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Heide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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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금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 사람에서 떠나는 순간은 내가 불안을 느끼는 것이고, 불안인 동시에 매순간마다 내 삶을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을 양심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내 삶이 내 삶일수록 불러주는 것이다. 이것을 양심의 부름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나 자신의 원초적인 삶, 내가 내자신의 조건을 선택해야 하는 그런 삶을 내 스스로 익히 잘알고 있다(Wissen). 이것을 양심이라 하는데 대한 양심의 부름에 응답한다라고 말다.
내가 문화적 양식에 따라 살고 있는 데, 즉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논리에 따라 사는 데, 이 논리를 부정했을 때 우리의 불안, 당혹감도 불안이며, 동시에 내 삶을 선택해야 한다. 그냥 살거나 내 삶의 다른 양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 삶의 다른 양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내 원초적 삶이 내 마음속에서 나를 부르는 것이고
동시에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하는 것은 그 부름에 대한 응답이다.
즉 부름과 대답은 일치한다. 그런데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세상 사람으로 돌아가면 나는 실존적인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이 양신의 부름을 하이데거는 존재의 부름에 대해 응답하는 현존재라 한다. 존재의 부름은 일정한 삶속에서 내가 삶을 선택하는 순간에 존재가 현전하는 것이므로 그 존재의 부름이 응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숙명,운명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양자가 일정한 세계와 만나서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존재가 세계내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라는 것을 보면
나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세계이기도 하다. 예컨데 교실은 나에 의해서 열려 있지만 다른 사람에 있어서도 교실로 열려 있는 것이다. 즉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문화적인 조건,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적 세계는 나의 세계로 열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세계로도 열려져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 도구적 세계를 지배하는 논리가 있는 데 그 논리를 우리는 문화라고 한다.
이것이 도구적 세계를 근간으로 해서 그 도구적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일정한 논리이다. 그 논리가 현존재가 출현했을 때에 현존재의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das mann이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문화의 논리가 세상 사람으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그 문화의 논리를 습득하는 것이고 습득하면서 내가 세상 사람들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리하여 개체성이 다 죽어버리고 문화만이 남아 있게 된다.
어쨌던 인간은 자기 자신이 속해 있는 상황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는 피투성이라 한다. 우리는 일정한 상황속에 던져져 있으므로 그 상황에 알맞은 도구적 세계를 선택하게 되고 도구적 세계에 구축되어 있는 문화를 습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내존재로 있으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퇴락의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내 삶의 조건 전체를 재음미해 보면서 세상 사람들의 삶에 따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면 상황은 똑같이 주어져 있지만, 그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문화의 논리에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자기 스스로 결단을 내리면서 그 상황을 새롭게 전개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예를 보자.
출세한 은행가가 해변으로 낚시를 떠났다. 낚시를 하면서 즐기다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먼저 돌아 가시요 내 곧 따라 갈 테니'라고 말하고는 2,3년 이 지나도 돌아 가지 않았다.
아내가 어느 해변에 가보니 남편이 바다에서 여전히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당신 미쳤소 당신이 쌓아 놓은 명성, 지위, 재산을 버리고 이렇게 살면 되겠소'하니
남편은 '이것이 나는 좋소'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상황이라는 것을 그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수 많은 도구적 세계와 도구적 세계를 지배하는 문화적 논리속에 살아 왔던 것이다.
그가 살아 오다가 낚시를 해보니 자기 삶에 정복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순간에 자기의 삶을 선택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주어진 상황을, 즉 세상 사람들이 사는 양식대로 삶을 받아 들이지 않고 새로운 자기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삶의 주어진 상황을 새롭게 여는 것이다. 숙명이란 말은 이미 자기 자신속에 잠복해 있으면서 자기 자신을 염려 하는 것, 어쩔 수 없는것을 말한다. 예컨데 나의 출생과 더불어 갖는 조건은 숙명이다. 이 숙명을 사람들은 운명으로 받아 들인다. 운명이란 운을 지배한다 다스린다 통제한다는 뜻으로 숙명을 받아 들이면서 새롭게 전개해 볼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정한 상황을 개척하는 것을 운명이라 한다. 실존은 숙명적인 상황속에서 자기 자신을 운명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실존성, 혹은 자각, 자기성, 본래성으로 말한다. 그리고 결의성,결단성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entschlieBenheit인데, 이것은
ent schlieBen heit
벗기다 감추어진 --性
탈취하다 잠겨진
즉 감추어지거나 잠겨진 것을 벗기는 것을 결단, 결의라고 한다. 이말은 자기 자신이 출생해서 보니 일정한 상황이 주어지고, 그 속에서 문화를 습득해가며 나 자신을 획득해 가는 것인 데, 문화의 논리가 나를 덮씌우고 있기 때문에 그 문화의 논리를 나의 삶에 맞추어 재배치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문화의 논리에 맞추어 살고 있다. 내 삶을 설정해 놓고 문화적 공간을 재배치해서 나의 새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맞추어져 있는 세계에 맞추어 들어 갈려고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있다보니 원래의 세계는 나에게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화의 논리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 전혀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문화의 논리를 나의 삶에 맞추어서 다시 재배치하게 된다. 문화의 논리가 감추고 있던 나의 삶이 내가 문화를 재구성함으로서 나의 삶을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묶여져 있는 것을 풀고, 숨겨져 있는 것을 펼쳐내고 하는 것을 entschlossenheit라 한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풀려나는 것, 즉 해탈이라는 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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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2.06.27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7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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