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오리겐주의와 좌파오리겐주의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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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론

본 론
1. 아리우스
2. 아다나시우스
3. 아리안 논쟁
1)니케아 회의(A.D.325)
2)콘스탄티노플 회의(381)

결 론

본문내용

아파를 지지하고 아다나시우스를 비롯한 니케아파 지도자들 역시 불굴의 정신으로 아리우스파와 투쟁했던 반면, 아리우스파는 약간의 미묘한 차이점 때문에 분열했던 것이 승패의 원인이 되었다.
둘째, 니케아 신조를 지지하는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 세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활약이다. 373년 아다나시우스가 죽은 이후, 가이사랴의 바실(Basil the Great), 나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가 그의 뒤를 이어 니케아 신조파의 지도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니케아 신조를 오리겐의 신학의 의미로 해석했다. 그들은 본체(hypotasis)라는 용어를 본질과 위격(prosopon)의 동의어로 사용하는데 오해의 원인이 있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그들은 삼위 하나님의 통일성과 구별성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제시하는 것을 자신들의 과제로 삼았다. 그들은 본질과 본체의 개념을 구별했다. 그리고 본체(hypotasis)란 용어를 아버지의 아들의 개별적인 인격적 존재(personnal subsistence)를 지칭하는 경우에만 사용하고 하나님의 본질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본질(ousia)이란 말은 모든 개체들이 공유하고 있는 본질을 나타내는데 사용했다.
. Ibid., pp.294∼295.
그들은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 사이에서 동요하는 유사 아리우스주의 감독들을 설득하여 동방교회가 니케아 신앙 노선 위에 서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셋째, 니케아 신조를 지지하는 데오도시우스가 동 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것이다. 그는 콘스탄틴 이래 동 로마에서 처음으로 니케아 신조를 지지한 황제였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자인 콘스탄틴노플 총주교 데모필루스에게 니케아교리를 따르든가 콘스탄틴노플을 떠나든가 양자택일하라고 명령했으며,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를 총주교로 임명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아리안 감독들을 동 로마 제국으로부터 추방했다 그리고 381년 콘스탄틴노플에 제2차 세계교회회의를 소집했다. 이는 동방교회 감독들의 회의였으며 150명의 정통파 감독과 56명의 마케도니아 감독들이 참석하여 니케아 신조를 재확인하는 한편,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했다. 아다나시우스의 교리가 동방에서 정통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서방 감독들은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 회의의 결정으로 60년 이상 계속되었던 아리안 논쟁이 종식되었다.
결 론
삼위일체 논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와 의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아리우스의 신학에 대한 논쟁이었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며 시작을 가지고 있으며 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실제로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 Leith, pp.28∼29.
아리우스의 신학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인가를 제시해야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리안 논쟁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문제와 기독론에 대한 기독교 정통교리가 확립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출생된 것이지 창조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유일신 신앙을 핵심으로 하는 삼위일체론이 확립된 것이다.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지만, 위격에 있어서는 셋이다(three persons in one God head).
아리안 논쟁은 우파 오리겐주의와 좌파 오리겐주의의 대립부터 시작되었으며, 기독교가 헬라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다나시우스파가 온건하게 헬라화된 기독교 신학을 대변했다면, 아리우스파는 극단적으로 헬라화된 입장을 대변했다.
. Gonzalez, pp.297∼298.
아리안 논쟁의 전개 과정은 아다나시우스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다나시우스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논쟁의 중심에 뛰어들어 정통 교리를 지키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다섯 차례에 걸친 추방과 유배에도 불구하고, 다수파의 압력과 회유에 굴하지 않았던 그의 열정과 신념이 니케아 신앙에 대한 서방교회의 일관된 지지에 힘입어 이단과의 논쟁에서 승리하게 했다.
아리안 논쟁은 삼위일체 교리가 어떻게 정립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진리가 끝내 승리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참 고 도 서>
1. [교회사] 차종순 지음. 한국장로교 출판사,1993. 3. 10
2. [교리사] 차종순 지음. 한국장로교 출판사1994. 4. 25
3. [삼위일체론] 이종성 지음. 1991. 8. 15
4. [기독교조직신학 개론] 다니엘 L. 밀리오니 지음, 장경철 옮김. 1994.9.20
5. [고대 기독교 사상] 한 철하지음. 대한기독교서회,1982
6. [고대기독교 교리사] 켈리지음. 한국기독교 문학연구소 출판부, 1980
7. [조직신학] 루이스 벌코프 지음. 권수경, 이상원 옮김. 1991. 8. 25
8. [기독교 교리사] J.I 니이브 대한기독교서회, 1970
9. [삼위일체 그리스도론] 크리스웰 지음, 이동원 역. 1989.
10. [삼위일체론] 성(聖)아우구스티누스 지음, 김종흠 역. 1994.
11. [Creeds of the Churches] John H. Leith, John Konx Press, 1982
12. [The History of Christan Doctrines] Louis Berkhof, Baker Book House. 1981
13.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I,] Justo L. Gonzalez, Abingdon, 1981
14. Alexander. Ep,ad. Alex.
목 차 ...
서 론
본 론
1. 아리우스
2. 아다나시우스
3. 아리안 논쟁
1)니케아 회의(A.D.325)
2)콘스탄티노플 회의(381)
결 론
1995. 2학기
삼위일체 논쟁
(우파오리겐주의와 좌파오리겐주의의 대립)
과 목 : 교회사 개관
담당교수 : 차 종 순
작 성 자 : 김 대 성
학 번 : 9101083
제 출 일 : 95.11.24
호남 신학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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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2.10.02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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