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보여진다.
일반적으로 '나그네'는 그가 지나가거나 거주하거나 혹은 잠시 머무는 곳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거나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구경꾼으로서 그의 필요에 의하여(하나님의 필요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인 '또다른 세계'에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이것은 자칫 현실에 대한 방관과 냉소를 유발하여 타자(他者 ; 물질, 문화, 인간을 포함하여)를 인정하지 않는 ("주변 문화에 대하여 매우 객관적인"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리하여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 서게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자신이 견지해야 할 야웨의 유일신 신앙"이 "긍정되는 동안은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의 문화 한 가운데서 감당해야 할 문화적 기능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는 주장은 그 '나그네'가 가져야 할 '정체성'을 표명한 것이다. 또한 이 주장은 '나그네'가 "야웨의 유일신 신앙"을 가진 것만으로 "주변문화"에 대하여 "문화적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인데 이 "문화적 기능"이란 "짠맛을 내는 소금으로 이방 문화 가운데 존재하면서 이방인들에게 문화적 충격과 긴장"을 안겨다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과연 '나그네'에게 배타적인 "주변 문화"가 그 '나그네'로 인하여 "문화적 충격과 긴장"을 받고 "문화창조"의 모델하우스(Model-House)로 이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주변 문화"는 '나그네'와 함께 평행선을 그리며 영원히 병존(竝存)하는 것인가? '나그네'는 좀더 능동적일 수는 없는 것인가? 문화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과연 '나그네'여야 하는가?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 : 18 - 20)
이 말씀에는 분명히 제자된 자가 해야 할 사명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책임의 문제이다. 주도권을 가진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 하셨다. 이것은 '나그네'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아가 예수가 문화 한가운데서 그토록 찾기를 원하셨던 한 마리의 잃은 양이라도 더 찾아 그를 하나님나라의 법칙에 타당하도록 그의 훼손되고 굴절되고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라는 명령이 아닌가?
'타락한 이방(異邦)'에 머물고 있던 탕자가 돌이켜(메타노이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품에 안기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 있는 곳, 그 나라를 예수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주변 문화"에 누룩처럼 번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문화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文化神學徒의 진실된 자세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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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나그네'는 그가 지나가거나 거주하거나 혹은 잠시 머무는 곳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거나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구경꾼으로서 그의 필요에 의하여(하나님의 필요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인 '또다른 세계'에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이것은 자칫 현실에 대한 방관과 냉소를 유발하여 타자(他者 ; 물질, 문화, 인간을 포함하여)를 인정하지 않는 ("주변 문화에 대하여 매우 객관적인"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리하여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 서게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자신이 견지해야 할 야웨의 유일신 신앙"이 "긍정되는 동안은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의 문화 한 가운데서 감당해야 할 문화적 기능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는 주장은 그 '나그네'가 가져야 할 '정체성'을 표명한 것이다. 또한 이 주장은 '나그네'가 "야웨의 유일신 신앙"을 가진 것만으로 "주변문화"에 대하여 "문화적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인데 이 "문화적 기능"이란 "짠맛을 내는 소금으로 이방 문화 가운데 존재하면서 이방인들에게 문화적 충격과 긴장"을 안겨다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과연 '나그네'에게 배타적인 "주변 문화"가 그 '나그네'로 인하여 "문화적 충격과 긴장"을 받고 "문화창조"의 모델하우스(Model-House)로 이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주변 문화"는 '나그네'와 함께 평행선을 그리며 영원히 병존(竝存)하는 것인가? '나그네'는 좀더 능동적일 수는 없는 것인가? 문화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과연 '나그네'여야 하는가?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 : 18 - 20)
이 말씀에는 분명히 제자된 자가 해야 할 사명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책임의 문제이다. 주도권을 가진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 하셨다. 이것은 '나그네'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아가 예수가 문화 한가운데서 그토록 찾기를 원하셨던 한 마리의 잃은 양이라도 더 찾아 그를 하나님나라의 법칙에 타당하도록 그의 훼손되고 굴절되고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라는 명령이 아닌가?
'타락한 이방(異邦)'에 머물고 있던 탕자가 돌이켜(메타노이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품에 안기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 있는 곳, 그 나라를 예수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주변 문화"에 누룩처럼 번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문화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文化神學徒의 진실된 자세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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