理氣論, 특히 四七論의 진수에 파고든 논문이라 하겠다. 송교수의 부단한 硏鑽에 머리가 숙여짐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46쪽에서 57쪽에 걸쳐서 전개된 "發"자의 천착에 의한 '理之發' '氣之發'의 본뜻의 해명은 이 논문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발"자가 지닌 함축은 정녕 顯現임에 틀림 없을 것 같다. 평자 역시 일찍이 주자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서 "발"의 서양철학적 조명을 통하여 그것이 '개명하면서 은폐함' 즉 '나타나면서 숨김'-풀어 말하면 '제한(한정)하면서 현현함'임을 이해한 바 있었으니, 대체로 동감이다(졸저 「存在와 理氣-하이데거와 율곡의 비교연구 1967년 11월 선명문화사刊」 참조). 한편, 기초적인 개념풀이가 너무 많은 것이 어떻게 보면 하자인 듯 하지만 초학자를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리라 추측되어서 좋게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를테면 44쪽에 있는 것 같은 "二而一"이며 一而二라는 말의 풀이는 독자를 너무 얕보는 인상을 주었다. 그것이 '二인' 理와 氣의 '대대관계'를 나타낸 말임은 程朱學에 속하는 이기론의 상식이다. "二而一이며 一而二"를 '내용이 없는 絶對無'와 '有'의 변증법적 통일이라 해석하는 학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이 '내용이 있는' 전연 이질적인 二者의 '상호매개 관계'임을 부인하는 학자는 전연 없으리라 본다.
그리고 송교수는 단순히 '理顯'이 善이고 '理隱'이 惡이라는 '이분법'을 쓰고 있으나, 그렇게만 한정하면, '理發而氣隨之의 善(보편적 선)'과 '氣發而理乘之에서 善인 경우(개인적 선)'의 구별이 불투명하게 될 것이다.
52쪽에서 55쪽에 걸쳐서 송교수는 "理에 動靜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약간의 미묘한 문제가 남는다.-즉, 顯現하는 理에 '자기제약(한정)작용'이 전연 없다면 '理一分殊'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理一이 그대로 곧 理分殊겠는가? 그렇다면, 개별적인 하나의 理에 理전체가 그때마다 남김 없이 드러나 있다는 논의가 된다. 다시 말하면 뭇 사물 하나하나에 있는 理(各具一太極)가 理전체(統體一太極=無極而太極)라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고, 이의 동은 바로 '理顯'이기에, 그것은 '밝히면서 숨기는 것' 즉 '開明하면서 은폐하는 것'-풀어 말하면 '그 자신을 제약(한정)하는 작용'일 것이다. 理의 動靜의 진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563-
72쪽에서 73쪽에 걸쳐서 송교수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으나, 그것의 분석이 불철저하다는 느낌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그리고, '기질지성이 發한 것이 七情'이라 함은 옳은 말이지만, '본연지성이 발한 것이 四端'이라 함에는 약간의 이의가 없을 수 없다. 즉, '未發'인 때는 '마음' 가운데서 기질지성에 對待하여 본연지성이 '그대로'자각될 수 있지만, '已發'인 때는, 역시 '理氣共在'여서 '본연지성'만이 '나타날' 수는 없고 그것에도 기질이 묻어 있으나, 그러나 이 경우에는 '理가 압도적으로 강해서' 氣가 전연 用事하지 못하므로 純善일 수밖에 없는 것이 四端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73쪽에서 76쪽에 걸쳐서 송교수는 "선천적 선"과 "수양적 선"을 가르고 있다. 평자는 '四端의 善'은 기질 속에 있는 본연지성이 발함에서 '氣가 전연 用事하지 못하므로' '보편적 선'이고 '七情의 善'은 기질지성이 발함에서 '기가 用事하지만' 理가 氣보다 강하기에 善이므로 '개인적 선'이라고 본다(1973년 3월 高大 亞硏刊 「아세아연구」 49호 게재 拙稿 「퇴계의 관점에서 본 고봉의 인성론」 및 1975년 4월 일지사刊 졸저 「퇴계사상연구」 所載 「퇴계의 인성론」 참조). 송교수가 이런 뜻으로 "선천적 선"과 "수양적 선"을 구별했다면 전면적으로 동감이다. 그러나 73쪽에서 76쪽에 걸쳐 있는 송교수의 논의에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관계의 천착이 '불철저'하기 때문에, '사단의 선'과 칠정 가운데서 선인 경우라는 두 선의 성격차가 '뚜렷이' 드러나지 못했다는 감이 없지 않다.
76쪽에 있는 결론에서, 송교수가 發=顯現=나타남이라고 지적한 것은 뜻을 엄밀히 표현했다는 점에서 탁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理靜氣動'이기에 '理는 無情意·無計度·無造作·無形迹'이라는 주자의 '우주론에만 한정된' 원리를 따르기만 하는 것은 퇴계의 '理發'의 본뜻을 이해함에서 경계되어야 할 태도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理靜氣動을 함부로 강조해서 顯現하는 理의 '자기제약(한정)작용'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자연 '理一分殊'개념이 성립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564-
그리고, 마지막 표에서, 송교수가 "理發而氣隨之=理强氣弱"이라고 본 것은 옳지만 "氣發而理乘之=氣强理弱"이라 본 것은 단순히 '氣가 用事해서 理를 이기기에 惡이 되는 경우'만을 지적했을 뿐이므로 반쪽만 말한 것이라 생각된다. "기발이리승지"에서도 '기가 용사하지만 역시 이가 기보다 강해서 이가 기를 이기기에 선이되는 경우'가 실상은 더 많으므로, "기발이리승지=理强氣弱 및 氣强理弱"이라 하고, 나아가서 '사단의 理强氣弱'과 '칠정의 理强氣弱'의 차이를 '氣의 不用事'와 '氣의 用事'를 제시함으로써 구획지워야, 비로소 '보편적 선'(="선천적 선")과 '개인적 선'(="수양적 선")의 차이가 뚜렷해져서 '畵龍點睛의 實'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 實을 거두지 못한 근본원인은 송교수가 아직도 "氣 즉 惡"(43쪽)이라는 선입견을 불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귀인하고 있다는 것을 선의로 한 마디 조언해 두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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