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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에 반대하고 수양회와 세미나를 통하여 교인들을 훈련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때 그는 틀의 재구성을 위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앨리슨의 저항적인 반응에 대응하려는 마르다의 노력은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앨리슨의 지배욕은 마르다와 양립할 수 없는 앨리슨의 교회의 비전과 교회에서의 역할을 반영하고 있다. 그 결과로 마르다는 앨리슨의 주장을 묵묵히 따르거나 아니면 이 정체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하여 앨리슨의 저항뒤에서 노력할 수도 있다. 이것에 실패하면 마르다는 앨리슨의 저항을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성찰하는 지도자에게 하나의 자원으로서 반응의 중요성은 명백하다. 그것은 목사의 지도력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지도자의 권위를 손상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지도자의 독주를 버리게 만들고 상호적이요 상호의 존적인 관계에서 실천의 틀을 재구성하게 도와준다.
지도력의 요소들의 공동작용
성찰적인 지도자가 자기의 실천을 구조화하는데 필요한 자원들을 조금 장황하게 소개하였는데 혹자는 어느 쪽 발을 먼저 움직일까 멈추어 생각하다가 아주 움직이지 못하게 된 속담에 나오는 지네와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는 실천의 구조화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는 어디에 있는가하고 생각할 것이다. 본 장을 마무리지으면서 지금의 문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다만 앞장에서 언급한 프락시스에 기초한 실천성찰의 과정을 다시 한번 기억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본 장에 논하는 자원들을 생각하면서 앞장을 다시 한번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짧게 그 과정을 대충 요약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자기의 실천을 구조화하는 최선의 한가지 길은 없지만-만일 있었다면 기술적 합리성 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하나의 메타방법론, 즉 실천의 해석학이 있다. 우리는 의미를 해석하든지, 공동체를 형성하든지, 또는 공적교역능력을 향상하든지 간에 이 방법론을 활용할 수 있다. 성찰적인 대화를 하는 동안에 우리는 그 잇슈와 그 잇슈에서 우리의 역할구조를 만든다; 이것인가 아니면 저것인가? 우리는 또한 그 상황의 역동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이 요소가 중요한가 아니면 저 요소가 중요한가 저울질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능성있는 대응책들을 시험하면서 그 상황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해결책이 발견될 때가지 계속한다. 전 과정에서 앞서 설명한 자원들, 전방자원들과 후방자원들을 그 가운데 가져온다. 명시적이라기 보다는 암시적인 자원인 배경자원들이 그 잇슈를 최초로 구조화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하는데 특별히 중요하다. 배경자원들은 또한 어떤 전방자원들을 사용해야 할 것인지 또는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전방자원들은 그 상황의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우리에게 열려진 가능한 대응책들을 알려준다. 이 전체 성찰적인 대화는 일종의 계획적인 사고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당면한 상황에 적절한 대응책을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심사숙고하여야할 것은 한가지 일만이 아니다. 상호작용하고 있는 요소들과 자원들도 심사숙고하고 저울질하여야만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이 장면 가운데서 어디에 있을까? 그 대답은 실천성찰의 어려운 훈련을 피할 수 있게 해주거나 모든 다른 방법이 다 실패했을 때에 나타나는 마술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또는 우리가 실천성찰의 과정을 다 끝낸 후에 뒷처리로서 또는 일종의 하나님의 보증으로서 성령께 돌아서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단계에서 성령의 질문을 제기하므로서 나는 그러한 비판을 받기 꼭 알맞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주제를 마지막까지 남겨둔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정기적인 기도와 묵상훈련은 그리스도인 삶에 결정적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것들은 우리의 교역의 방향을 가르쳐주는 비전이나 하비투스를 세우는데 필수적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실천성찰을 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식별을 하는데도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실천성찰과정은 기도와 명상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계획적으로 사고하는 실천과 성찰은 그 자체가 일종의 기도로서, 우리의 대응책을 구성하기 위하여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들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게 우리 자신을 열어준다. 우리가 실천성찰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의지를 강제로 주입시키려하지 않고 상호의존적으로 거기에 참여하여 충실한 대응책을 찾아가는 것도 일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교회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확실히 보장하려고 노력하며 예수님의 교역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고 힘쓰는 그 전 과정은 일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장에서 제시한 일반적인 기준 자체가 그것을 시험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우리의 실천은 사람들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하여 그들에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것인가? 그 실천은 용서와 상호성과 관심에 기초한 공동체를 양성하고 있는 것인가? 그 실천은 교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배양해주는 것인가? 내가 믿기로는 실천의 구체적인 현장을 이 세 가지 중에 한 두 가지에는 직접적으로 목표를 두지 않고 어느 한 가지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이 세 가지 모두와 근본적인 연결이 있어야한다. 이것들은 내가 주장한 근본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은 이 세 가지의 변형이라고 할 것이다.
