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미군정하의 여론조작
2) 이승만 정권하의 여론조작
3)박정희 군부정권의 여론조작
4) 유신체제 하의 여론 조작
5)전두환 체제하의 여론조작
2) 이승만 정권하의 여론조작
3)박정희 군부정권의 여론조작
4) 유신체제 하의 여론 조작
5)전두환 체제하의 여론조작
본문내용
명의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축출하는 작업에 동조해 놓고는 엉뚱하게도 8월 21일 국방부장관 주재로 열린 전군지휘관회의에서 전두환을 차기 대통령으로 추대 할 것을 결의한 사실에 대해 같은 신문은 사설로 다음과 같이 정당화시켰다. 즉 "이와 같은 보도에 접하고 일반 국민은 크게 안도와 고무를 간직했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8.21 군 결의>는 이러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한층 더 공고히 뒷받침하고 보장하는 일찍이 없었던 국가간성들의 담보의 표징이다. 건국이래 모든 군이 한 지도자를 전군적 총의로 일사불란하게 지지하고 추대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러한 점에서 <8.21군 결의>는 또한 역사적으로 깊은 함축을 간직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찬미도 이쯤이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같은 날짜 3면에 실린 <인간 전두환>이라는 전면 기사를 보면 악마를 천사로 미화시키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은 수도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듯하다. ...그는 모든 사람의 판단기준을 이처럼 정의와 대국에 놓을 뿐 세세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살ㅀ곡필과 아부도 이쯤 되면 단군이래 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여론의 조작도 이쯤이면 가히 일품으로 꼽을 만했다.
위의 내용들은 한국에서 유수한 신문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한 신문의 사설과 기사였지만, 이 신문만이 아니라 당시의 모든 한국언론이 이와 비슷한 논조의 사설이나 왜곡된 기사를 게재하거나 지껄이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언론이 이러한 작태였기에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임명한 입법회의는 국민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유신체제의 재한아니면 그 아류를 두려움 없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전두환 체제의 한낱 특징이자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면 단임제였는데, 당시 언론은 단임제가 곧 민주주의인 것으로 주장했고 , 단임제만 실현되면 임기 안에서는 어떤 자의적인 지배가 이루어져도 괜찮다는 노조였다. 따지고 보면 전두환 체제하에서 빚어진 그 엄청난 비리들은 당시 언론의 공범의식 속에서 저질러진 것들이었다. 흔히 얘기하기를 , 유신체제 하의 한국언론은 권력의 압력 때문에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부작위의 죄>를 지었다면, 전두환 체제하의 한국언론은 권력의 편에 서서 권력의 잘못을 적극으로 부추긴 <작위의 죄>를 지었다고 하는데, 전두환 체제하의 한국언론의 작태를 눈여겨보면 그러한 얘기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의 언론은 권력을 감시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을 부추겨서 동료 기자들을 내쫓게 만들었고, 언론 통폐합 작업에도 동참했으며, 혹독했던 전두환 독재체제를 새 시대의 새 정부로 미화시키는 데도 가담했던 것이다.
바로 비리투성이의 전두환 체제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한국언론이 그 시녀로 자임해서 봉사했기 때문이었다.
1987년 <6월의 민중항쟁>을 통해 항복선언을 받아냈고 민주적인 헌법개정을 이룩했으며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했음에도,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의 차별성을 가려내기 어려운 것은 형식적인 정치체제만 바뀌었지 실질적인 체질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태우 정권의 체질이 구태의연하면서도 버티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언론계의 그늘 속에서 안주해 왔던 언론은 스스로도 기득권을 획득했고,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기득권을 잃을 세라 조심하고 있으며, 때로는 민주화의 흐름에 걸림돌로 작용하기조차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같은 날짜 3면에 실린 <인간 전두환>이라는 전면 기사를 보면 악마를 천사로 미화시키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은 수도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듯하다. ...그는 모든 사람의 판단기준을 이처럼 정의와 대국에 놓을 뿐 세세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살ㅀ곡필과 아부도 이쯤 되면 단군이래 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여론의 조작도 이쯤이면 가히 일품으로 꼽을 만했다.
위의 내용들은 한국에서 유수한 신문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한 신문의 사설과 기사였지만, 이 신문만이 아니라 당시의 모든 한국언론이 이와 비슷한 논조의 사설이나 왜곡된 기사를 게재하거나 지껄이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언론이 이러한 작태였기에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임명한 입법회의는 국민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유신체제의 재한아니면 그 아류를 두려움 없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전두환 체제의 한낱 특징이자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면 단임제였는데, 당시 언론은 단임제가 곧 민주주의인 것으로 주장했고 , 단임제만 실현되면 임기 안에서는 어떤 자의적인 지배가 이루어져도 괜찮다는 노조였다. 따지고 보면 전두환 체제하에서 빚어진 그 엄청난 비리들은 당시 언론의 공범의식 속에서 저질러진 것들이었다. 흔히 얘기하기를 , 유신체제 하의 한국언론은 권력의 압력 때문에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부작위의 죄>를 지었다면, 전두환 체제하의 한국언론은 권력의 편에 서서 권력의 잘못을 적극으로 부추긴 <작위의 죄>를 지었다고 하는데, 전두환 체제하의 한국언론의 작태를 눈여겨보면 그러한 얘기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의 언론은 권력을 감시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을 부추겨서 동료 기자들을 내쫓게 만들었고, 언론 통폐합 작업에도 동참했으며, 혹독했던 전두환 독재체제를 새 시대의 새 정부로 미화시키는 데도 가담했던 것이다.
바로 비리투성이의 전두환 체제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한국언론이 그 시녀로 자임해서 봉사했기 때문이었다.
1987년 <6월의 민중항쟁>을 통해 항복선언을 받아냈고 민주적인 헌법개정을 이룩했으며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했음에도,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의 차별성을 가려내기 어려운 것은 형식적인 정치체제만 바뀌었지 실질적인 체질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태우 정권의 체질이 구태의연하면서도 버티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언론계의 그늘 속에서 안주해 왔던 언론은 스스로도 기득권을 획득했고,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기득권을 잃을 세라 조심하고 있으며, 때로는 민주화의 흐름에 걸림돌로 작용하기조차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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