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논쟁을 통하여 본 안식일의 기원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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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들어가는 글

II. 본문
1. 헬라어
2. 영역본
3. 변역본
4. 최신 번역본

III. 본문에 관한 연구
1. 문학적 특징
2. 난해구절의 이해

IV. 안식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1. 안식일의 기원
2. 성서가 말하는 안식일의 역사

V. 본문의 주석

VI. 나가는 글

본문내용

이 구절은 바리새인들의 추궁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다음에 안식일을 창조하였다는 천지창조 신화를 상기하고 그렇게 답변하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본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자른것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안식일의 원래적인 뜻에 대한 원칙적인 답변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말은 안식일 법을 상대화 하고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인본주의적인 법 이념을 세우신 것이다. 법이 가지고 있는 만능 사상을 물리치고 인권에 대한 예수의 입장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말씀이다. 예수는 자주 안식일법 준수보다 인간애를 앞세우셨다(막3:1-6 ; 눅13:10-17, 14:1-6 ; 요5:1-18, 9:1-41).
28절: 27절에서는 인본주의적인 법이론을 전개했다면 28절에서는 기독론적인 근거를 내세워 안식일 자체를 문제로 삼는다. 본디 하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신데(레23:3) 이승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권을 받은 인자로서 안식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이 기독론의 근거는 이방계 그리스도 교회에서 만들어 덧붙여 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방계 그리스도 인들은 일찍부터 안식일(토요일) 대신 일요일(주님의 날)을 축일로 지냈다(갈4:10 ; 안디옥의 주교 이냐시오스가 아시아 교회에 보낸 편지 9:1).
예수님은 안식일의 노예가 아닌 안식일의 주인임을 강력하게 말하는 것이다.
" 안식일조차도 당신의 눈에는 그렇게 귀하게 보였나이다. 주여, 그것을 폐하지 마시고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대로 지킬 수 있도록 그것에 새로운 칭호를 주시옵소서(브루스) ".
VI. 나가는 글
외적으로 보기에 바리새인들은 훌륭한 신앙의 담지자들이며 동시에 전통의 전승 및 보존자들이다. 그리고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부여받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과 이들은 히가상 부딪치며 충동하며 살았을까? 과연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이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가식적으로 행하는 사람들만 있었을까?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책망과 저주를 들었을지라도 그들은 훌륭한 신앙인들이었다. 전체의 바리새인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훌륭하게 신앙의 모습을 전해받지 못했을 테이까. 무엇이 그들을 책망을 듣게 하였는가? 많은 시간이 지난면서 인간이 기지고 있는 안일과 명예욕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안식일 논쟁에서도 그렇다.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그 제도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에게 제도안에서 제도를 위해서 희생해 줄 것을 강요한다.
안식일 제도의 원래적인 뜻인 약자인 여성과 노예와 가축과 객들을 가진 자들의 횡포로부터 지키기 위함이 큰 목적이었다. 전에 알아보았듯이 바빌로니아에서도 안식일과 비슷한 개념의 절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절기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안식일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소수의 권력층을 위한 절기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안식일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이요, 또 하나는 온전히 쉬는 날이다.
이러한 안식일이 초대교회를 지나면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주의 날로 지켜지게 된 것은 기독교회가 가지고 있는 재해석의 힘에 의해서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면서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도덕적 의미들을 주일의 의미에 첨가시키기 시작하였다. 2-3세기경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견해는 한가지로 통일이 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안식일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성격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안식일은 기독교인들에게 구속력을 미치지 못하였다.
사도 요한의 제자요 안디옥의 주교인 이그나티우스는 2세기 초에 마그네시아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 이상한 교리들이나 옛 우화들에 현혹되지 말라. 우리가 아직 유대의 율법에 따라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라고 말하고 나아가서 그의 독자들을 ' 고대의 질서 가운데서 자란 사람들' 이지만 '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새로운 소망을 지니게 된 ' 사람들로 구별한다(The Ante-Nicene Fathers, vol, pp. 62,63).
물론 비기독교인들인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안식일을 지켜오고 있다. 처음 몇 세기 동안은 유대계 기독교인들도 안식일을 준수하였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 유대교의 영향력은 점점 약해졌고, 특히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에 거의 영향력을 상실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유대교가 기독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은 거의 없다.
안식일은 인간을 위하여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일도 인간편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모든 의무와 속박에서 쉬게 하기 위한 주일이 형식적인 예배와 과중한 일들로 인하여 부담으로 다가오고 즐거움이 없다면 2천년전에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책망을 당한 바리새인들과 우리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안식일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의 날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살펴보았다. 주일의 기원은 안식일에 있다. 초대교회의 사람들이 주일이라는 예수님의 부활한 날에 의미를 부여하여 주일로 삼았지만 이것은 유대교의 전통에 의한 것이다. 현재, 우리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이 옛날의 안식일과 같이 형식적으로 변하였다면 예수님은 분면히 오늘의 선지자들과 선각자들을 통하여 우리들을 책망하시고 책망하실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들의 주일이 형식적이고 제도적으로 변질되었다 한다. 예배에서 오는 긴박한 말씀의 경험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
예수님의 안식일 논쟁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은 2천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다는 것을. 누구를 위한 주일인가? 개인의 위안을 위한 주일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분의 창조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한 주일인가? 만약 예수님이 이시대에 다시 찾아 오셔서 우리들의 주일 예배를 본다면 분명히 말씀하실 것이다. " 주일이라는 제도를 위하여 일 하지 말고 주일을 통하여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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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9.26
  • 저작시기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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