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제 목 : 그리스도교의 성윤리 이해
□ 총 페이지수 : 11
□ 목 차:
서언
I. 성윤리의 신하적 특성
II. 성윤리의 구원역사적 출발점
III. 윤리규범을 위한 결론
성의 영역으로부터 제기되는 논리문제를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 전개과정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성에 대한 전통적인 규범을 문제 삼고 있다. 성에 대한 전통적인 규범이 의문시되고 있는 현상을 단지 현대의 경험인식 또는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는 성의 현상에 대한 윤리적이고 세계관적인 새로운 가치평가라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구조의 세속화 또는 다원화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과정이 성이라는 인간의 기본현상을 변화된 시각에서 새롭게 평가하도록 작용했으리라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비단 성에 대해서 뿐 아니라 인간 삶의 평가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평가에 있어서 신학적 관점이 특히 낙태 또는 안락사 등의 문제에 더욱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글97
위글은 서언중 일부입니다.
□ 총 페이지수 : 11
□ 목 차:
서언
I. 성윤리의 신하적 특성
II. 성윤리의 구원역사적 출발점
III. 윤리규범을 위한 결론
성의 영역으로부터 제기되는 논리문제를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 전개과정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성에 대한 전통적인 규범을 문제 삼고 있다. 성에 대한 전통적인 규범이 의문시되고 있는 현상을 단지 현대의 경험인식 또는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는 성의 현상에 대한 윤리적이고 세계관적인 새로운 가치평가라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구조의 세속화 또는 다원화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과정이 성이라는 인간의 기본현상을 변화된 시각에서 새롭게 평가하도록 작용했으리라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비단 성에 대해서 뿐 아니라 인간 삶의 평가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평가에 있어서 신학적 관점이 특히 낙태 또는 안락사 등의 문제에 더욱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글97
위글은 서언중 일부입니다.
본문내용
스도교적 전체 삶을 위한 방향설정에 봉사해야 한다. 이 봉사를 위한 기본법칙은 이웃사랑의 게명이다. 이웃사랑의 계명은 가끔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이웃을 위해 어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봉사를 내 삶의 본질로 여겨야 된다는 것을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아의 고립을 뛰어 넘으면서 자신을 진보시켜야 하며 너를 향한 방향설정 안에서 자기 삶의 의미충족을 발견해야 한다.
바로 너를 향한 방향설정에 있어서 성은 기본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너를 향한 방향설정을 의식적으로 성 안에 표현하므로써 성이 진보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의 진정한 의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능케 하고 인간 상호간의 깊은 유대관계를 가능케 하는 곳에 있다. 그러므로 성을 쾌락을 얻는 수단으로만 이해한다면 그리스도교적 삶의 전체 방향설정은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자위행위는 그리스도교적 방향설정과 목표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위행위의 경우 성은 너를 향해 개방되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폐쇄되기 때문이다. 만일 자위행위 그 자체를 윤리적 선으로 또는 적어도 무관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사랑에 대한 개방적인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지난친 자아관련성을 강화시키는 성의 현상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한편으로 인간 삶의 전체적인 방향설정과 성교육적인 목표설정을, 다른 한편으로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개별행위에 대한 판단을 구별해야 한다. 인간의 행위는 항상 자유로이 발생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윤리적인 선 또는 악으로 판단될 수 있다. 가끔 인간에게는 자신의 성적 태도를 스스로 긍정하고 인정하는 삶의 전체적인 방향설정에로 통합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성적인 태도에 대한 판단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이고 이 문제를 여기서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사춘기의 경우처럼 자위행위를 아무런 고려없이 무조건 윤리적인 악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만을 암시하고자 한다.
이상과 같은 고찰이 동성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있을 것이다. 동성애라는 성적인 관계는 적어도 의미체험의 가능성, 인격적 특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부부관계와는 동일시할 수 없다. 적어도 동성애의 경우는 자녀를 향한 부부사랑의 개방성이 배제되어 있다. 단지 상호간에 성적인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위행위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에 더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동성애는 그러나 일련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이러한 동성애는 거의 대부분의 짧은 기간 동안만 지속되고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을 특징지우는 신뢰도 결여되어 있다.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고찰은 동성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동성애가 자신의 잘못없이 유전적인 소질에 기인한다면 이것은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영역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가 지니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불이익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와 교육을 책임진 자들은 이러한 유전적 요인을 조장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특히 젊은이들이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동성애를 성적 방향설정의 동일한 가능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성을 이웃사랑의 계명 안으로 통합시키는 대신 성적 쾌락추구를 최고의 판단기준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3. 신뢰
만일 성이 단순히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너의 인격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봉사한다면, 성적 결합은 신뢰라는 차원도 포함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격은 어느 개별적 시점에서 와해되는 것이 아닌 역사적인 연속성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만일 너를 일시적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너를 인격체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성적 존재로서 사랑할 뿐이다. 인간을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성적 존재로 사랑하는 한계를 뛰어 넘는 곳에 인격적 사랑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랑의 모형이 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결혼의 불가해소성에 대한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인격적 사랑이 제아무리 제한받지 아니하는 신뢰를 요구한다 할지라도 가끔은 인간 이하의 계기가 어떤 갈등을 초래해서 신뢰에 대한 힘을 소유할 수 없게 하거나 또는 부부의 공동체적인 삶을 지속할 수 없게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교회는 부부의 별거라는 가능성을 해결책으로 제공해 주고있다. 