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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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마침 그 때 수맥을 잘 짚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수맥을 짚으니 신단수 밑으로 물이 흐른다고 하면서 보여주더군요. 진짜로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바로 이 물이 신단수를 길러주는 물이었던 것입니다. 제사하는 것을 보니까 먼저 군수가 와서 공자모시는 복장으로 유세차-- 하고 시작하고 무당들은 뒤에서 기다리더군요. 그래서 하도 이것이 궁금해서 그 곳의 문화국사람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것이 거꾸로 되어있지 않은가 하구요. 먼저 무당들이 와서 단군조선부터 내려오는 오리지날 의식을 한 다음 유교의식을 하는 것이지, 군수라고 해서 앞자리를 빼앗을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 유교의식은 별로 감응이 없었습니다. 유교의식이 끝난 후 인간문화재라는 무당의 며느리가 나와서 굿을 하는데 굉장한 신바람을 느꼈습니다. 굿의 절정은 무당이 신단수의 가지를 베어 그 가지에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옷을 입히고 기쁘다고 북치고 춤추는 장면이었습니다.
옛날에는 그 신목을 모셔서 가마에 태워 여러날 걸쳐 강릉까지 갔는데, 그 중간 중간에 쉬어가는 당집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당집 몇 개가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그 신목을 트럭에 싣고 강릉에 있는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가 있는 당집으로 가서, 환인이 보낸 환웅 즉 그 나뭇가지와 합방을 시키면 그날 밤부터 강릉단오제가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온 동네가 단군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기쁨에 넘치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환웅에게 무엇을 기원할 때 준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 살펴 보겠습니다. 산신제 때 준비되는 음식은 술과 흰 떡인데, 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에서 할 때의 음식도 마찬가지로 흰떡입니다. 시루떡입니다. 그래서 구월산 삼성사가 있었던 산이 시루산입니다. 여기서 시루산은 환웅이 내려오는 신산(神山)을 말하고 신산에 바치는 떡을 시루떡이라 합니다. 백두산에서 제(祭)를 올릴 때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소머리입니다. 소머리도 백두(白頭)여야 된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합니다. 또 이러한 천제에는 주문(呪文)이 있는데 흔히 유교식, 불교식 등이 있지만, 원래의 우리 주문은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건 아마 무당들이 굿을 하는 속에 있을 겁니다. 무당들이 굿을 할 때 하는 얘기를 잘 들어보면 귀신 일만신(一萬神)의 이름을 부르는데, 아마 그 어딘가에 단군에 관한 것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백색과 옷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현재 천제를 지내는 여러 단체의 복장을 보면 가지가지 색깔을 갖추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천제복장은 색깔이 없는 백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사밥도 흰 쌀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흰 것은 신성(神性)을 얘기합니다. 한국의 민족색은 백색입니다. 백색에도 청색이나 회색 등의 약간의 색이 들어가는 것이 있지만, 그 본바탕은 백색입니다. 전체적으로, 천제의식을 하는 단군문화는 한 곳에 집약되어 있지 않고 여기저기 갈라져 있습니다. 이 갈라진 부수러기들을 모두 모아 조립하여 복원을 시켜야 합니다. 단군문화의 갈래를 더 살펴 보겠습니다. 예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군이 들어오면 무당들이 굿을 하는데, 이것은 군사제천(軍士祭天)이라 해서 병사들이 이 굿소리를 듣고 신바람을 느낍니다. 그 신바람은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할 정도의 무서운 신바람이었습니다. 그 유적이 오색약수터 근처의 한계산성에 있습니다. 봄에 잎이 나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에 있는데, 겨울에 그 곳에 들어갔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그곳에 가보면 군사제천을 할 때에 쓰던 돌인 삼신석(三神石)이 있습니다. 이 외에 경기도 양주별산대놀이가 있습니다. 이 별산대놀이는 일년에 한번 서울의 잠실롯데월드 놀이마당에서 하고 있습니다. 원래 양주별산대놀이는 마을마다 있는 신단수 앞에서 하던 놀이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무대에 곰보탈, 중탈, 양반탈 등 여러 탈들이 등장하여 갖은 방법으로 웅녀를 꼬시려고 합니다. 여기서 중탈과 양반탈은 불교와 유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탈 중 순수한 두 남녀탈이 있는데, 별로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이 놀이 중 두 남녀탈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놀이를 하기 전에 신단수 앞에 탈을 놓고 진설한 후 그 다음날 놀이를 시작합니다. 그 전에 이웃동네에서 그 탈들을 도둑질하기 위해 옵니다. 다른 탈은 문제가 없지만 웅녀와 환웅으로 추정되는 그 두 탈이 없어지면 다음날 공연을 못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온 동네가 난리가 나고 사방으로 도둑을 찾으러 다니는 그런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런 풍습은 없어졌습니다. 이 놀이의 등장인물은 처음에는 두 탈밖에 없었는데, 후에 불교와 유교로 상징되는 중탈과 양반탈이 등장하면서 등장인물이 추가가 된 것 같습니다. 즉 불교와 유교와 같은 외래문화가 우리 단군문화에 침투하여 훼방놓는 것이 이 놀이의 전체 스토리입니다.
이 양주별산대 놀이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한국 가면극의 원형인데, 위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둔다면 예전에 천제를 지낼 때 농악놀이뿐만 아니라 양주별산대 놀이와 같은 가면놀이도 있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당시의 단군문화의 원형을 복원시킬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정신의 복원입니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고 그리고 더 많은 연구가 있다면 추가하여 단군조선 때의 궁중대회와 같은 것을 재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곧 한국민족문화의 문예부흥이라 일컬어질 것입니다. 일제하에 국풍이 죽었다 하여 국학을 일으키고자 한 대표적 민속학자인 손진태 같은 분이 열심히 국학을 했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국학이 아니라 일본학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국학은 본래의 우리 국학이 아니라 유사품 국학입니다. 국학을 우리 국학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군문화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민족문화의 다른 부분을 재해석하는 방향이 필요합니다. 또 전세계에 퍼진 단군문화의 유사품들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미나 하와이에서 그 유사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와이에 가면 폴리네시안이 있는데 꼭 무당과 같아 보이더군요. 또 하와이 민속촌에는 붉은띠, 푸른띠, 노란띠로 삼색띠가 걸려있는 고목이 있는데, 이건 우리 무속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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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2.11.21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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