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문제제기
2. 문학교육과 대중화
3. 계몽의 이중성
4. 수필의 정신과 그 계보
5. {개벽}의 문학사적 위상
2. 문학교육과 대중화
3. 계몽의 이중성
4. 수필의 정신과 그 계보
5. {개벽}의 문학사적 위상
본문내용
적 창작이 분명하다. 또한 임장화의 「미지의 세계」(12호)·「불멸의 상징」(27호)·「월광」(30호)이나 박달성의 「숙시숙비」(1호)·「이상아의 초보」(12·14호)·「고학의 로」(18호)·「우리는 종놈이다」(65호) 등은 희곡과 소설 그리고 보고문이 혼합된 형국을 보인다. 이는 독자들의 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보고나 수필의 양식을 채용했거나, 역으로 보고문이나 수필의 실감을 높이다 보니 자연스레 희곡이나 소설적 요소들이 부각된 결과일 것이다. 현진건 방정환 등 일찍이 작가의 길을 고민했던 자들은 전자의 차원에서 소설의 실감을 고민했을 터이고, 박달성 등 비전문작가들은 후자의 차원에서 논설이나 보고문 혹은 수필의 실감을 고민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개벽』의 작가들에게 수필의 정신이 문학적 추동력의 핵이었음은 분명하다.
이 시기 우리 문학에서 양식이 문학의 성격을 원초적으로 좌우했다는 또 다른 증거는 동인지 문학, 특히 수필에서 발견된다. 동인지 작가들의 관심이 주로 소설과 자유시에 있었던 만큼 이 양식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마지못해 그 존재를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김환이 「자연의 자각」 사건
) 『현대』에 실린 김환의 소설 「자연의 자각」을 둘러싼 염상섭과 김동인의 논쟁 사건을 말한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필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필들 속에서 우리는 동인지 소설이나 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생한 현실을 접하게 된다. 그들의 정신세계 역시 훨씬 풍부한 옷을 입고 있다. 「고향의 길」·「동도의 길」(김환), 「장강어구에서」(주요한), 「사람이 사는 참 모양」(김동인), 「흑연일총」(이일) 등은 특히 주목을 요한다. 현실세계를 배제하고자 했던 동인들조차 수필이라는 양식 앞에서는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실대로 적는다'는 수필의 정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1920년대 문학의 변화발전에는 수필의 정신에 의거한 '원초적 사실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중심에 『개벽』이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이 김기진이나 박영희의 소설 경향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즉 신경향파문학을 박영희적 경향과 최서해적 경향으로 양분했던 임화의 주장을 단순한 경향차가 아니라 둘의 양식적 뿌리가 서로 다르다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5. 『개벽』의 문학사적 위상
'『개벽』의 문학사적 위상'에 대한 토론문 / 박현수
'『개벽』의 문학사적 위상'에 대한 토론문
박현수
1.
발표문의 의의는 『개벽』을 통해 우리 근대문학의 형성과 굴절을 가늠하려 한 데 있다. 『개벽』은 1920년대 초·중반을 거쳐 70호가 넘게 출간되었으며, 그 내용 역시 정치·사상·사회·문예 등을 망라하여, 당대의 중심에 위치했던 잡지였다. 하지만 발표문의 지적대로 지금까지의 접근은 문학 연구의 방계자료에 한정되어 있었다. 발표자는 이미 『개벽』의 출판과 유통, 또 편집 체계에 대한 글 등을 발표한 바 있다. 발표문은 앞선 실증적 작업을 기반으로 『개벽』이 보인 문학적 노력과 풍부함을 구명하고자 했다. 따라서 발표문이 지니는 의의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개벽』에 대한 접근의 소홀함이, 그 중요성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기보다 기울여야 할 품의 무게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려할 때, 발표자의 논의가 지니는 의미는 더욱 부각된다.
2.
토론자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감히 발표자의 논의에 도움이 될까 한다.