바로 여기에 계시 안에 근거를 두고 있는 하나의 이상과 구체적인 현실의 가능성 사이에는 항상 어떤 구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고찰은 구체적인 성의 규범을 개별적인 문제에까지 남김없이 규정지우고자 하는 의도 하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성의 규범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경험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경험적 연구 그 자체도 성윤리의 구범을 완벽하게 제시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인간의 본성(자연)은 길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다양한 형태와 목표설정을 가능케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로부터 인간행위의 최종적인 목표를 전적으로 유도해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더구나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최고의 목표를 유도해 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자연적 목표는 존재하지 아니하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의 자연적 윤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로 오늘날 성윤리의 규범을 경험적인 연구에 바탕을 두지아니한 일정한 권리로 규정지우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윤리의 문제와 관련해서 윤리신학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경험과학 그 자체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이념주의자들과 이러한 이념주의자들의 영향을 아무런 반성없이 받아들여 그것을 마치 자연과학적인 견지에서 정당화시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경험론자들로부터 주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념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신학적인 전제들이 자신의 고유한 출발점에 해명하는 가능성 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너를 향한 방향설정에 있어서 성은 기본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너를 향한 방향설정을 의식적으로 성 안에 표현하므로써 성이 진보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의 진정한 의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능케 하고 인간 상호간의 깊은 유대관계를 가능케 하는 곳에 있다. 그러므로 성을 쾌락을 얻는 수단으로만 이해한다면 그리스도교적 삶의 전체 방향설정은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자위행위는 그리스도교적 방향설정과 목표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위행위의 경우 성은 너를 향해 개방되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폐쇄되기 때문이다. 만일 자위행위 그 자체를 윤리적 선으로 또는 적어도 무관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사랑에 대한 개방적인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지난친 자아관련성을 강화시키는 성의 현상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한편으로 인간 삶의 전체적인 방향설정과 성교육적인 목표설정을, 다른 한편으로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개별행위에 대한 판단을 구별해야 한다. 인간의 행위는 항상 자유로이 발생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윤리적인 선 또는 악으로 판단될 수 있다. 가끔 인간에게는 자신의 성적 태도를 스스로 긍정하고 인정하는 삶의 전체적인 방향설정에로 통합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성적인 태도에 대한 판단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이고 이 문제를 여기서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사춘기의 경우처럼 자위행위를 아무런 고려없이 무조건 윤리적인 악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만을 암시하고자 한다.
이상과 같은 고찰이 동성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있을 것이다. 동성애라는 성적인 관계는 적어도 의미체험의 가능성, 인격적 특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부부관계와는 동일시할 수 없다. 적어도 동성애의 경우는 자녀를 향한 부부사랑의 개방성이 배제되어 있다. 단지 상호간에 성적인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위행위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에 더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동성애는 그러나 일련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이러한 동성애는 거의 대부분의 짧은 기간 동안만 지속되고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을 특징지우는 신뢰도 결여되어 있다.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고찰은 동성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동성애가 자신의 잘못없이 유전적인 소질에 기인한다면 이것은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영역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가 지니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불이익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와 교육을 책임진 자들은 이러한 유전적 요인을 조장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특히 젊은이들이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동성애를 성적 방향설정의 동일한 가능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성을 이웃사랑의 계명 안으로 통합시키는 대신 성적 쾌락추구를 최고의 판단기준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3. 신뢰
만일 성이 단순히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너의 인격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봉사한다면, 성적 결합은 신뢰라는 차원도 포함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격은 어느 개별적 시점에서 와해되는 것이 아닌 역사적인 연속성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만일 너를 일시적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너를 인격체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성적 존재로서 사랑할 뿐이다. 인간을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성적 존재로 사랑하는 한계를 뛰어 넘는 곳에 인격적 사랑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랑의 모형이 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결혼의 불가해소성에 대한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인격적 사랑이 제아무리 제한받지 아니하는 신뢰를 요구한다 할지라도 가끔은 인간 이하의 계기가 어떤 갈등을 초래해서 신뢰에 대한 힘을 소유할 수 없게 하거나 또는 부부의 공동체적인 삶을 지속할 수 없게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교회는 부부의 별거라는 가능성을 해결책으로 제공해 주고있다. 바로 여기에 계시 안에 근거를 두고 있는 하나의 이상과 구체적인 현실의 가능성 사이에는 항상 어떤 구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고찰은 구체적인 성의 규범을 개별적인 문제에까지 남김없이 규정지우고자 하는 의도 하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성의 규범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경험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경험적 연구 그 자체도 성윤리의 구범을 완벽하게 제시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인간의 본성(자연)은 길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다양한 형태와 목표설정을 가능케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로부터 인간행위의 최종적인 목표를 전적으로 유도해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더구나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최고의 목표를 유도해 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자연적 목표는 존재하지 아니하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의 자연적 윤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로 오늘날 성윤리의 규범을 경험적인 연구에 바탕을 두지아니한 일정한 권리로 규정지우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윤리의 문제와 관련해서 윤리신학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경험과학 그 자체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이념주의자들과 이러한 이념주의자들의 영향을 아무런 반성없이 받아들여 그것을 마치 자연과학적인 견지에서 정당화시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경험론자들로부터 주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념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신학적인 전제들이 자신의 고유한 출발점에 해명하는 가능성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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