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폭력에 대한 인식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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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개인주의의 오류와 여성에 대한 이유있는 폭력 - 인식론적 분석

1. 정신의 분리주의와 개인주의의 오류

2. 여성의 자아

3. 여성 자아들의 이중적인 굴레

4. 여성에 대한 이유있는 폭력

5. 여성과 소녀에 대한 합리화된 구타

6. 여성에 대한 합리화된 매춘

7. 대안적인 패러다임 : 나누는 실존의 표상들

3. 섹스, 돈 그리고 도덕성 - 사회학적인 분석

4. 한국 상황에서의 회고

본문내용

성의 정치학은 개인의 정치학과 집단적인 관심 사이에서의 계약을 이끌어오는데 실패했다. 불충분하게 계획된 성윤리의 영역에서, 자본의 응답은 국가의 침묵을 수반한 채, 에로시티즘, 성적 쾌락과 욕망을 파고 들어, 상업화된 쾌락과 에로티시즘 양산에 성공했다. 또한 자본의 침투를 통해, 성의 정복'이라는 새로운 과정이 시작되어 거대한 규모로 사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는 새로운 성에 관한 담론을 창조하는데, 바로 포르노그래픽 매체와 광고 산업을 통해 독점된 것이었다.
여기서, 성해방이라는 새로운 요소들은 담론 안에 화합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성 주관에 관한 초국적인(transnational) 이미지로 전환되는데, 이는 전시대에 금지되고 경멸된 것들을 인정하자는 것이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상업적인 형태와 거대한 스케일로서 제공되는 새로운 성적 조항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성해방에 의해 진보적인 성향의 성도덕성이 나오기 보다는 오히려 성과 에로티시즘에서 지배'라는 새로운 형태가 부상하게 되고 이것이 서구 사회 뿐만 아니라 이 사회로부터 지배당한 사회로까지 파급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해결은 쉽지 않다.
4. 한국 상황에서의 회고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일제가 만든 건물이라는, 한국의 氣를 막아놓기 위해 만들었다는 경복궁 앞을 지나가면서, 언제나 장사진을 이룬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을 보면서도, 그들의 밝은 웃음 뒤에는 밤에 주무르고 놀 한국 기생들에 대한 설레임이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때, 문득 내가 속한 한국이라는 곳도 도덕적 판단이 중지되어 버린 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온 제주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고 흥분해하는 제주발 TV기자의 환성, 그리고 현지 사람들의 흐뭇한 미소들. 일본인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느낌없이 외면해 버리기만 했던 나. 정말 이 땅이야 말로, 그리고 한국의 현실이야말로 도덕적 판단이 중지해버린 땅이 아닐까? 여기는 허구의 場이 아닌 현실 세계인데도 말이다.
도덕적 판단의 중지는 땅'만의 현실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착취당하는 창녀들의 몸'에게서 조차도 우리의 뇌세포를 닫아버렸던 것이다. 1973년에 동경 방문 중에 있었던 민모 문교부장관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차마 입에 담기 조차 민망하다.
한국여성은 경제건설에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서 몸을 바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기생 호스테스가 대거 일본에 진출해서 몸을 바치며 밤 낮으로 분투하는 애국충정은 훌륭한 것이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편(1983), 「기생관광-전국4개 지역실태조사 보고서」,카톨릭출판사, pp48-49
잘못 이해하면 당시 민모 장관은 Truong에 의해 매춘의 노동을 사회적인 재생산과정에 포함시킨 선구자적인 인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착각일 따름이다. 민모 장관은 창녀들의 사회적인 재생산과정에서 생긴 생산물을 갈취해가는 악덕 포주일 뿐이다.
다시 Truong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여전히 그녀의 이론에서 몇 가지 의문들을 쉽사리 지울 수가 없다. 그녀의 이론에서 말하는, 창녀들과 관광에 종사하는 기생들에게 그들의 사회적인 재생산 과정에의 참여를 인정하고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 그것이 현실에 있어서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임은 동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만일 그런 식으로 우리가 매춘의 노동을 인정해준다면, 그것은 결국 매춘을 영속화시키고 합리화시키는 방편이 되지 않을까? 또한 여전히 남성들은 여성 앞에서는 참을 수 없노라고 하는, 그렇기 때문에 가족 즉 아내와 떨어져 있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해소시켜줄 여성들을 가까이 두고 있어야만 적성이 풀리다고 하는 다소 남성의 세계관에서 만들어진 남성 위주의 사고를 타당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또한 사회학적인 전망에 있어서도 과연 매춘의 사회적 과정을 어떤 가치기준으로 평가해야할까? 매춘이 사회적인 재생산과정에 포함되기 위해서 가치기준'에서의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현대 사회학에 있어서 절차인데, 문제는 현대 사회학의 가치 기준에 있어서 위에 합당한 가치를 매기는 것이 상당히 난해하는 점이다.
물론 이는 사회학의 문제이니 여기서는 신학적인 전망해봄으로서 본 고를 마치겠는데 매춘의 성적 노동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 여성의 삶은 하나의 전기적인 성격을 띈다. 특히 정신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필자가 보기에는 하나의 민중의 사회전기이다. 이러한 정신대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 운동이라는 두 이야기의 합류가 일어날 때, 진정한 민중의 신학'이라는 한국적 상황의 신학이 정립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이렇게 민중신학을 그려보다가도 갑자기 앞이 혼탁해지는 느낌이 든다.모신발회사의 광고가 떠오른다. 흑백의 화면에 부시시 얼굴을 찌그리고 서있는 여성, 한국 정신대 여자. 그런데, 갑자기 들려오는 TV 화면의 멘트는 보는 자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든다. 정복할 것인가? 정복당할 것인가? 우리가 정복당한다고 가정했을때, 돌아올 여파는 마치 일제 치하의 악몽처럼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이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도 우리는 비극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만약 우리가 남의 나라를, 그것이 무력을 통해서든 경제'를 통해서든 정복했을 때, 그럴 경우 일본이 우리의 한국 여성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 역시 우리가 정복한 그 나라 여성들을 마음껏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광고는 말하지 않는가? 그 광고가 주는 숨은 메시지는 이런 것이 아닌가?
아무개 나라의 경제를 정복하자! 그러면 그 나라의 여자들도 우리가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
지금도 경제 대국 일본의 무수한 남자들이 단지 한국의 기생과 파티를 벌이기 위해 그리고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밤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밤낮없이 한국을 드나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정신대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한 창녀들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함을 이용하여, 그물망처럼 윤락녀들의 노동의 산물인 그녀들의 화대'를 이중삼중으로 뜯어가는 일군의 무리들이 우리 안에 있는 한, 정신대에 나갈 것을 선동했다는 우리의 지식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에 의한 정신대의 비극은 계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악순환이 아닐까?

키워드

여성,   폭력,   자아
  • 가격2,3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3.01.24
  • 저작시기2003.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0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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