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 글
2. 기사도와 여인 섬김
3. 기사문학에 나타난 여인상
3.1. 영웅문학과 여인
3.2. 원탁의 기사와 여인
3. 3. 이상적 여인 마리아
4. 민네 속의 여인
4. 1. 높은 민네와 여인
4. 2. 낮은 민네와 여인
4. 3. 사랑과 고통
5. 맺는 글
2. 기사도와 여인 섬김
3. 기사문학에 나타난 여인상
3.1. 영웅문학과 여인
3.2. 원탁의 기사와 여인
3. 3. 이상적 여인 마리아
4. 민네 속의 여인
4. 1. 높은 민네와 여인
4. 2. 낮은 민네와 여인
4. 3. 사랑과 고통
5. 맺는 글
본문내용
dn. Bd. 3, S. 364.
고 외치면서 모든 문화의 원천은 여성적인 것에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해방국면에서 찾으려는 노력 가운데 이미 중세기에 태동된 사실이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의 활동은 수태능력, 육아, 음식 조리 및 식량조달 등 인간사 전반에 걸쳐 있어서 남성보다 훨씬 활발하였다. 그러나 농경 생활이 정착되고 농기구가 발달되면서 남성에게 많은 역할을 양보하여야 했다.
중세시대에는 여성의 권익이 오늘날 보다 훨씬 더 보장되어 있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 Shulamit Shahar, a. a. O., S. 11.
차츰 국가체제가 형성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약화되기 시작한 때였고, 부분적으로는 여성이 성적 후견인 정도로 추락되기도 하였다. 특히 만민이 신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을 표방하는 기독교가 광범위하게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 기독교가 여성을 '어머니, 아내이기 이전에 무의식적인 자연의 하와'로 세우고 남성의 부속물이 아니라 아담의 몸에서 만들어진 그와 똑같은 '거들 짝(돕는 배필)'(창 2: 18)으로 밝히고 있는 만큼, 남녀 상호간의 인격이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발전된 현대사회의 현실로 인정되고 있다.
실질적인 면에서 교회의 법과 제도는 여성의 독립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였다. 오히려 여자를 '악마의 문' 또는 '유혹 자'로 폄하하였다.
) Vgl. Ebd., S. 6-11. 마녀사냥으로부터 시작된 중세 여성의 역사현장은 이교도 운동과 함께 전개되었다. 당시의 여성계층은 '성직봉사여인 Beterinnen', '기혼여인 Verheiratete Frauen', '귀부인 Edelfrauen', '도시여인 Stadterinnen', '여자농부 Bauerinnen', '이교여인 Ketzerinnen' 그리고 '마녀 Hexen'로 구분되는 사회미분화의 배경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여권의 향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초기 자본주의시대부터이다. 여성이 산업분야에 참여하고, 재산권의 소유에 관한 개념이 도입된다. 또한 근대에 이르러 인간성 회복을 내세운 르네상스 사상은 여성이 시민으로서 남자와 평등하다는 의식을 정착시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여성해방운동이 구체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체하는 것과 지속하는 것 das Bleibende und Dauernde', 또는 '쉬는 것 das Ruhende'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행위가 이제 남성 못지 않게 큰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 인정된 것이다.
) J. Klein, a. a. O., S. 18.
이러한 모든 발전과정상에서 지렛대의 역할을 한 것이 기사도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 제도 자체가 이상적인 시기의 남성과 여성이 비로소 하나의 '관계' 속에서 사회성을 실현하면서 서로의 존재성을 높여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여성들의 문제는 여성들에서가 아니라, 삶과 사회의 동반자인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그 역할의 중요한 부분을 기사들이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기사계급은 십자군의 봉기, 봉건제도의 몰락, 경제질서의 해체와 상공계급의 발달, 개인주의 사상고양 등 여러 사건들을 뒤로하면서 외형상으로 종식을 고한다. 그러나 문화 사회적으로 신분상의 조건마저 유사한 '신사도'의 모습으로 남아서 여성 해방운동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18세기말과 사회 문제시된 19세기,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젊은 남성들의 이상적 행동규범으로 존속하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고 중세 기사도의 부인숭배가 봉건사회에서 여자의 지위를 완전한 수준으로 높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뒤따른다. 섬김의 대상인 여성이 기혼의 귀부인이었지, 여성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여성에 대한 '존중심'이 신분행사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따름이라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더욱이 그 이면에는 여성이 연약한 존재이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남성적 우월성이 전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버릴 수 없다.
