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모든 것은 그의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신앙이 있다면 행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질 수는 있지만, 행위라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율법이나 선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만약 그러한 것들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고 믿는다면 그는 오히려 그것들에 의하여 해를 입게 된다. 이제까지 속 사람과 그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 했다. 겉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다시 천명하겠다.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운 한에 있어서는 일하지 아니하나 그가 종인 한에 있어서는 그는 모든 일을 행한다. 인간은 자신의 영에 있어서 내면적으로 신앙에 의해 풍부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의롭게 되기 때문에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신앙과 부요는 내세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자라지 않으면 안된다. 현세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육신을 제어해야 하며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육신은 속사람과 신앙에 복종하고 순응하며 신앙에 항거하지 않고 속사람을 훼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신앙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깨끗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영혼은 모든 것 특히 자기 자신의 몸이 깨끗케 되어 모든 것이 그와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미하는 데 동참하기를 바란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며 자기 자신을 위하여는 살지 않는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더 진실하고 자유롭게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킨다. 여기서 믿음은 사랑을 통하여 참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즉 믿음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섬기는 가장 자율로운 행위, 즐거움과 사랑으로 행해지는 행위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인 자신은 신앙의 충만함과 부요함으로 만족한다. 이러한 삶의 본보기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예로 든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로 충만하시고 모든 선한 일들에 부요하셔서 자기를 의롭게 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과 고난도 필요로 하지 않으셨지만 그리스도는 이런 것들로 교만하게 되지 않으셨고 자기 자신을 우리보다 더 높이지 않으셨으며 우리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려 하지 않으셨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더라도 정당하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자기가 이 모든 것을 필요로 하시고 하나님의 본체를 전혀 가지지 안으신 것처럼 사시고 노동하시고 일하시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심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모양과 행동에 있어서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가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은 우리를 섬기시기 위한 것이었으며 또한 이러한 종의 형체로 이루신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인도 이와 같이 자신이 이웃에게 필요하고 이롭고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선한 것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 우리는 사람들의 가르침에 의하여 공로와 보답과 우리에게 속한 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모세보다 훨씬 더 엄격한 감독자로 만들어 놓았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회심시켜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약한 사람을 잠시 관용하고 완고한 사람에 대해서는 항상 저항함으로 중도를 택했다.우리가 행위들과 의식들 가운데서 행하고 살고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의 삶의 필요성과 우리의 몸을 다스리려는 노력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이런 것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이다.
두 종류의 의.1519년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받아들여져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을 맺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글은 외래적인 의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우리 자신의 고유한 의, 이 두 가지 종류의 의를 말하면서, 외래적인 첫 번째 의와 더불어 우리가 그것을 행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의가 된다고 한다.이것은 첫 째로 의와 더불어 우리가 그것을 행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의가 되고, 첫째로 육을 죽이고 자기와 관련된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은 가운데 선한 행실을 하면서 유익하게 보내는 삶의 방식이다. 둘째로 이 의는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으며, 셋째로 하나님에 대하여 유순하고 경외하는 데 있다.
두 종류의 의.1519년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받아들여져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을 맺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글은 외래적인 의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우리 자신의 고유한 의, 이 두 가지 종류의 의를 말하면서, 외래적인 첫 번째 의와 더불어 우리가 그것을 행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의가 된다고 한다.이것은 첫 째로 의와 더불어 우리가 그것을 행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의가 되고, 첫째로 육을 죽이고 자기와 관련된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은 가운데 선한 행실을 하면서 유익하게 보내는 삶의 방식이다. 둘째로 이 의는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으며, 셋째로 하나님에 대하여 유순하고 경외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