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는 말
2. 사전에서 말하는 `직업`의 뜻
3. `직업`을 뜻하는 구약 성경 히브리 낱말 - <마아새>와 <마믈라카>
4.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직업
4.1. 목축업과 농업
4.2. 수공업, 기술자
4.3. 상업
4.4. 공무원, 공직자, 관리
4.5. 종교인
4.6. 기타
5. 직업 활동에 대한 구약 성경의 가르침
5.1. 농업의 중요성, 노동의 영성
5.2. 직업과 신분 또는 경제력의 관계
5.3. 직업 활동과 하나님의 영
5.4. 직업 활동과 지혜
5.5. 직업 활동의 사회적 영성
6. 나오는 말
2. 사전에서 말하는 `직업`의 뜻
3. `직업`을 뜻하는 구약 성경 히브리 낱말 - <마아새>와 <마믈라카>
4.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직업
4.1. 목축업과 농업
4.2. 수공업, 기술자
4.3. 상업
4.4. 공무원, 공직자, 관리
4.5. 종교인
4.6. 기타
5. 직업 활동에 대한 구약 성경의 가르침
5.1. 농업의 중요성, 노동의 영성
5.2. 직업과 신분 또는 경제력의 관계
5.3. 직업 활동과 하나님의 영
5.4. 직업 활동과 지혜
5.5. 직업 활동의 사회적 영성
6. 나오는 말
본문내용
없다고 해야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기독교인들은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나라를 살려 주십사고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드리는 동시에, 각자가 할 수 있는 대로 잘못을 고쳐 나가도록 서로 격려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직장에서 성실히 자기 직분을 다하는 동시에, 내 직종을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구원을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아 일할 줄 아는 마음 가짐을 뜻합니다. 이를 요즈음 유행하는 '영성'이라는 낱말과 관련시켜 표현한다면,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사회적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라 하는 남한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교회가 이 사회적 영성을 배양하는 데 그리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구약 성경의 총체적인 인간관에 따른다면, 본디 개인적 영성과 사회적 영성을 구별한다는 것이 잘못입니다. 올바른 개인적 영성은 반드시 사회적 영성을 포함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간 사회적 영성에 대해 강조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회가 성경의 본 정신을 거슬러 무리하게 개인과 사회를 구별하고 기독교 신앙을 개인이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인정받고 출세하는 데에 머물러 버리도록 했기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덧붙여 기억할 것은, 구약 성경의 곳곳에서 경제 통치 사법 사회 생활의 정의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테면, 앞서 다룬 바 있는 다윗의 관리 명단의 첫머리인 사무엘하 8장15절(=대상18:14)에서는 다윗이 '자기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했다고 함으로써, 그 뒤에 나오는 공직자들도 바로 이런 정신을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기독교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도 '공의 의'를 행하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권력이, 자기가 속한 정당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있는 현실이 아닙니까? 기독교 국회의원, 관료 가운데서 하나님 때문에 동료 의원들이나 관료들이나 상급자들과 갈등을 빚고 자리를 잃고 심지어는 옥에 가는 등 박해를 받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됩니까? 고위 관료들이 출석하는 교회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습니까? 이 지위 높은 교인들에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또한 오늘 우리 기독교회와 교역자들은, 약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정의로운 경제 질서
) 이에 대해서는 곧 졸저 『예언과 목회 [VI]』[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근간]에 실릴 글, '구약의 경제 윤리'를 참고하십시오. 그 앞 부분은 『구약 논단』 제6호(1999.6), 5-26쪽에 들어 있습니다.
와 사법 질서를 세우라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습니까? 기독교 기업가들에게 올바른 기독교 경제 윤리를, 기독교 법조인들에게 올바른 기독교 사법관을 실천하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결국 교회는 그만두고서라도 이 나라 이 사회를 망치고 있는 장본인들은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이요, 그런 기독교인들은 배출하고 있는 우리 교역자들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정의롭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영성을 가르치지도 배양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린다면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까요?
6. 나오는 말
아직 농경 목축업 같은 일차 산업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구약 시대와 상공업 및 서비스 사업, 곧 이삼차 산업이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는 이 시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직업에 대해 구약 본문이 다루는 내용을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곧바로 적용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때와 곳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사람들이 일하면서 사는 모습과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와 그에 대한 교훈이 비슷한 점도 적지 않고, 온누리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이제 앞에서 살펴 본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서 오늘 기독교인들의 직장 활동에 대한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간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의 문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농업 노동이 창조 질서에서 우리 사람의 본질에 속한다는 사실은 외면할 수 없다고 할 때, 기독교인들은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 몸으로 일하는 것, 특히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농업을 귀히 여길 줄 알고, 스스로 몸을 써서 일하기를 힘쓸 뿐만 아니라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농민들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곧 온전한 영성의 사람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는 데 노동의 영성이 빠져서 안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경제력을 직장 활동에서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3) 성령님은 일상의 직장 활동 가운데서도 기독교인들을 이끌어 가시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더 나은 전문 능력으로써 이웃을 살리고 마침내는 온누리가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되도록 동료 기독교 직장인들과 협력하며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직장 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 능력의 발휘로도 나타납니다.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각자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이 무엇인지 잘 분별할 뿐만 아니라, 나와는 다른 능력을 받은 다른 사람들도 인정할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합니다.
