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봉사'의 은사인데, 이것에 속하는 것으로는 신유, 악귀 추방 등이 있다. 셋째는 '치리'의 은사로서 감독 등이 이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고난도 은사로 간주되며, 남이 모르는 사랑의 행위, 기술적 봉사, 결혼, 순결 등도 은사로 열거된다. 주님에 의해 부름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은혜의 분 량대로 은사를 가지고 있다(롬 12:3; 고전 7:7).
이처럼 다양한 은사의 척도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주님 안에서 주님을 위하는 행동, 즉 그리스도인의 순종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지 않은 은사는 광신주의에 빠진다. 모든 은사들은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에 순종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다.
결론적으로 요약하자면, 교회 직무는 항상 역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은사의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그런 가운데서도 긴장과 대립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치는 항상 종말론적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주의 음성을 새롭게 들어야 하며, 신앙 속에서 직무를 올바르게 세우고 갱신하려고 노력 해야 한다. 교회는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고착된 습관이나 해묵은 전통 으로부터 항상 새롭게 탈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언제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바라보고 전진하여야 한다
(E. Kaesemann, Amt und Gemeinde im NT, Einheit und Vielfalt in der neutestamentlichen Lehre von der Kirche, in: Exegetische Versuche und Besinnungen, Goettingen, 1964).
이처럼 다양한 은사의 척도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주님 안에서 주님을 위하는 행동, 즉 그리스도인의 순종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지 않은 은사는 광신주의에 빠진다. 모든 은사들은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에 순종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다.
결론적으로 요약하자면, 교회 직무는 항상 역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은사의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그런 가운데서도 긴장과 대립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치는 항상 종말론적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주의 음성을 새롭게 들어야 하며, 신앙 속에서 직무를 올바르게 세우고 갱신하려고 노력 해야 한다. 교회는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고착된 습관이나 해묵은 전통 으로부터 항상 새롭게 탈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언제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바라보고 전진하여야 한다
(E. Kaesemann, Amt und Gemeinde im NT, Einheit und Vielfalt in der neutestamentlichen Lehre von der Kirche, in: Exegetische Versuche und Besinnungen, Goettingen,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