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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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1)전시과체제의 붕괴
2)농장의 발달과 그 구조
@수조지집적형 농장
@사적소유지형 농장
3.결론

본문내용

거치는 동안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강 안의 수량이 풍부한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가 형성되고 있었다.
지방사회의 유력자였던 품관층이나 사료에 새로이 보이는 부호들은 고려후기의 농업기술의 개발 즉 수리사업의 확충, 우세한 축력소유를 이용한 우마구비분(牛馬廐肥糞)과 같은 시비법이나 이앙법 등의 기술발전을 이용하여 생산력 발전을 통한 소유지의 확대를 도모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소유권에 입각한 농장이야말로 중세에 있어서 사적 대토지 소유의 형태가 수조권에 기초한 형태로 이행해 가는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적 소유지형 농장의 경영형태는 어떠했을까?
권귀들에 의한 `압량위천(壓良爲賤)'이나 타인의 노비를 탈점하는 현상, 또는 농민의 노비로의 자발적인 투탁 등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 농장의 발달이라는 현상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 대토지 경영은 기본적으로 가족노동에 의거한 소농민 경영형태로 경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고려 후기 농장의 경영형태는 수조지 집적형의 농장일 경우는 주로 경작농민으로부터 조ㆍ용ㆍ조 삼세를 수취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반면에 개간ㆍ매득 등에 의해 성립된 사적 소유지형 농장은 주로 노비노동력에 의한 경영이 일반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 초기에도 이어져 최소한 16세기까지 양반사족층의 농장경영은 주로 노비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수조권분급제의 소멸과 사적 소유권의 발달이라는 역사적 추세와 나란히 하여 노동력으로서의 노비인구는 16세기까지 계속 증가추세에 있어 전체 인구에 대한 비율이 40-50%에 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시기(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있어 농장의 경영형태가 노비 신분의 노동력에 의거하고 있는 현상은 동시대의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결론>
이상으로 농장의 형성 배경, 농장의 구조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 후기 사적 대토지소유인 농장의 성격은 국가로부터 수조권을 위임받는 형식, 즉 국가권력에 의해 수조지농민에 대한 경제외적 강제를 통한 잉여생산물인 지대를 수탈하는 방식에서 노비신분이라는 경작농민에 대한 직접적인 신분적 예속과 강제를 통해 잉여생산물을 수탈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두 유형의 농장 가운데 수조지집적형 농장은 고려말 사전혁파를 통해 소멸되고 사적 소유지형 농장은 조선 전기의 농장으로 계승되게된다.
  • 가격1,3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2.10.23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7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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