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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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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전도의 유형
1. 십자군전도
2. 침투전도
3. 개인전도

Ⅱ. 전도의 기능

Ⅲ. 전도여행의 의의

Ⅳ. 바울의 전도여행
1. 제1차 전도여행(행 13:1- 14:28)
2. 제2차 전도여행(행 15:22-18:22)
3. 제3차 전도여행(행 18:23-21:17)

Ⅴ. 미국 선교사의 전도여행

Ⅵ. 전도여행과 선교지 분담 정책

참고문헌

본문내용

Tate)목사가 전주지방을 찾아가 전도하였으며 1894년에는 레이놀드와 드루(A.D.Drew) 의 두 목사가 전라도 전역에 걸친 전도여행을 수행하였다. 이리하여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한국 주재 선교사들은 전국 각지에 걸쳐 답사하는 큰 작업을 일단 완료하였다.
이 시기에 선교사들이 지방을 여행할 때에는 외무아문에서 발급하는 호조를 소지하였다. 이는 중앙정부에서 지방 관리에게 알리는 일종의 지시서와 같은 것으로 외국인 선교사에게 숙소와 환전 그리고 신변을 보호하는 편의를 제공하라는 내용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조치가선교사들의 전도여행을 위하여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호신용으로 권총을 휴대하거나(The Church at Home and Alroad for August, 1893,P 106) 한국군인을 대동하기도 하였다.(J.S.Grale,Korean Sketches,P.19).이와 같이 한국에서 프로테스탄트가 정부로부터 국가적인 비호를 받았다는 사실은 카톨릭 교회가 조선왕조 시대에 당한 국가적인 박해와 대조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선교사들은 지방 주민들과의 통역을 위하여 한국어 교사와 길 안내인을 동행하였다. 여행장비는 복음서와 전도지외에도 통조림과 침구, 의약품 그리고 여비로 사용될 돈 등을 휴대하였다. 당시의 통화는 무겁고 부피가 있는 엽전이어서 이러한 것들을 운반하기 위하여 일꾼을 별도로 고용해야하는 불편이 뒤따랐다.
그런고로 선교사의 지방 행차는 인마부대의 출동과 같은 진풍경이었다. 점심때 또는 저녁때에 행차가 멈춰지는 주막 앞에는 양인들괴 기이한 행려장비를 구경하기 위하여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선교사들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촌락민들에게 복음서와 의약품을 나눠주면서 전도의성과를 올렸다.
Ⅵ. 전도여행과 선교지 분담 정책
선교사들의 문화와 교육 및 의료사업 활동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전도활동과 교회 정책은 여러 가지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장로교의 특징적 선교정책이었던 선교지 분할은 지역 감정의 골을 깊게 하고 한국 교회의 지방색을 더욱 짙게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19세기 선교는 열강의 식민지 분할 및 확장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유럽 선교사들은 대체로 자기 나라가 개척한 식민지에서 활동했으므로 선교지 분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루어진 선교지 분할 정책은 이익에 따라 지역을 나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선교사들은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예의를 지키며 지역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분담이 적합하다.
1893년 장로교 공의회는 소속이 다른 선교사들이 불필요하게 경쟁을 하거나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수고를 덜자는 취지에서, 또 한국에 하나의 장로교를 세워 함께 선교하기 위해 선교지역을 나누어 담당키로 했다. 그래서 북장로교 선교회는 관서지방, 캐나다 선교회는 함경도 지방, 호주 선교회는 영남지방, 남장로교 선교회는 호남지방을 각각 담당했다. 또 미국 북장로교와 북감리교 선교회도 선교지 분담을 합의했다.
(1)인구 5천이 넘는 도시, 개항장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된 곳은 예외로 한다.
(2)인구 5천 미만인 지역은 선교사가 1년에 2~4차례씩 방문하는 전도소를 두며, 교인들이 정기적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곳에는 다른 선교회가 들어가지 않는다.
(3)6개월 간 기능이 정지되면 자유롭게 그 지역에 들어가 전도할 수 있다.
장로교 내부에서, 또 장로교와 감리교 간에 이러한 분담이 가능했던 이유는 선교사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복음전도자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또 장로교나 감리교나 기존에 교구제도에 익숙했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했다. 어쨌든 초기 한국 선교회 교파 상호간의 선교지 분담 정책은 협력선교의 좋은 예가 된다. 수많은 교단과 교파가 분열하고 개교회가 어지럽게 경쟁하는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 역사를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영한(1997), 포스트모던시대의 기독교대학, 크리스찬라이프, 통권343권
마리아 해리스 저, 고용수 역(1997), 교육목회 커리큘럼,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박용우(2000), 기독교 채플을 통한 선교, 대학과 선교, 한국 기독교대학교목회
박근원 역(1979), 교회개발론, 서울 : 대한기독교 출판사
Barclay, William(1989), 바울의 생애와 선교, 서울 : 종로서적
Goodspeed, E. J, 조성헌 역(1993), 바울, 서울 : 다산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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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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