첫째, 『개벽』의 문학적 위상을 밝히는 방법에 관한 문제.
발표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벽』에 대한 접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동인지문학을 중심에 둔 기존 논의에 있다고 하고, 『개벽』의 위상을 거기에 실린 문학의 성격과 동인지 문학의 성격의 변별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매채로서가 아니라 문학적 성격의 차이로서 『개벽』과 동인지를 읽으려는 의도다. 이렇듯 동인지의 문학적 성격과의 차이에 초점을 두는 것이 『개벽』의 문학적 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둘째, 대중화의 문제.
발표문은 『개벽』은 많은 노력을 통해 문학의 대중화를 시도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또 그것을 통해 통속성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먼저 문제는 『개벽』이 성취한 대중화에서 대중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 근대적 문학의 등장은 자국어(음성 언어)의 보급과 중간층(상인들, 독립한 소매상, 행정직과 서기직에 종사하던 사람들, 여성 독자, 하인)을 중심으로 한 독서층의 증가를 기반으로 한다. 또 그 대중화는 주로 흥미를 매개로 한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개벽』이 행한 대중화가 진정 대중화인가 라는 것과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라는 문제다. 이는 동인지문학의 성격 또 대중화의 중층적 성격과도 관련된다.
셋째, 계몽성의 문제.
발표문은 『개벽』의 계몽성이 통속화를 견제했으며, 현진건 등 현실과 접점을 지닌 문학을 양산했음을 언급한다. 특히 『개벽』의 핵심이 계몽에 놓여 있었으며, 문학은 효과적인 계몽의 도구였음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먼저 발표문에서 계몽의 의미가 현실개혁이나 민족운동 이외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20년대라는 당시의 시기를 고려할 때, 계몽성에 관해 언급하려 한다면 문학에 있어서 계몽성 혹은 문학과 계몽성의 관계에 관해 언급하는 방법이 정당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또 앞선 대중화와 같이 계몽성 역시 중층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곧 계몽이란 당시 민중이나 여성 등을 깨우쳐 알게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그 깨우침 자체가 국가 의식이나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사실주의와 수필에 대한 문제
다섯째, 현실과의 접점으로서의 『개벽』의 문학
발표문은 논의의 의도를 『개벽』의 문학이 보인 현실과의 접점에서 찾은 듯 하다. 그것이 단자화된 개인에 중심을 둔 동인지문학과의 변별점이기도 하다. 이는 현진건 소설을 작가 자신에서 폭넓은 현실로의 도정으로 파악한 것과도 연결이 된다. 문제는 발표자가 그것이 사회든 현실이든 사회 속의 개인 혹은 현실 속의 개인이라는 준거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시기 우리 문학에서 양식이 문학의 성격을 원초적으로 좌우했다는 또 다른 증거는 동인지 문학, 특히 수필에서 발견된다. 동인지 작가들의 관심이 주로 소설과 자유시에 있었던 만큼 이 양식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마지못해 그 존재를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김환이 「자연의 자각」 사건
) 『현대』에 실린 김환의 소설 「자연의 자각」을 둘러싼 염상섭과 김동인의 논쟁 사건을 말한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필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필들 속에서 우리는 동인지 소설이나 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생한 현실을 접하게 된다. 그들의 정신세계 역시 훨씬 풍부한 옷을 입고 있다. 「고향의 길」·「동도의 길」(김환), 「장강어구에서」(주요한), 「사람이 사는 참 모양」(김동인), 「흑연일총」(이일) 등은 특히 주목을 요한다. 현실세계를 배제하고자 했던 동인들조차 수필이라는 양식 앞에서는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실대로 적는다'는 수필의 정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1920년대 문학의 변화발전에는 수필의 정신에 의거한 '원초적 사실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중심에 『개벽』이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이 김기진이나 박영희의 소설 경향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즉 신경향파문학을 박영희적 경향과 최서해적 경향으로 양분했던 임화의 주장을 단순한 경향차가 아니라 둘의 양식적 뿌리가 서로 다르다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5. 『개벽』의 문학사적 위상
'『개벽』의 문학사적 위상'에 대한 토론문 / 박현수
'『개벽』의 문학사적 위상'에 대한 토론문
박현수
1.
