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카프(KA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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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카프의 시기구분

1.제 1기(카프전사(前史)) : 1920년대 초반 신경향파 문학 발생 이후 카프 결성 전

2.제 2기(카프1기) : 카프 결성 ~ 제1차 방향전환 시기

3.제 3기(카프2기) : 제1차 방향전환 ~ 제2차 방향전환 시기

4.제 4기(카프3기) : 제2차 방향전환 시기 ~ 해체까지의 시기

본문내용

침략정책을 노골화한 1930년대 들어 다시 한번 강압적 대타압을 자행, 일본사법부가 일본내 공산당을 대거 검거(1931) 하고 나프(NAPF)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하여 조직원의 대대적인 검거와 사상검열이 실시되고 사회주의 계열 작가 少林多喜二가 죽음(1933. 2) 에 이르게 되는 등 일본사회가 전시를 위한 전체주의체체로 조직되어 가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에 대한 강제 사상전향 정책을 실시, 일본 공산당의 수뇌격인 사노, 나베야마가 옥중 전향문을 발표(1933. 5)하게 된다. 이러한 폭압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탄압은 우리나라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져 사회주의자 및 카프(KAPF)에 대한 1, 2차 검거와 그들에 대한 강제적인 사상전향이 강요된다. 일제는 만주사변을 시발로, 조선에 대한 병참기지화 및 황국신민화정을 본격화하면서 조선내의 모든 합법적인 운동을 금지시키고 1931년에 들어서서는 신간회에 대한 탄압과 함께 조선내 사회주의자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고 카프에 대해서도 각종 압력을 행사, 카프 확대위원회 개최 및 카프 수원지부 주최 미술전람회 개최 금지(1931. 3), 카프 중앙위원회 모임 금지(1931. 4)와 카프에 대한 제1, 2차 검거가 시작된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문학활동은 크게 위축되고 사실상 개인적인 창작활동만으로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으며 작품내용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이념을 내면화 잠재화 시켜 표현하거나(이기영 [신개지], 한설야 [황혼]) 풍자소설로 방향을 돌리거나(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 또는 이념에 대한 회의, 현실에 대한 관심이나 이념을 포기하고 자연의 세계, 성의 세계 그리고 서정적인 소설의 세계로 그 재제를 바꾸어 가게 되었으며(이효석 [오리온과 임금]) 전향 이후의 자괴감과 방향 상실감외 괴로워하며 새로운 모랄을 찾으려는 노력(김남천)을 표현하게 된다. 검거된 카프의 문인들 역시 일제의 정책에 따라 대부분 전향서를 작성하는 등 이 시기 카프 진영의 사회주의 문인들의 대다수가 일제의 억압에 굴복해 친일로 전향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일제의 집요한 탄압과 조직와해 공작, 카프의 도식주의적 창작방법에 반발하던 일부 카프문인들('당의 문학'을 내세운 임화(林和)등 극좌파 동경 유학생이 주축이된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이후 카프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예술운동의 볼세비키화에 따라 문학이 계급이론을 위한 시녀로 전락되는 것에 회의를 품기 시작한 박영희(朴英熙)는 카프 탈퇴원을 제출(1933)하고 이에 서기장이던 임화(林和)가 퇴맹계 제출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퇴맹계를 무효로 선언, 반려하게 된다.)로 인해 내부적으로 분열되기 시작한 카프는 1933년 일체의 문학적 실천이 불가능 해진 상황하에서 패배적이고 감상주의적인 경향에 빠져 내부에서 조직의 해산논의가 나오기 시작하고 카프 2차 검거 사건 이후 퇴맹계를 제출, 반려되었던 카프의 지도자 박영희(朴英熙)가 카프의 탈퇴를 공식화하기 위한 의도로 “다만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이다.”라는 전향선언문구가 실린 〈최근문예이론의 신전개와 그 경향〉을 발표(1934. 1. 4)하고 조직의 이론가인 신유인, 백철(白鐵), 신석정 등과 함께 카프에서 탈퇴하자 크나큰 내부 혼란에 빠져들어 소위 전향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에 서기장이던 임화(林和)가 사태를 수습하려 노력하였으나 일제의 지속적 탄압과 제2차 카프 검거로 조직이 와해되고 활동이 정지된 상태에서 일제의 직접적인 해산 압력을 받게되자 이에 카프 지도부는 제2차 검거로 구속된 동맹원들에 대한 서면질의 형태를 밟아 1935년 5월 20일 김남천, 임화(林和), 김기진이 카프의 해산을 협의하여 임화(林和)가 동대문서 고등계에 카프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해체하게 된다. 이후 프로문학 진영은 조직이 해체된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침체기에 빠졌다가, 8·15광복 이후 임화가 8월 17일 발족시킨 광복이후 최초의 문학단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와 구카프계의 비해소파가 조직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기영, 윤기정, 한효, 한설야, 이동규, 윤규섭, 송영, 홍구, 김승구, 권환(權煥) 등이 1945. 9.17 결성)등으로 다시 재건된 뒤, 12월 13일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흡수하고 다수의 순수문인들과 중간노선을 걷던 문인들의 참여로 확대 개편된 한국 문단사상 최대의 문학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으로 재결집, 해방공간하에서 다시 미군정과 우파보수세력 및 민족진영과 치열한 좌익문학운동 및 정치사상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6.25를 전후하여 다수의 프로문인 지도인사들의 월북(대표적 프로문인들의 월북시기 : ①1차 월북자(조선문학가동맹 결성 ~ 6.25 전쟁전) : 이기영, 한설야, 한효, 이동규, 윤기정, 박세영, 안함광, 송영, 안막, 월북이유 -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연결하면서 주도권 상실 ②2차 월북자(미군정이 공산당을 불법단체로 인정, 탄압한(47년) 이후 ~ 정부 수립 직전) : 임화(林和), 김남천, 이원조, 오장환, 이태준, 임학수, 박팔양, 김오성, 윤세중, 안희남 ③3차 월북자(6.25 전쟁시 납북) :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설정식, 이용악, 송완순, 홍효민, 김용호, 이광수, 김동환, 박영희(朴英熙), 김진섭, 김억)과 전쟁 후 반공을 국시로 하게된 남한정권의 금기로 인하여 프로문학 인사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금서화되어 그들에 대한 연구와 전파 및 소개 자체가 금지되다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1988년 7.19 해금조치로 월북(납북)문인 120여명이 해금되고 이후 다시 빛을 보게된다. 월북한 카프문인중 상당수가 남침 실패 책임의 희생양으로 제거된 1953년의 남로당 숙청때 함께 제거(임화(林和), 이원조(李源朝), 설정식(薛貞植), 이승엽, 김남천(金南天) 등) 되는 등 이후의 북한에서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으며 북한 문학사에서도 배척된 신세로 전락, 반세기 동안이나 남.북한 모두에게 버림 받는 운명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 문학사중 가장 치열한 시기를 살다간 카프문인들에 대한 연구 또한 방기된 상태로 심도있는 연구와 해석이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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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6.27
  • 저작시기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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