) Ebd., S. 18.
그런 중에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중세기에 기사에게 이상화된 사랑은 도덕과 제도의 규범에 묶여 인간성 상실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어서 자체 목적성의 함정에 갇히고 만 점이다. 높은 민네와 낮은 민네 사이에는 궁중에서 통용되는 현학적 민네 원리가 영적이며 자연적인 충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일치 die Inkongruenz'가 난점으로 남아 있었다. 성애와 소유욕을 초월한 정화된 감정이 인간적인 측면을 더 이상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처럼 전개되는 사건들 모두가 감각적인 듯 하지만, 영적인 면을 추구하는 힘이 더욱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기사도가 문화사적으로 개화된 행동의 표현이었으며, 여성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는 점이다. 기사문화 속에 있는 여인숭배가 비록 신분적 장치에 의한 것이지만, 여성의 권위를 정신적으로 늘 어떤 수준 위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게르만적 전통 속의 여인상이나 이졸데 방식의 여인의식은 모성 또는 여성스러움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체 안에 남성적인 것 Mannliches in sich' 까지도 포용하는 독립적이며 전인적인 성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오늘날의 페미니즘 시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하는 성이라는 여성은 행동하는 남성을 모방이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누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리하여 여성이 남성의 단순한 '돕는 자' 이상의 과업을 수행하면서, '형제자매나 이웃으로서의 모든 착각과 욕망에서 해방되어 인간으로서 협동하는 befreit von allen Irrgefuhlen und Unlusten als Geschwister und Nachbarn und sich zusammen werden als Menschen'
) E. Klatt, Rainer Maria Rilke, S. 61.
그런 관계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세 기사도의 한 맥을 이루는 신사도를 통하여 전통적인 의미의 페미니즘을 오늘의 시각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고 외치면서 모든 문화의 원천은 여성적인 것에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해방국면에서 찾으려는 노력 가운데 이미 중세기에 태동된 사실이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의 활동은 수태능력, 육아, 음식 조리 및 식량조달 등 인간사 전반에 걸쳐 있어서 남성보다 훨씬 활발하였다. 그러나 농경 생활이 정착되고 농기구가 발달되면서 남성에게 많은 역할을 양보하여야 했다.
중세시대에는 여성의 권익이 오늘날 보다 훨씬 더 보장되어 있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 Shulamit Shahar, a. a. O., S. 11.
차츰 국가체제가 형성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약화되기 시작한 때였고, 부분적으로는 여성이 성적 후견인 정도로 추락되기도 하였다. 특히 만민이 신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을 표방하는 기독교가 광범위하게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 기독교가 여성을 '어머니, 아내이기 이전에 무의식적인 자연의 하와'로 세우고 남성의 부속물이 아니라 아담의 몸에서 만들어진 그와 똑같은 '거들 짝(돕는 배필)'(창 2: 18)으로 밝히고 있는 만큼, 남녀 상호간의 인격이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발전된 현대사회의 현실로 인정되고 있다.
실질적인 면에서 교회의 법과 제도는 여성의 독립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였다. 오히려 여자를 '악마의 문' 또는 '유혹 자'로 폄하하였다.
