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에서 전쟁 때문에 오랜 동안 단절되어 있던 창작의 실마리를 비로소 풀 수가 있었다. 라는 일련의 시 작품을 얻었다. 다음해인 1921년 7월에 발리스 지방에서 뮈조트 성을 발견, 이윽고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뮈조트 성은 13세기에 세워진 고건물로서, 전등도 수도도 없는 고원 속에 있는 고탑이었다. 1922년 2월 가정부 한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이 고독한 생활 속에서, 오랜 동안 단절되어 있던 <비가>의 시상이 폭풍처럼 시인을 엄습해 왔다. 이 때 제7, 제8, 제5비가가 일시에 완성되고 단편으로 남아 있던 다른 미완의 비가들도 완성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혀 예기치도 않던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55편도 단숨에 쏟아져 나왔다. 그는 시인의 사명을 다한 것과 같은 기쁨을 느꼈다. 이 10편의 비가 속에는 릴케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이 전개되어 있다. 무상·사랑·죽음·인간 내부의 황폐, 인간의 운명, 영웅 찬양, 삶의 송가, '열려진 세계', 인간 존재에게 독특한 감명을 준다. <소네트>는 우연히 쏟아져 나온 사물이지만 심원한 시상과 갖가지 추억이 싱싱한 격조로 노래되어 있다.
<비가>와 <소네트>를 끝낸 릴케는 20세기의 지성, 프랑스의 시인 폴발레리에게 존경과 공감을 느끼고, 그 번역에 몰두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프랑스어로 시작을 시도했다. 이 시들은 발레리의 찬양과 격려에 힘입어 프랑스의 잡지에 발표되었다. 《과수원》 《장미》 《창》 등은 프랑스어 시집이다.
발라디이느 클로서브스카 부인과의 만년의 사랑은 그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지만 창작과 사랑의 갈등에서 많은 고뇌도 격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스위스에서 베르너 라인하르트, 분덜리 폴카르트 부인과 같은 귀중한 친구를 얻었다. 스위스의 생활이 해마다 점점 풍족해 간 것은 이들 우정에 힘입은 바가 컸다. 1925년 1월부터 8월까지 그는 추억의 파리를 다시 찾았다. 지드, 발레리 등 많은 옛 친구를 만나고, 또 새로운 친구도 얻을 수 있었다. 이 파리 체재 중에 그는 모오리스 베츠의 《말테의 수기》의 불역을 도왔다.
1926년 10월 초순, 뮈조트성의 정원에서 장미를 꺽다가 왼쪽 손가락에 가시가 찔려, 그것이 화농하여 패혈증 증세를 나타냈다. 마음과 정신이 모두 지친 그는 이 병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1926년 12월 29일 오전, 그는 발몽요양소에서 51년의 생애를 마쳤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라론의 묘지에 묻혔다.
  • 가격1,3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2.06.27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737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