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베토벤에생애
(1) 본(Bohn) 시대(1770 - 1792)
(2) 비인 : 초기
(3) 다가 오는 청각 장애
(4) 베에토벤과 극장
(5) 입신
(6) 베토벤과 여성들
(7) 높아가는 명성
(7) 마지막 시기
2) 베토벤의 음악적 연대기- 年度 主要 記錄
3) 베토벤에 작품에 대하여
4) 유명한 베토벤의 곡
5) 베토벤의 사상 단편
6) 베토벤에 대한 EPISODE
(1) 본(Bohn) 시대(1770 - 1792)
(2) 비인 : 초기
(3) 다가 오는 청각 장애
(4) 베에토벤과 극장
(5) 입신
(6) 베토벤과 여성들
(7) 높아가는 명성
(7) 마지막 시기
2) 베토벤의 음악적 연대기- 年度 主要 記錄
3) 베토벤에 작품에 대하여
4) 유명한 베토벤의 곡
5) 베토벤의 사상 단편
6) 베토벤에 대한 EPISODE
본문내용
는 집이 아닌 옛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집 주인이 크게 놀라서 "아니 짐은 어떻게 하시고?" 하고 물으니 "아뿔사, 짐을 까먹었군!"하고 정신 을 차리기 시작하였는데 사실 베토벤은 짐만 까먹은게 아니라 '이사' 그 자체도 까먹었던 것이다.
괴테 무안 준 베토벤의 익살
자존심도 강하고 익살맞은 소리도 잘하는 문호 괴테는 그의 근거지 바이마 르에선 하느님과도 같은 존재였고 세상에 그가 존경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음악가 베토벤 뿐이었다. 괴테가 몇 주 동안의 체류예정으로 빈에 왔다. 그 기간 중에 두 사람은 때때로 만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베토벤은 서곡 <에그 몬트>를 막 완성했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괴테는 멜랑콜린한 감상에 곧 잘 빠져들어가는 음악의 거장 베토벤과 함께 프라타 공원을 산책하고 있으 려니까 지나가는 시민들이 전부 두 사람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경의를 표 하는데 모자를 벗고 일일이 답례하는 것은 괴테뿐, 베토벤은 무슨 상념엔가 사로 잡힌 듯 먼 하늘만 응시하면서 답례도 안했다. 손이 너무 자주 모자에 가야하니 마침내 괴테도 귀찮아져서 이렇게 말했다.
"선량한 시민들이란 따분한 존재들이구먼. 덮어놓고 자꾸 인사만 하니 말이오."
그러자 겨우 베토벤도 입을 열었다.
"저어, 괴테 선생, 제가 이렇게 말한다 고 해서 혹시 섭섭해 하지는 마십시오. 그들의 인사는 전부 저한테 하는 거랍 니다."
반기는 이유인즉
베토벤이 나이 30을 넘어서 귓병이 악화되고 위장도 좋지 않아 여름철이 되면 빈 근교의 시골로 나가서 요양 겸 한철을 보내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칼스바트, 테프리츠, 바덴 라다운, 하일리겐슈타트, 헤첸도르프, 뫼드링트 등이 곧잘 가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런 곳에 체류중에도 제멋대로여서 여관 이나 하숙집 주인들이 나중에는 그를 퍽 귀찮게 여기고 숙박을 정중히 거절 했다. 이유는 "손님이 차서 빈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집만이 그를 언제나 흔쾌히 받아들였다. 뫼드링크의 어느 여인숙 주인이 바로 그 사 람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베토벤을 각별히 반긴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베토벤이 가가 막히는 악상이 떠올랐는데 가까이에 종이가 없을 때는 빈지문에다 오선을 긋고 악보를 적는 습관이 있었기에, 베토벤이 떠나 간 후에 주인은 악보가 적힌 그 빈지문을 떼어서 수집가한테 비싼 값으 로 팔아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역을 제자한테서 전 해 들은 베토벤은 오래간 만에 파안대소 하면서 깔깔 웃더라는 것이다.
(Piano Concerto NO.5 "Emperor" OP. 73)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이 곡은 1809년 이 38세 때 작품으로 그의 원숙기를 대표하는 최대의 걸작이다. 당시 그 는 빈의 성벽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는데 때마침 빈은 나폴레옹 군의 공격을 받아 큰 혼란이 일 어났었다. 수습하기 어려운 큰 소동이 일어나 도시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지만, 베토벤은 지하실에 피신한 신세 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이 악상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그가 작곡에 태 연히 열중했던 이때 만들어진 곡이 이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이다. 한 번은 그가 프랑스군의 장교와 마주쳤을 때, 주먹을 불끈 주고
"내가 만일 전술에 대한 것을 대위법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을 그대로 두지 않았을 텐 데.."
