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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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에게 빼앗긴 스파르타 튠다레오스 왕의 왕권을 복귀하는 데 힘썼다. 또한 쉼없이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아켈루스는 헤라클레스의 가장 힘든 경쟁상대였는데 그는 뱀과 황소로 연신 변신하며 헤라클레스와 대적하였다. 그러나 결국 헤라클레스가 그의 뿔 하나를 껸어 패배시키자 창피해서 물 속으로 후퇴하였다. 뿔은 요정이 집어 꽃과 과일을 담아 승리자의 손에 넘겨지고 풍요의 여신에게 바쳐졌다. 어떤 설에 따르면 이후 아켈루스는 강으로 변하고 이 강은 에피로스를 흘렀다고 한다. 핀도스 산에서 시작하는 이 상은 아이톨리아에서 아카르나니아 지류가 생기고 이오니아해로 흘러갔다.
승리를 거머쥔 헤라클레스는 아이톨리아의 왕 오이네우스의 아름답고 절찬을 받는 공주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 일시 장인의 영토 칼류돈에서 머물렀으나 주먹을 휘둘러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이 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에 좋아하던 멧돼지 수렵도 포기하고 칼류돈을 떠나 트라키아의 케육스 왕궁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도중에 에우네노스 땅이 수해로 범람하여 개울을 건너는데 마침 켄타우로스족 네소스가 친절하게도 데이아네이라를 돕겠다 하여 맡겼다. 그러나 개울을 건넌 네소스는 강제로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해서 강탈하였고, 아내의 비명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급히 활을 당겨 독화살로 네소스를 쏘아 죽였다. 숨이 끊어지지 직전 네소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앙심을 품고 데이아네이라에게 남편의 외도를 막는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다. 즉 자신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급히 덮치느라고 흘린 체액을 받아 기름에 섞어 남편의 내의에 바르면 남편이 다른 상대와는 절대로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느 것이었다. 네이아네이라는 얼떨결에 갖고 다니던 기름병에 이 피와 체액을 재빨리 받아 놓았다. 화급하게 개울을 건너온 헤라클레스는 아내를 부축이며 길을 떠났다. 트라키아의 왕 케육스는 헤라클레스 부부를 정에 넘치게 환대하고 칼류톤에서 본의 아니게저지른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는 전에 이을레 쪽에서 자기의 청혼을 거절한 데 대한 불쾌한 심정을 못내 씻어내지 못하고 결국은 이올레의 아비 에우류토스와 전쟁을 별여 왕과 세 아들을 죽게 하였다. 이올레는 아비의 살인자 존에 넘어갔는데 헤라클레스가 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아게 되자 그를 따라 오이타 산으로 갔다. 헤라클레스는 그 곳에 제단을 짓고 제우스 신에 업숙히 제물을 바칠 차비를 차렸다. 그리고 우선 의식용 의복을 갖추기 위하여 리카스를 데이아네이라에 보냈다.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이 이올레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고 네소스의 말이 생각나 피와 체액이 섞인 기름을 속옷에 발라 의복과 함께 보냈다. 결국 이 의복으로 갈아입은 헤라클레스는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지고 레르나 숲의 히드라 독소가 뼛속으로 스며들었음을 알아차렸다. 죽음의 옷을 벗으려 애쓰지만 이미 늦어 고통과 고뇌 속에서 네소스의 속임수를 경솔히 믿은 데이아네이라, 잔인한 에우류스테우스, 질투심과 증오심이 심한 헤라 여신등에게 격렬히 저주와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혼란이 계속된느 상태에서 그는 제우스의 가호를 탄원하며 활과 화살을 필록테테스(파이안 혹은 휼로스라고도 함)에게 주고 오이타 산 정상에 장작더미를 쌓게 하였다. 그리고 그 더미 위에 네메아의 사자털 가죽을 펴고 누운 후 곤봉에 머리를 기대었다. 필록테테스에게 나무더미에 불을 지르도록 지시한 헤라클레스는 아무 공표감이나 두려움 없이 불붙는 자신의 주위를 쳐다 보았다. 천공에서 이를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주위의 신들에게 헤라클레스는 지상에서 많은 괴물들과 역적들을 퇴치한 공적이 있으니 불사의 신체를 천상으로 끌어오겠다고 주장하였다. 여러 신들은 제우스 신의 결정에 찬동하고, 불타는 장작더미는 곧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이윽고 인간부분이 다 타고 없어졌을 때 헤라클레스는 네 필이 끄는 수레에 실려 새벽녘 천상으로 운반되었다. 승천할 때 벼락과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였고, 모여 있던 친구들은 헤라클레스의 뼈나 재도 보지 못하였다. 그 후 나무더미가 있던 곳에 쌓아 헤라클레스의 공적을 기념하였다. 악토르의 아들 메노이테오스는 황소, 야생 수퇘지. 산양을 제단에 공양하였고 오포스 사람들은 매년 의식을 갖추어 제를 올렸다. 곧 헤라클레스는 숭배는 널리 퍼져나가고 그간 완강하게 그를 학대한 헤라 여신도 노여움과 원한을 잊고 자기 딸 헤베를 배우자로 주었다.
헤라클레스를 숭배하는 지방과 노역을 완수한 고장에서는 그를 여러 별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각지에 그의 신전을 세워 힘의 신으로 숭배하였다. 로마의 헤라클레스 신전에는 개와 날짐승은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가우데스의 헤라클레스 신전에는 여자와 돼지는 전혀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또한 페니키아인은 제단에 맛있는 메추리를 바치는데, 헤라클레스 신이 꿈을 관장하여 병자난 허약자를 신전에서 자게 하면 꿈에 영감을 받아 활력을 찾는다고 믿었다. 신전에는 백양나무를 바쳤다.
헤라클레스는 일반적으로 팔다리가 균형 잡히고 힘이 있는 나신이나, 네메아 산에서 잡은 사자의 털가죽을 걸치고 손에 마디가 굵은 곤봉을 잡고 기대서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귀염둥이 에로스와 같이 서서 화살과 곤봉을 부러뜨리는 상으로도 표현되는데 이것은 영웅의 사라에 빠진 신경을 암시하는 것이다. 무장한 옴팔레가 질책하고 헤라클레스는 비웃음을 받으며 여자시녀와 같이 실을 뽑고 있는 상도 있다.
헤라클레스의 아들들은 각처에서 치른 수많은 사건만큼이나 많고 그 후손들은 헤라클레스가 죽은 후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역을 석권하였다. 특히 메가라와의 소생 데이콘과 테리마코스, 아스튜다미아의 크테시포스, 아우토노에의 팔레몬, 파르테노페의 에우에레스, 데이아네이라의 글류키소네테스와 규네오스 및 오디테스, 칼키오페의 테살로스, 에피카스테의 테스탈로스, 아스튜오케의 틀레폴레모스, 에키드나의 아가튜르소스, 겔로노스 및 스큐테스 등은 유명한 아들들이다. 전 생애를 통해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노력한 헤라클레스를 사람들이 진실된 미덕과 경건성의 모범을 보여준 영웅이자 불사신으로 추앙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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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2.03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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