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민족해방운동가에 대한 고찰
본 자료는 9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해당 자료는 9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9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릿말

II. 민족해방운동사에 있어서 민족독립운동가 연구의 필요성

III. 3·1운동과 민족운동
1. 무장항일투쟁의 민족운동가 박열

IV. 대한민국 임시정부
1. 개화파 민권운동의 지도자 이동녕
2. 신민회 조직하의 민족운동가 조성환 3. 독립투쟁의 전기마련 윤봉길

Ⅴ. 맺음말
1. 친일파의 존재양태
2. 민족해방운동가의 재평가

본문내용

없었던 것이다.
일제는 경제공항에서 탈출하기 위해 만주침략, 중국침략, 세계대전 하는 식의 15 년 전쟁으로 확산시키면서 군부파시스트정책을 강화해 나가면서 한국에 대해 민족 말살정책인 황국신민화정책을 펴고 여기게 민족개량주의자들이 대량 동원되었다.
한국인 중에서 명사다, 유지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 미국유학을 다녀왔다, 저면 한 종교인이다 하는 사람들이 제일 앞장섰다. 윤치호, 이광수, 주요한, 최남선, 양 주삼, 김활란, 모윤숙, 유진오, 백남준, 김연수, 박흥식 등 소위 민족의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 거의가 민족을 말살하려는 황국신민화운동에 앞장서 악질적인 반민족행 위를 자행하였다.
이 시기부터는 또 하나의 구조적인 친일파, 그래서 해방 이후에 중요한 권력엘 리트 역할을 하는 친일파가 형성된다. 고등문관시험이 1930년대 초반부터 치러지 는데 이 시험에 합격한 자들이 1943년까지 130명이 넘게 되고 이자들은 자유당정 권의 엘리트, 장면내각의 핵심인사가 되고 박정희정권에까지 중요한 인물로 활동 하게 되는 사람들이었다.
해방 후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선결적 과제였던 친일파 청산의 좌절은 한국 현대사의 여러 가지 유산을 남겨주었다.
일파 청산의 좌절은 민주개혁과 민족통일전선 결서의 좌절, 다름 아닌 자주적인 통일민주국가 수립의 좌절이자 동시에 분단과정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친일 파는 미군정·이승만 단정노선의 계급적 기반이자 지식과 자금과 무력을 제공한 병동부대였다. 그들은 자신의 반민족적 본질을 친미반공이데올로기로 치장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애국의 논리로 강면함으로써 분단체제를 고착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그 분단체제 속에서 일제하보다도 오히려 한 단계 더 높은 차 원의 지배세력으로 자신을 성장시켰다. 그들은 정치·경제·문화 각방면의 지도층 으로서, 권력엘리트, 경찰과 군부의 핵심으로 재조직되었고, 한국사회의 방향을 주 도해왔다.
친일파 집단은 분단 40년 동안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파쇼체제를 끊임없이 재생산했고, 근대화론에 입각해서 종속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주도해왔다.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만을 유일한 가치기준으로 삼으면서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고 민족 의 평화적 통일을 거부하는 반통일세력의 역사적 모반(母班)이었다.
친일부역재 청산문제는 단순한 묵은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민족 정기를 세우고 민족 생존을 토대로 한 가치관을 확립하고 조국을 배반한 자는 그 만한 대가를 치 르고 응징을 받는다는 교훈을 주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국제사회가 급격히 변동하고 통일문제가 현실적인 과제로 등장하는 지금, 더욱 이 다시 일본의 군사대국화, 군국주의 부활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친일파문제는 단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민족적 진로를 정하는 데 뼈아픈 교 훈을 주는 오늘의 문제일 것이다.
2 . 민족해방운동가의 재평가
항일시기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선상에는 크건 작건 여러 갈래의 반일운동이 부상되었었다.
한국사학의 과제는 이 여러 갈래의 운동이 전반적 민족해방운동에서 차지한 지 위와 역할을 올바로 갈라내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옳게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바로 반일민족해방운동에서 주류로 되는 운동을 어떤 운동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사학계는 여태까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가슴아픈 실상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그것은 일면적, 편견적 사고방식을 가진 일부 사가들이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흐름을 민족주의운동선에서만 고찰하고 모든 반일운동을 이 맥락속에 용해
) 안병직 외, 『한국근대민족운동사』돌베개, (1880), P.488
시키고 있으며 특히 20년대 중반기의 역사적 시원을 두고 주체사 상에 의해서 개척된 항일혁명투쟁은 외면하고 있는 사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민족의 해방운동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이같은 그릇된 입장은
①민족주체성의 상실을 자초, ②우리민족의 항일선열들이 이루어놓은 귀중한 업적 과 경험들을 수용하지 못하게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므로 반일민족해 방운동의 주류문제를 바르게 풀어야 할 일이 오늘의 한국사학계 앞에 중대사로 제 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민족은 자주근대화를 수행하여 민족의 근대적 실력을 튼튼히 확립해야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시기에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자주 근대화가 저지당했으며, 결국은 1910년 일제에게 식민지로 강점당하여 온갖 박해 와 탄압과 학살과 착취를 당한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한국민족은 걸출한 선구자들을 다수 낳았다. 비록 무능부패한 집권자들은 나라의 독립이 침탈당해 가는 위험한 시기에 사리사욕에만 몰두하고 외세에 야합했지만, 다수의 선구자들이 나와서 늦기 전에 나라를 자주적으로 근대 화하여 외세의 침략을 막고 조국을 세계 속에서 발전시키고자 진력하였다.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진 이후에는 수많은 독립운동 투사들과 애국적 국민들이 모 든 것을 다 바쳐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분투하였다.
오늘날 우리 한국민족이 타의에 의해 비록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고 할지라 도, 우리들이 다시 독립을 찾고 이만큼 크게 발전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선구 자들과 애국자들의 큰 희생과 가르침이 기초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본의 종속국이 되지 않고 세계 속에 자주 부강한 최선진 민주국가의 자유로운 국민이 되어 인류에게 공헌하려면, 우리의 선구자들과 애국자들의 생애 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參考文獻 ◈
.신용하,『韓國近代의 先驅者와 民族運動』, 集文堂, (1994)
.이현희,『우리나라 근대인물사』, 塞文社, (1994)
.이현희,『韓國民族運動史의 재인식』, 자작아카데미,(1994)
.이재화,『韓國近現代 민족해방운동사』, 백산서당, (1988)
.박승연,『현대민족사의 재인식』, 그 날, (1989)
.韓國日報社 編,『獨立運動家列傳』, 한국일보사, (1989)
.歷史文化硏究所 編,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 역사비평사, (1993)
.반민족문제연구소,『친일파 99인』, 돌베개, (1993)
  • 가격3,300
  • 페이지수27페이지
  • 등록일2002.11.05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048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