라며 분개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곡의 제목인 황제 는 누가 먼저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곡의 당당함과 호탕함이 왕의 품 격과 같다는 의미에서 딱 맞는 제목이라 하겠다. 작곡자 베토벤도 이 제목의 유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어느 특정한 황제와의 관련도 없지만,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최고라는 뜻에서도 이렇게 불려진다는 해석도 있다. 이는 고금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틀어 규모나 내용상 황제의 지위에 가 장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이다.
알레그로 모데라토, 4/4 박자의 소나타 형식인 제1악장은 피아노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연주가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호탕하기까지한 힘찬 클라이맥스도 인상적이다. 아다지오 운 포코 모소, 4/4 박자이자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인 제2악장은 이 곡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다. 절묘한 아름다움이 마음속에 스며드는 황홀경을 느낄 수 있고, 그 위에 종교적인 엄숙함이 곡의 분위기 를 긴장시키면서 빛을 발한다. 비애를 하나의 예술적인 영감으로 승화시킨 베토벤의 불굴의 정신 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론도 알레그로, 6/8박자의 제3악장은 피아노의 특징이 잘 발휘된 곳 으로 피아노로만 표현할 수 있는 수법의 극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전 관현악이 연주되는 부분 의 힘찬 감동은 모두 베토벤의 원숙기의 경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웅장하게 잘 진행되는 이 곡은 마치 교향곡을 듣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 기도 한다. 피아노 독주의 부분도 마지막까지 관현악 악기들을 상대로 해서 당당하게 자신의 음 색을 발휘하고 있다.
이 곡의 초연은 라이프찌히에서 이루어졌고 청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지만, 베토벤의 도시 빈 에서 가졌던 (피아노 교본의 작가로 유명한) 체르니가 연주한 연주회는 평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베토벤이 살아 있는 동안은 빈에서 이 곡이 다시는 연주되지 않았다는 이상한 이야기 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 '피아노가 연주하는 교향곡' 같은 이 곡은 그 후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 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udwig van
L Beethoven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운명 이상의 것이 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내리치는 나무꾼의 도끼의 울림이 숲 전체에 울려퍼지는 것처럼, 베토벤의 이 위대한 외침은 전인류의 마음 속에 울려퍼졌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각을 잃어버리는 고통 속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았으나, 스스로 불행한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고자 하였다. 자신의 운명과 결탁해서 자기의 패배로부터 하나의 승리를 만들어낸 베토벤. 이 고독한 승리는 한 인간의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들의 것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타인을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 소망, 그의 불행이 자신 이외의 인간에게 유용하게 되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
괴테 무안 준 베토벤의 익살
자존심도 강하고 익살맞은 소리도 잘하는 문호 괴테는 그의 근거지 바이마 르에선 하느님과도 같은 존재였고 세상에 그가 존경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음악가 베토벤 뿐이었다. 괴테가 몇 주 동안의 체류예정으로 빈에 왔다. 그 기간 중에 두 사람은 때때로 만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베토벤은 서곡 <에그 몬트>를 막 완성했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괴테는 멜랑콜린한 감상에 곧 잘 빠져들어가는 음악의 거장 베토벤과 함께 프라타 공원을 산책하고 있으 려니까 지나가는 시민들이 전부 두 사람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경의를 표 하는데 모자를 벗고 일일이 답례하는 것은 괴테뿐, 베토벤은 무슨 상념엔가 사로 잡힌 듯 먼 하늘만 응시하면서 답례도 안했다. 손이 너무 자주 모자에 가야하니 마침내 괴테도 귀찮아져서 이렇게 말했다.
"선량한 시민들이란 따분한 존재들이구먼. 덮어놓고 자꾸 인사만 하니 말이오."
그러자 겨우 베토벤도 입을 열었다.
"저어, 괴테 선생, 제가 이렇게 말한다 고 해서 혹시 섭섭해 하지는 마십시오. 그들의 인사는 전부 저한테 하는 거랍 니다."