실천성찰의 과정은 쉽게 않다. 그것은 훈련과 고된 노력을 요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우리가 구성한 대응책들은 항상 완전하지 못하다. 바울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본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지금은 "부분적으로"알 뿐이다. 그러나 바울은 동시에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신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성찰적인 대화가운데 임재하여,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고, 우리에게 가용한 자원들을 얻을 수 있게 하며, 반응을 일으키고, 대응책을 세우고자 하는 우리들을 인도하여, 기독교의 이야기에 충실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실천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도우신다.
지도력의 요소들의 공동작용
성찰적인 지도자가 자기의 실천을 구조화하는데 필요한 자원들을 조금 장황하게 소개하였는데 혹자는 어느 쪽 발을 먼저 움직일까 멈추어 생각하다가 아주 움직이지 못하게 된 속담에 나오는 지네와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는 실천의 구조화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는 어디에 있는가하고 생각할 것이다. 본 장을 마무리지으면서 지금의 문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다만 앞장에서 언급한 프락시스에 기초한 실천성찰의 과정을 다시 한번 기억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본 장에 논하는 자원들을 생각하면서 앞장을 다시 한번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짧게 그 과정을 대충 요약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자기의 실천을 구조화하는 최선의 한가지 길은 없지만-만일 있었다면 기술적 합리성 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하나의 메타방법론, 즉 실천의 해석학이 있다. 우리는 의미를 해석하든지, 공동체를 형성하든지, 또는 공적교역능력을 향상하든지 간에 이 방법론을 활용할 수 있다. 성찰적인 대화를 하는 동안에 우리는 그 잇슈와 그 잇슈에서 우리의 역할구조를 만든다; 이것인가 아니면 저것인가? 우리는 또한 그 상황의 역동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이 요소가 중요한가 아니면 저 요소가 중요한가 저울질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능성있는 대응책들을 시험하면서 그 상황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해결책이 발견될 때가지 계속한다. 전 과정에서 앞서 설명한 자원들, 전방자원들과 후방자원들을 그 가운데 가져온다. 명시적이라기 보다는 암시적인 자원인 배경자원들이 그 잇슈를 최초로 구조화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하는데 특별히 중요하다. 배경자원들은 또한 어떤 전방자원들을 사용해야 할 것인지 또는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전방자원들은 그 상황의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우리에게 열려진 가능한 대응책들을 알려준다. 이 전체 성찰적인 대화는 일종의 계획적인 사고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당면한 상황에 적절한 대응책을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심사숙고하여야할 것은 한가지 일만이 아니다. 상호작용하고 있는 요소들과 자원들도 심사숙고하고 저울질하여야만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이 장면 가운데서 어디에 있을까? 그 대답은 실천성찰의 어려운 훈련을 피할 수 있게 해주거나 모든 다른 방법이 다 실패했을 때에 나타나는 마술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또는 우리가 실천성찰의 과정을 다 끝낸 후에 뒷처리로서 또는 일종의 하나님의 보증으로서 성령께 돌아서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단계에서 성령의 질문을 제기하므로서 나는 그러한 비판을 받기 꼭 알맞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주제를 마지막까지 남겨둔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정기적인 기도와 묵상훈련은 그리스도인 삶에 결정적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것들은 우리의 교역의 방향을 가르쳐주는 비전이나 하비투스를 세우는데 필수적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실천성찰을 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식별을 하는데도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실천성찰과정은 기도와 명상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계획적으로 사고하는 실천과 성찰은 그 자체가 일종의 기도로서, 우리의 대응책을 구성하기 위하여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들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게 우리 자신을 열어준다. 우리가 실천성찰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의지를 강제로 주입시키려하지 않고 상호의존적으로 거기에 참여하여 충실한 대응책을 찾아가는 것도 일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교회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확실히 보장하려고 노력하며 예수님의 교역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고 힘쓰는 그 전 과정은 일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장에서 제시한 일반적인 기준 자체가 그것을 시험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우리의 실천은 사람들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하여 그들에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것인가? 그 실천은 용서와 상호성과 관심에 기초한 공동체를 양성하고 있는 것인가? 그 실천은 교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배양해주는 것인가? 내가 믿기로는 실천의 구체적인 현장을 이 세 가지 중에 한 두 가지에는 직접적으로 목표를 두지 않고 어느 한 가지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이 세 가지 모두와 근본적인 연결이 있어야한다. 이것들은 내가 주장한 근본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은 이 세 가지의 변형이라고 할 것이다.
실천성찰의 과정은 쉽게 않다. 그것은 훈련과 고된 노력을 요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우리가 구성한 대응책들은 항상 완전하지 못하다. 바울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본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지금은 "부분적으로"알 뿐이다. 그러나 바울은 동시에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신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성찰적인 대화가운데 임재하여,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고, 우리에게 가용한 자원들을 얻을 수 있게 하며, 반응을 일으키고, 대응책을 세우고자 하는 우리들을 인도하여, 기독교의 이야기에 충실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실천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도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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