) Vgl. Ebd., S. 6-11. 마녀사냥으로부터 시작된 중세 여성의 역사현장은 이교도 운동과 함께 전개되었다. 당시의 여성계층은 '성직봉사여인 Beterinnen', '기혼여인 Verheiratete Frauen', '귀부인 Edelfrauen', '도시여인 Stadterinnen', '여자농부 Bauerinnen', '이교여인 Ketzerinnen' 그리고 '마녀 Hexen'로 구분되는 사회미분화의 배경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여권의 향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초기 자본주의시대부터이다. 여성이 산업분야에 참여하고, 재산권의 소유에 관한 개념이 도입된다. 또한 근대에 이르러 인간성 회복을 내세운 르네상스 사상은 여성이 시민으로서 남자와 평등하다는 의식을 정착시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여성해방운동이 구체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체하는 것과 지속하는 것 das Bleibende und Dauernde', 또는 '쉬는 것 das Ruhende'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행위가 이제 남성 못지 않게 큰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 인정된 것이다.
) J. Klein, a. a. O., S. 18.
이러한 모든 발전과정상에서 지렛대의 역할을 한 것이 기사도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 제도 자체가 이상적인 시기의 남성과 여성이 비로소 하나의 '관계' 속에서 사회성을 실현하면서 서로의 존재성을 높여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여성들의 문제는 여성들에서가 아니라, 삶과 사회의 동반자인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그 역할의 중요한 부분을 기사들이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기사계급은 십자군의 봉기, 봉건제도의 몰락, 경제질서의 해체와 상공계급의 발달, 개인주의 사상고양 등 여러 사건들을 뒤로하면서 외형상으로 종식을 고한다. 그러나 문화 사회적으로 신분상의 조건마저 유사한 '신사도'의 모습으로 남아서 여성 해방운동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18세기말과 사회 문제시된 19세기,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젊은 남성들의 이상적 행동규범으로 존속하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고 중세 기사도의 부인숭배가 봉건사회에서 여자의 지위를 완전한 수준으로 높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뒤따른다. 섬김의 대상인 여성이 기혼의 귀부인이었지, 여성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여성에 대한 '존중심'이 신분행사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따름이라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더욱이 그 이면에는 여성이 연약한 존재이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남성적 우월성이 전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버릴 수 없다.
) Ebd., S. 18.
그런 중에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중세기에 기사에게 이상화된 사랑은 도덕과 제도의 규범에 묶여 인간성 상실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어서 자체 목적성의 함정에 갇히고 만 점이다. 높은 민네와 낮은 민네 사이에는 궁중에서 통용되는 현학적 민네 원리가 영적이며 자연적인 충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일치 die Inkongruenz'가 난점으로 남아 있었다. 성애와 소유욕을 초월한 정화된 감정이 인간적인 측면을 더 이상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처럼 전개되는 사건들 모두가 감각적인 듯 하지만, 영적인 면을 추구하는 힘이 더욱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기사도가 문화사적으로 개화된 행동의 표현이었으며, 여성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는 점이다. 기사문화 속에 있는 여인숭배가 비록 신분적 장치에 의한 것이지만, 여성의 권위를 정신적으로 늘 어떤 수준 위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게르만적 전통 속의 여인상이나 이졸데 방식의 여인의식은 모성 또는 여성스러움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체 안에 남성적인 것 Mannliches in sich' 까지도 포용하는 독립적이며 전인적인 성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오늘날의 페미니즘 시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하는 성이라는 여성은 행동하는 남성을 모방이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누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리하여 여성이 남성의 단순한 '돕는 자' 이상의 과업을 수행하면서, '형제자매나 이웃으로서의 모든 착각과 욕망에서 해방되어 인간으로서 협동하는 befreit von allen Irrgefuhlen und Unlusten als Geschwister und Nachbarn und sich zusammen werden als Menschen'
) E. Klatt, Rainer Maria Rilke, S. 61.
그런 관계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세 기사도의 한 맥을 이루는 신사도를 통하여 전통적인 의미의 페미니즘을 오늘의 시각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