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제의 생애와 개혁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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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김창제의 생애
1) 신학문과 기독교의 수용
2) 기독교청년운동가로서의 삶

3. 개혁사상의 내용
1) 유교비판론
2) 교육개혁론
3) 사회개혁론
4) 교회개혁론

4. 맺음말

본문내용

낸 것처럼 "자본주의 손에서 무산대중에게로 끌어내어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김창제는 한국기독교의 방향이 민중적으로 사회적으로 전환하는 작업이야말로 자본가를 위한 종교에서 민중을 위한 종교로 바뀌는 실제적 방법임을 천명하였다. 그는 이것이 실제적으로 실천되지 못할 경우 기독교의 시대적 가치조차 상실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였다.
또한 김창제는 지금까지의 기독교 문화운동이 소부르주아지 이상의 계급에 국한된 것으로 민중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음을 비판하고, 이제부터의 '기독교 문화운동'은 민중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민중을 위한 전도·교육·의료 기관이 확충되어야 하며, 학문·예술· 도덕·정치·경제 각 방면에 걸쳐 기독교의 정신을 불어넣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문화운동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기독교는 어떤 계급의 사유물이 아니라 민중의 소유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한국기독교가 교회당의 건축이나 교역자의 태도, 교회 경영방식 등이 더욱 '사회주의적 교회'로 전환되어야만 민중을 위한 종교로서 실제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요컨대, 1920∼30년대 한국기독교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김창제는 한국기독교의 위기를 물리적 위기인 동시에 사상적·종교적 위기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같은 위기 속에서 그는 '고난받는 민중들'을 위해 예수가 희생되었으며, 이러한 예수의 희생 위에 민중들로부터 초기 기독교가 시작되었음을 지적하여 새롭게 '민중'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한국기독교가 자본가와 권력가가 포함된 상층계급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민중을 중심으로 하며, 민중을 위한 '민중의 종교'로 그 성격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역설하였던 것이다.
4. 맺음말
필자는 이제까지 김창제의 생애와 활동, 그리고 사상의 특징을 1920년대와 30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생애와 사상적 특징을 통해 그가 지향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첫째로 김창제의 개혁사상은 1920년대 이래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통치'의 식민지 지배정책인 분열·회유정책과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운동 및 일반 사회여론의 반기독교적 분위기, 이와 더불어 사회·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한국 사회와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 가운데 형성된 것이었다. 또한 그러한 위기적 상황에서 청년의 교육문제와 기독교의 위기를 물리적 위기인 동시에 사상적·종교적 위기로 인식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둘째로 김창제의 사상은 유교의 비판을 통해 그의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를 맹종하고 동양의 정신적 구조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유교를 무조건적으로 배격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유교의 본질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유교의 대(對) 사회적 역할에 대해 비판하였다. 이는 기독교가 당시의 한국 사회와 개인의 변화에 유교보다는 월등하게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셋째로 당시 교육의 문제가 인간의 덕성과 영성을 개발시키고 이를 양성하기보다 지식에 편중된 편지적 교육에 있다고 파악하고, 교육에서 종교적 인식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는 '삼육주의'라는 기독교적인 독특한 관점을 확립하여 유물론적 자본주의 관점과 유심론적 관념주의 양자를 다 비판하면서 이 양자가 결합되어 있는 기독교 신이상주의론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지식과 행위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를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는 교육개혁론이었다.
넷째로 그는 사회주의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으로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 또한 날카롭게 지적하여 독특한 사회개혁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사회주의의 건설 방법으로 폭력혁명에 의한 사회개혁에 반대하였으며, 사회주의자들의 무신론적인 반종교적 인식론과 태도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한국기독교의 자기 성찰의 계기로 삼았으며, 나아가 사회주의 사상의 극복을 주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김창제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기독교의 정신과는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반기독교적'이라고 평가하고 기독교를 가진 자를 위한 종교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자를 비판하면서 그는 사회개혁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는 사회를 개혁하기 전에 자신부터 먼저 개혁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사회의 구조나 제도·형식 등을 개혁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개혁 이전에 개인이 먼저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개인과 사회를 개혁함에 있어서 한국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사회개혁'임을 강조하였다.
끝으로 김창제는 한국기독교 갱신운동의 차원에서 민중종교론을 주창하였다. 그는 1920∼30년대 한국기독교가 민중을 소외시킨 채 자본주의화, 물질화, 부르주아지화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역사의 현장에서 새롭게 '민중'을 발견하고 한국기독교가 고난받는 민중들과 함께 하는 기독교로 전환되어야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나아가 한국기독교 성격전환의 구체적 방법으로 현실적인 교회의 제도·건물·교역자 태도·운동의 방향 등에서의 민중 중심의 교회갱신운동 실천이 성격 전환의 관건임을 지적하였다.
요컨대 김창제는 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청년계몽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또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교회의 갱생을 높이 부르짖었다. 특히 1920∼30년대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운동과 일반사회의 반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그는 글과 강연을 통해 한국기독교의 정체성 확립과 청년문제를 둘러싼 개혁론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김창제는 각종 강연회나 토론회 등에서 거침없는 논리와 웅변적 강연으로 세속적 물질만능에 물들고 사회현실에 낙담한 기독교 청년들뿐만 아니라 일반 청년들에게까지 많은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의 활동과 사상은 암울한 일제 식민지하에서도 한국의 청년들과 한국교회에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는 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 이는 오늘날 새롭게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http://user.chollian.net/~ikch0102/nm7-1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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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04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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