발표문의 의의는 『개벽』을 통해 우리 근대문학의 형성과 굴절을 가늠하려 한 데 있다. 『개벽』은 1920년대 초·중반을 거쳐 70호가 넘게 출간되었으며, 그 내용 역시 정치·사상·사회·문예 등을 망라하여, 당대의 중심에 위치했던 잡지였다. 하지만 발표문의 지적대로 지금까지의 접근은 문학 연구의 방계자료에 한정되어 있었다. 발표자는 이미 『개벽』의 출판과 유통, 또 편집 체계에 대한 글 등을 발표한 바 있다. 발표문은 앞선 실증적 작업을 기반으로 『개벽』이 보인 문학적 노력과 풍부함을 구명하고자 했다. 따라서 발표문이 지니는 의의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개벽』에 대한 접근의 소홀함이, 그 중요성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기보다 기울여야 할 품의 무게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려할 때, 발표자의 논의가 지니는 의미는 더욱 부각된다.
2.
토론자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감히 발표자의 논의에 도움이 될까 한다.
첫째, 『개벽』의 문학적 위상을 밝히는 방법에 관한 문제.
발표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벽』에 대한 접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동인지문학을 중심에 둔 기존 논의에 있다고 하고, 『개벽』의 위상을 거기에 실린 문학의 성격과 동인지 문학의 성격의 변별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매채로서가 아니라 문학적 성격의 차이로서 『개벽』과 동인지를 읽으려는 의도다. 이렇듯 동인지의 문학적 성격과의 차이에 초점을 두는 것이 『개벽』의 문학적 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둘째, 대중화의 문제.
발표문은 『개벽』은 많은 노력을 통해 문학의 대중화를 시도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또 그것을 통해 통속성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먼저 문제는 『개벽』이 성취한 대중화에서 대중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 근대적 문학의 등장은 자국어(음성 언어)의 보급과 중간층(상인들, 독립한 소매상, 행정직과 서기직에 종사하던 사람들, 여성 독자, 하인)을 중심으로 한 독서층의 증가를 기반으로 한다. 또 그 대중화는 주로 흥미를 매개로 한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개벽』이 행한 대중화가 진정 대중화인가 라는 것과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라는 문제다. 이는 동인지문학의 성격 또 대중화의 중층적 성격과도 관련된다.
셋째, 계몽성의 문제.
발표문은 『개벽』의 계몽성이 통속화를 견제했으며, 현진건 등 현실과 접점을 지닌 문학을 양산했음을 언급한다. 특히 『개벽』의 핵심이 계몽에 놓여 있었으며, 문학은 효과적인 계몽의 도구였음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먼저 발표문에서 계몽의 의미가 현실개혁이나 민족운동 이외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20년대라는 당시의 시기를 고려할 때, 계몽성에 관해 언급하려 한다면 문학에 있어서 계몽성 혹은 문학과 계몽성의 관계에 관해 언급하는 방법이 정당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또 앞선 대중화와 같이 계몽성 역시 중층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곧 계몽이란 당시 민중이나 여성 등을 깨우쳐 알게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그 깨우침 자체가 국가 의식이나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사실주의와 수필에 대한 문제
다섯째, 현실과의 접점으로서의 『개벽』의 문학
발표문은 논의의 의도를 『개벽』의 문학이 보인 현실과의 접점에서 찾은 듯 하다. 그것이 단자화된 개인에 중심을 둔 동인지문학과의 변별점이기도 하다. 이는 현진건 소설을 작가 자신에서 폭넓은 현실로의 도정으로 파악한 것과도 연결이 된다. 문제는 발표자가 그것이 사회든 현실이든 사회 속의 개인 혹은 현실 속의 개인이라는 준거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