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가족전(사진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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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인간 가족전`이 만들어진 배경

2.인간 가족전의 참여작가들

본문내용

다. 그가 사진계로 돌아와 보여준 일련의 일들은
지나온 과거의 업적을 마무리한데 그 의미가 있을 뿐 그 이후의 다른 진전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프랭크의 사진세계는
사진집 <미국인들 The Americans>에 전체적인 핵심이 집약되는 것이다.
프랭크는 사진에는 감정이입의 수법을 도입하여 현실에 존재하고 보이는 것을 대상으로 무엇인가를 찍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의식세계를 대상화하였다.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내면에 깔려진 복잡하고도 아이러니한 표현을
이분법적으로 명쾌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는 없었다. 다만 자신이 느낀 그러한 감정들을 분위기로 느끼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적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일종의 개인적인 진실 추구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프랭크에 의해 영향을 받은 작가들 중에는 리 프리드랜더와 개리 위노그랜드가 있다. 이들은 둘다 현대 미국 사진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는데 둘다 그들의 작품활동에서 일찍이 프랭크의 테크닉과 미학을 채용했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 그들은
<미국인들 The Americans>의 특징으로 부터 점점 멀어지고 그 대신에 그들은 내용을 전달하는 기능을 희생하고서라도 사진적인
기능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대사진이 사회악에 대한 관심으로 부터 이동하는데 있어서 더욱 형식면에 대한 추구에
대해 도움을 주고있다.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들 The Americans>中
인간가족전을 할수있게 해주었던 매개체가 라이프지와 LOOK지였다 간단히 소개한다면...
라이프
미국의 대표적인 주간(週刊)그래프지(誌).
국적 : 미국 분야 : 그래프지 발행연도 : 1936년 발행사 : 타임사발행주기 : 월간
1936년 11월에 타임사(社) 사장 H.R.루스가 창간하였으며, 사진만이 지니는 생생한 박진감과 고도의 인쇄기술로 공전의 성공을 거두었다.
창간호는 46만 부였으나, 3개월 후에 100만 부, 3년 후에는 200만 부를 넘어섰다. 1948년에는 미국잡지 광고비 총액의 19%, 잡지
독자수의 21%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화보(畵報) 기사뿐만 아니라 W.처칠, H.S.트루먼, D.맥아더 등의 회고록을 게재하는 등,
세계의 저널리즘을 이끌었다. 1970년 850만 부라는 엄청난 부수를 자랑하였고, 1972년에 광고수입 감소로 경영난에 봉착
휴간하였으나, 1978년부터 규모를 줄이고 월간으로 복간되었다.
룩 (Look)
미국의 대표적인 사진 중심의 일반잡지.
국적 : 미국 분야 : 일반잡지 발행연도 : 1937년 발행주기 : 격주 발행발행부수 : 약 120만 부
1937년에 G.콜스가 창간하였다. 보도성을 중시한 고급지 《라이프》와는 달리, 처음부터 흥미본위의 대중잡지로 출발했으며,
맹렬한 판매작전을 전개하였다. 처음에는 월간이었으나, 곧 격주발행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진뿐만 아니라
읽을거리·문화란에서도 시각적 요소를 중시하여 성공하였으며, W.리프먼, B.러셀, E.M.헤밍웨이와 같은 일류 집필진도 동원하였다.
1970년에는 780만 부에 이르렀으나, 1971년부터 휴간, 1979년에 복간되었다. 발행부수는 약 120만 부이다.
사진사에서 '인간가족전'이 있었던 다음에는 신영상주의 사진가들이 태동을 하게된다.
로버트 프랭크, 월리엄 클라인등의 사진가 가 유명하며 월리엄 클라인은 '도시의 이방인으로 현대의 얼굴을 담은 사진 작가'
라는 별명이 있다
"스냅 촬영을 생명으로 하면서 셔터 찬스를 절대 우선주의로 했다. 때문에 초점이 맞고 안맞고, 구도나 노출의 과부족 같은
기술적인 것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즉, 대상과 사진기를 적극적으로 결부시키는 데에 그의 독자적인 영상미학이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으며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사진가의 한 사람으로 그가 활동한 영역은 사진에만 그치지 않고 그림, 조각, 무대
미술, 영화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시각적 표현을 위해서는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넘나들었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고. 클라인은 사회학도였으나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8세 때 군에 입대하여 유럽전선에 배속되었고, 중동전에 참전했다가 파리에서 제대하였다.
윌리엄 클라인이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회화 작업의 연장으로 추상적 사진을 시도했는데 나중에 이 작품들을 모아
뉴욕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결국 그는 사진가가 되었고, 사진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사진 작업에만 시종일관
매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보그>지에서 활약하는 패션 사진가이자, 영화 <지하철의 아이>에 작품이 등장할 만큼 전위적인
화가였고, 미술 디자인 잡지 <돔스>의 표지 디자인을 했고, 개인영화도 몇 편 만들었던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조각, 무대미술 등등 자기 자신과 자기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했다.
윌리엄 클라인 (William Klein, 1929~. 미국)
Cavale & Pepsi, Harlem, NY. 1954
마지막으로 인간가족전의 특징은 집단제작형식이라는 점이다. 전세계의 유명무명의 사진가들이 한가지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저마다 다른 사진들을 하나의 생명체로 구성한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디렉터시스템의 도입이라 할 수 있는데 스타이켄이 기획을
맡고, 건축가 폴 루돌프가 전시장의 설계를 하였으며, 40개의 작은 테마로 이루어진 전체의 서시를 시인 칼 샌드버그가
담당하였다. 그리고 도로디어 놀맨 여사가 명언, 잠언 또는 신화나 성서문구, 그밖에 민족마다 전승되는 속요 중에서 가려뽑은
말들을 삽입하였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거대한 영상적 생명체를 말들 수 있었던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가족전>이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준 것은 제2차세계대전후 불어닥친 인간에 대한 불신과 소외 및 회의의
소용돌이 속에서의 간절한 소망의 기도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인간가족>은 20세기에 인간이 두차례나 저지른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끝내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는 영상적인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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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1.20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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