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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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 21세기의 화두 생명공학
2. 인간게놈 프로젝트
3. 유전자 검사와 출생 상담
4. 사생활 침해와 유전자 차별

본문내용

하였듯이, 유전공학은 분명 신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유전병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유전공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고통 가운데 일생을 보내어야 했으나 이제는 그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행한 취임설교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 1절을 인용하면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중 하나가 질병 치유임을 밝히고 있으며(누가복음 4:18), 예수님의 3대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 역시 질병의 치유이다. 질병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자유함을 얻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근본 의도를 유전자 치료는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무조건 유전공학의 발전이나 유전자 치료에 반대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즉,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놀이를 할 수 있는가 혹은 자연을 조작할 수 있는가의 물음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합당한 한계가 무엇이며, 왜 그렇게 하고자 하는가의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해 필자는 어디까지나 치료를 목적으로 한 유전자 치료에 찬성하는 것이지 우생학적인 목적을 위한 유전자 치료까지 찬성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즉, 유전공학 자체는 하나의 선한 '구조'이며, 치료를 목적으로 한 유전자 치료 역시 '선한 방향'인 반면에, 우생학적인 목적을 위한 유전자 치료는 '악한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우생학적 목적의 유전자 치료는 그 이면에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이브' 내지 '바벨탑'의 교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하는 자가 있는가? 창세기 창조 기사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에게 적합한 유전적 독자성을 지니도록 우리를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비정상 유전자의 치료가 아닌 정상 유전자를 바꾸는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적절성에서 벗어난 우생학적인 유전자 치료는 인간의 상한선을 넘어서려는 시도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적 결함으로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외면한 채 우생학적인 유전자 치료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우생학적 유전자 치료를 시도하는 기독교인을 우리는 비난할 수 있는가? 물론 이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선 '하나님 놀이'일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교회적인 차원에서 이들의 아픔을 사랑으로 감싸안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외면한다면, 목회 윤리의 차원에서 이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유전공학의 활용이 정말로 성경적 세계관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면, 먼저 우리 기독교인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율법의 정죄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잃어버린 자'를 더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웃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성경적 세계관은 또 하나의 율법으로 약한 자를 옭아매는 족쇄가 될 것이다.
21세기, 생명공학의 시대에 윤리는 과학자로 하여금 자율성 존중 원칙과 정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성경은 하나님 놀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주권을 겸손히 인정하는 청지기직 직분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즉, 과학자는 과학의 논리에 빠져, "할 수 있으면 해도 좋다."는 명제를 하나의 규범으로 받아들인다. 이 논리에 근거하여 과학자들은 전건에 해당되는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윤리가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생명공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운명은 점점 더 과학자의 손에 의존하게 되었기 때문에, 과학자의 손이 '더러운 손'(dirty hand)이 될 때 인간과 사회는 더러워질 것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손이 '깨끗한 손'(clear hand), '윤리적인 손'(ethical hand)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과학자의 자율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대한 일이다. 그래서 1997년 유네스코 총회는 <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을 발표하면서 인간 게놈 연구와 그 응용에 따라 제기되는 윤리적ㅗ법적ㅗ사회적 문제를 평가하기 위해 각국은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또 과학정책 책임자들에게 생명윤리 교육을 시키도록 한 권장사항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미 HGP가 상당부분 진척되어 97%의 인간 유전자 지도가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이에 관한 공적 담론의 장이 부족하고 더군다나 관련 법령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공적 담론의 부족으로 인해 '윤리 지체'(ethics lag) 현상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東方禮義之國이 東方禮外之國으로 전락하고 있다. 사적 윤리와 공적 윤리 모두에 있어서 우리는 윤리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에 관한 윤리학적, 법학적 논의를 통해 관련된 법령이 제정되고 있는데 비하면 한국 현실은 학문적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문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한국 기독교인의 사적 신앙은 세계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나 공적 신앙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생명공학과 관련된 윤리 물음을 공적 신앙의 차원에서 승화시켜 논의하게 된 것은 한국 기독교의 발전에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중지를 모으고 필요한 경우 관련 법령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프로테메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대가로 신의 가혹한 벌을 받았는데, '생명의 책'으로 알려진 인간 유전자를 해독하여 인간이 '하나님 노릇'(playing God)을 할 경우 인간에게 과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유전학자를 비롯한 생명공학자의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때이다. 윤리학적 고려 없이 게놈 연구가 이루어질 경우 '게놈'은 '개놈'이 되어 결국 우리 인간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도 있다. BT의 시대, 그 누구보다도 생명공학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그 주권을 인정하고 청지기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키워드

게놈,   성경
  • 가격2,3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2.10.11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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