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지, 또 사람들이 왜 일상적으로 재미를 찾아 헤매는지를 말하려면 다시 다른 경로를 거쳐 와야겠지만.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시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왜 다들 <에반게리온>을 보는가?' 라는. 사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거시적인 차원의 답이자 가장 컨텍스트-의존적인 답은, '가상공간에서의 엔터테인먼트를 찾아 헤매게끔 현실공간 속에서의 사람들의 일상이 지겹고 팍팍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에반게리온>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것을 보는 이들이 현실공간 속에서의 자신의 무의식적인 기대와 욕망과 좌절을 스크린에 투사하면서 텍스트의 요소들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 <에반게리온>을 보고 나서, 또 그것에 숨겨진 요소들에 대한 해석들을 읽고 나서, 우리에게 남은 해야 할 일은 <에반게리온>과 그에 대한 비평글을 보는 자신마저도 대상화시키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에반게리온>을 '보고' 또 '읽으면서' 그 결과물을 통해 현실의 일부를 들여다보았다면, 그 다음에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에반게리온>을 보고 있는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볼 일이다. 왜 에반게리온은 재밌을까, 내지는 나는 왜 <에반게리온>을 보러 온 것일까, 라고 말이다. 그런 자기성찰적인 과정은 자신의 삶의 과정 속에 빠진 요소가 무엇인지, 또 그 빠진 요소를 메워주는 텍스트 속의 요소들은 무엇인지를 밝혀 줄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그런 경험으로부터의 추상을 통해 '에반게리온 현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에 도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야말로 <에반게리온> 보기 및 읽기를 가장 적절하게 맺음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시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왜 다들 <에반게리온>을 보는가?' 라는. 사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거시적인 차원의 답이자 가장 컨텍스트-의존적인 답은, '가상공간에서의 엔터테인먼트를 찾아 헤매게끔 현실공간 속에서의 사람들의 일상이 지겹고 팍팍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에반게리온>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것을 보는 이들이 현실공간 속에서의 자신의 무의식적인 기대와 욕망과 좌절을 스크린에 투사하면서 텍스트의 요소들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 <에반게리온>을 보고 나서, 또 그것에 숨겨진 요소들에 대한 해석들을 읽고 나서, 우리에게 남은 해야 할 일은 <에반게리온>과 그에 대한 비평글을 보는 자신마저도 대상화시키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에반게리온>을 '보고' 또 '읽으면서' 그 결과물을 통해 현실의 일부를 들여다보았다면, 그 다음에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에반게리온>을 보고 있는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볼 일이다. 왜 에반게리온은 재밌을까, 내지는 나는 왜 <에반게리온>을 보러 온 것일까, 라고 말이다. 그런 자기성찰적인 과정은 자신의 삶의 과정 속에 빠진 요소가 무엇인지, 또 그 빠진 요소를 메워주는 텍스트 속의 요소들은 무엇인지를 밝혀 줄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그런 경험으로부터의 추상을 통해 '에반게리온 현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에 도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야말로 <에반게리온> 보기 및 읽기를 가장 적절하게 맺음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