(5) 기독교인들이 각 자의 직장에서 맡은 바 일을 올바르게 해 나가지 않으면 공동체를 망치는 무서운 죄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 나갈 뿐만 아니라, 깨닫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공동체가 어그러지고 무너져 갈 때, 그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여 힘자라는 대로 바루어 나가고, 공동체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영성이 기독교인들의 직장 활동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귀 기울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라 하는 남한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교회가 이 사회적 영성을 배양하는 데 그리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구약 성경의 총체적인 인간관에 따른다면, 본디 개인적 영성과 사회적 영성을 구별한다는 것이 잘못입니다. 올바른 개인적 영성은 반드시 사회적 영성을 포함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간 사회적 영성에 대해 강조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회가 성경의 본 정신을 거슬러 무리하게 개인과 사회를 구별하고 기독교 신앙을 개인이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인정받고 출세하는 데에 머물러 버리도록 했기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덧붙여 기억할 것은, 구약 성경의 곳곳에서 경제 통치 사법 사회 생활의 정의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테면, 앞서 다룬 바 있는 다윗의 관리 명단의 첫머리인 사무엘하 8장15절(=대상18:14)에서는 다윗이 '자기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했다고 함으로써, 그 뒤에 나오는 공직자들도 바로 이런 정신을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기독교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도 '공의 의'를 행하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권력이, 자기가 속한 정당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있는 현실이 아닙니까? 기독교 국회의원, 관료 가운데서 하나님 때문에 동료 의원들이나 관료들이나 상급자들과 갈등을 빚고 자리를 잃고 심지어는 옥에 가는 등 박해를 받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됩니까? 고위 관료들이 출석하는 교회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습니까? 이 지위 높은 교인들에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또한 오늘 우리 기독교회와 교역자들은, 약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정의로운 경제 질서
) 이에 대해서는 곧 졸저 『예언과 목회 [VI]』[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근간]에 실릴 글, '구약의 경제 윤리'를 참고하십시오. 그 앞 부분은 『구약 논단』 제6호(1999.6), 5-26쪽에 들어 있습니다.
와 사법 질서를 세우라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습니까? 기독교 기업가들에게 올바른 기독교 경제 윤리를, 기독교 법조인들에게 올바른 기독교 사법관을 실천하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결국 교회는 그만두고서라도 이 나라 이 사회를 망치고 있는 장본인들은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이요, 그런 기독교인들은 배출하고 있는 우리 교역자들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정의롭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영성을 가르치지도 배양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린다면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까요?
6. 나오는 말
아직 농경 목축업 같은 일차 산업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구약 시대와 상공업 및 서비스 사업, 곧 이삼차 산업이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는 이 시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직업에 대해 구약 본문이 다루는 내용을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곧바로 적용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때와 곳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사람들이 일하면서 사는 모습과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와 그에 대한 교훈이 비슷한 점도 적지 않고, 온누리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이제 앞에서 살펴 본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서 오늘 기독교인들의 직장 활동에 대한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간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의 문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농업 노동이 창조 질서에서 우리 사람의 본질에 속한다는 사실은 외면할 수 없다고 할 때, 기독교인들은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 몸으로 일하는 것, 특히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농업을 귀히 여길 줄 알고, 스스로 몸을 써서 일하기를 힘쓸 뿐만 아니라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농민들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곧 온전한 영성의 사람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는 데 노동의 영성이 빠져서 안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경제력을 직장 활동에서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3) 성령님은 일상의 직장 활동 가운데서도 기독교인들을 이끌어 가시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더 나은 전문 능력으로써 이웃을 살리고 마침내는 온누리가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되도록 동료 기독교 직장인들과 협력하며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직장 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 능력의 발휘로도 나타납니다.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각자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이 무엇인지 잘 분별할 뿐만 아니라, 나와는 다른 능력을 받은 다른 사람들도 인정할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합니다.
(5) 기독교인들이 각 자의 직장에서 맡은 바 일을 올바르게 해 나가지 않으면 공동체를 망치는 무서운 죄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 나갈 뿐만 아니라, 깨닫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공동체가 어그러지고 무너져 갈 때, 그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여 힘자라는 대로 바루어 나가고, 공동체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영성이 기독교인들의 직장 활동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귀 기울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