반기는 이유인즉
베토벤이 나이 30을 넘어서 귓병이 악화되고 위장도 좋지 않아 여름철이 되면 빈 근교의 시골로 나가서 요양 겸 한철을 보내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칼스바트, 테프리츠, 바덴 라다운, 하일리겐슈타트, 헤첸도르프, 뫼드링트 등이 곧잘 가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런 곳에 체류중에도 제멋대로여서 여관 이나 하숙집 주인들이 나중에는 그를 퍽 귀찮게 여기고 숙박을 정중히 거절 했다. 이유는 "손님이 차서 빈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집만이 그를 언제나 흔쾌히 받아들였다. 뫼드링크의 어느 여인숙 주인이 바로 그 사 람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베토벤을 각별히 반긴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베토벤이 가가 막히는 악상이 떠올랐는데 가까이에 종이가 없을 때는 빈지문에다 오선을 긋고 악보를 적는 습관이 있었기에, 베토벤이 떠나 간 후에 주인은 악보가 적힌 그 빈지문을 떼어서 수집가한테 비싼 값으 로 팔아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역을 제자한테서 전 해 들은 베토벤은 오래간 만에 파안대소 하면서 깔깔 웃더라는 것이다.
(Piano Concerto NO.5 "Emperor" OP. 73)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이 곡은 1809년 이 38세 때 작품으로 그의 원숙기를 대표하는 최대의 걸작이다. 당시 그 는 빈의 성벽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는데 때마침 빈은 나폴레옹 군의 공격을 받아 큰 혼란이 일 어났었다. 수습하기 어려운 큰 소동이 일어나 도시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지만, 베토벤은 지하실에 피신한 신세 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이 악상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그가 작곡에 태 연히 열중했던 이때 만들어진 곡이 이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이다. 한 번은 그가 프랑스군의 장교와 마주쳤을 때, 주먹을 불끈 주고
"내가 만일 전술에 대한 것을 대위법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을 그대로 두지 않았을 텐 데.."
라며 분개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곡의 제목인 황제 는 누가 먼저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곡의 당당함과 호탕함이 왕의 품 격과 같다는 의미에서 딱 맞는 제목이라 하겠다. 작곡자 베토벤도 이 제목의 유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어느 특정한 황제와의 관련도 없지만,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최고라는 뜻에서도 이렇게 불려진다는 해석도 있다. 이는 고금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틀어 규모나 내용상 황제의 지위에 가 장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이다.
알레그로 모데라토, 4/4 박자의 소나타 형식인 제1악장은 피아노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연주가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호탕하기까지한 힘찬 클라이맥스도 인상적이다. 아다지오 운 포코 모소, 4/4 박자이자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인 제2악장은 이 곡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다. 절묘한 아름다움이 마음속에 스며드는 황홀경을 느낄 수 있고, 그 위에 종교적인 엄숙함이 곡의 분위기 를 긴장시키면서 빛을 발한다. 비애를 하나의 예술적인 영감으로 승화시킨 베토벤의 불굴의 정신 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론도 알레그로, 6/8박자의 제3악장은 피아노의 특징이 잘 발휘된 곳 으로 피아노로만 표현할 수 있는 수법의 극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전 관현악이 연주되는 부분 의 힘찬 감동은 모두 베토벤의 원숙기의 경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웅장하게 잘 진행되는 이 곡은 마치 교향곡을 듣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 기도 한다. 피아노 독주의 부분도 마지막까지 관현악 악기들을 상대로 해서 당당하게 자신의 음 색을 발휘하고 있다.
이 곡의 초연은 라이프찌히에서 이루어졌고 청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지만, 베토벤의 도시 빈 에서 가졌던 (피아노 교본의 작가로 유명한) 체르니가 연주한 연주회는 평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베토벤이 살아 있는 동안은 빈에서 이 곡이 다시는 연주되지 않았다는 이상한 이야기 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 '피아노가 연주하는 교향곡' 같은 이 곡은 그 후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 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udwig van
L Beethoven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운명 이상의 것이 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내리치는 나무꾼의 도끼의 울림이 숲 전체에 울려퍼지는 것처럼, 베토벤의 이 위대한 외침은 전인류의 마음 속에 울려퍼졌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각을 잃어버리는 고통 속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았으나, 스스로 불행한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고자 하였다. 자신의 운명과 결탁해서 자기의 패배로부터 하나의 승리를 만들어낸 베토벤. 이 고독한 승리는 한 인간의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들의 것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타인을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 소망, 그의 불행이 자신 이외의 인간에게 유용하게 되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