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 죠몬시대에서 전국시대 까지의 일본 역사개관
마치는 말
* 참고자료
본론 - 죠몬시대에서 전국시대 까지의 일본 역사개관
마치는 말
* 참고자료
본문내용
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오자, 겨우 2천명의 군사로 기습작전을 펼쳐 승리를 거뒀다. 이 싸움의 승리로 그는 일본 통일을 노리는 무사 대열에 올라섰다. 이 싸움에서 그는 그 유명한 화승총 연사법을 사용했다. 당시 화승총은 한번 발사한 후 재장전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는 화승총 부대를 3개조로 편성해 연속 사격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는 이러한 조직적인 총격전 외에도 병농일치이던 당시에 직업군인을 양성해 열 배나 되는 적을 무찌르며 유력한 다이묘들을 차례로 굴복시켰다. 마침내 그는 1573년 교토에서 아시카가 요시아키 쇼군을 추방함으로써 235년 만에 무로마치 바쿠후를 멸망시키고, 아즈치에 자신의 성을 짓고 천하통일에 몰두했다. 이어 1575년 시다라가하라 벌판에서 벌어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3만, 도쿠가와의 8천, 도합 3만8천의 연합군을 형성해 당시 승승장구하며 전국 통일을 노리던 다케다 가쓰요리의 1만5천 가이군을 일거에 궤멸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남은 모리군과의 일전을 위해 소수의 병사를 이끌고 교토의 혼노지에 머물던 중, 1582년 6월 2일 새벽녘에 심복이었던 아케치 미츠히데의 기습을 받았다. 혼노지가 포위되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그는 절에 불을 지르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오다 노부나가의 난폭한 행동에 몇 번이나 모욕을 당해 원한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이로써 천하통일을 노리던 야망의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는 그 목전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휘하의 가장 유력한 무장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처단하고 오사카를 근거지로 경쟁 세력을 차례로 꺾어나갔다. 그는 오와리노쿠니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으나, 무사가 되어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며 차츰 출세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간바쿠와 태정대신에 오름으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거대한 오사카성을 세워 권위를 과시하는가 하면 최대의 경쟁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담판을 통해 굴복시키고 에도 지방으로 몰아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침내 일본을 통일하고, 1백년 가까이 계속되던 센고쿠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의 토지와 수확량을 조사해 모든 생산물을 쌀로 환산하는 고쿠다카를 실시하고 다이묘에게는 군역을, 농민에게는 연공을 내게 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시작했다.
또한, 가타나가리를 시행하여 농민의 무기를 몰수하고, 히토바라이령을 내려 부시가 쵸닝(상공인)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사농공상의 엄격한 계급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1592년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과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의 7년 전쟁을 일으켰지만 조선 정복에 실패하고 1598년 병으로 죽었다.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약소 다이묘의 하나였지만, 차츰 세력을 키워 나갔다. 히데요시가 죽었을 때 그는 이미 60세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그는 도요토미 정권 내에서 수년간 대립해오던 다이묘들의 갈등을 이용하여 천하를 손에 넣을 속셈이었다. 그는 도요토미가 죽자, 무력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문치파를 역적으로 몰아 군사를 일으켰다. 전세는 곧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7만)과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8만)으로 나뉘고 양 진영은 대혈전을 벌였다. 이것이 1600년에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이다. '천하를 건 전투'로 불린 이 싸움은 전국의 다이묘들이 두패로 갈라져 벌인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싸움의 하나였다. 이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이시다 미츠나리를 선봉으로 한 친도요토미 다이묘들을 격파함으로써 일본 천하는 그의 차지가 되었다. 그는 1603년 마침내 쇼군이 되어 자신이 다이묘로 있던 에도(현재의 도쿄)에 바쿠후를 설치했다.
마치면서....
일본의 역사에서 주안해야할 것은 천황의 존재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국가에서는 전래 없는 오직 단 하나의 핏줄로 이어진 천황은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이 일본을 이해하는 '코드'의 첫번째 단계인건 확실하다. 일본역사를 보고 일본에 가졌던 편견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일본을 단지 피해주의적인 입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취적인 사상은 배워야 할것이라고 생각이든다. 우리나라가 지금껏 대륙권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유교주의의 폐해가 많았는데 일본의 역사와 사상은 결코 유교주의에 종속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고, 한편으로 많은 변동이 있었지만 천황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게 지금의 일본을 있게 한것 같다. 우리나라 또한 다른 나라와의 교류속에서도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국민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자세하게 쓴다고 썼는데 대충 흩어보니 참 엉성한 리포트가 되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전국시대 삼인방 얘기를 이렇게나 많이 써버리다니... 각 시대마다 각각의 문화와 비중이 모두 중요한건데 저는 제가 읽고 싶고 재미있어하는 부분만 강조하다보니 정치나 군사적인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균형을 못 잡은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단순히 리포트를 써내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보다는 어느정도 일본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심도 있게 알게된 부분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다. 또한 일본의 역사는 계속 한 왕권만으로 지속되어서 시대 구분이 매우 어려웠는데 정치적 이야기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시대가 넘어가도 구분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많은 역사를 리포트로 담아내는건 정말 어려웠지만, 일본역사 책을 두권이나 들고 쉬는 시간 마다 읽었던 것은 정말 재밌었고 보람있는 경험이었다
참고 서적
이노우에 키요시 저 , 차광수 역 , <<일본인이 쓴 일본의 역사>> , 대광서림 출판 , 1995년
박경희 저 , <<연표와 그림으로 보는 일본사>> , 일빛 출판, 1990년
참고 인터넷 사이트
http://myhome.naver.com/japan815/ (박복원 일본정보뱅크)
http://www.j-cafe.pe.kr/ (소윤주의 일본여행 까페)
http://guidejapan.net/ (GUIDE JAPAN)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휘하의 가장 유력한 무장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처단하고 오사카를 근거지로 경쟁 세력을 차례로 꺾어나갔다. 그는 오와리노쿠니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으나, 무사가 되어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며 차츰 출세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간바쿠와 태정대신에 오름으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거대한 오사카성을 세워 권위를 과시하는가 하면 최대의 경쟁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담판을 통해 굴복시키고 에도 지방으로 몰아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침내 일본을 통일하고, 1백년 가까이 계속되던 센고쿠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의 토지와 수확량을 조사해 모든 생산물을 쌀로 환산하는 고쿠다카를 실시하고 다이묘에게는 군역을, 농민에게는 연공을 내게 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시작했다.
또한, 가타나가리를 시행하여 농민의 무기를 몰수하고, 히토바라이령을 내려 부시가 쵸닝(상공인)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사농공상의 엄격한 계급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1592년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과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의 7년 전쟁을 일으켰지만 조선 정복에 실패하고 1598년 병으로 죽었다.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약소 다이묘의 하나였지만, 차츰 세력을 키워 나갔다. 히데요시가 죽었을 때 그는 이미 60세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그는 도요토미 정권 내에서 수년간 대립해오던 다이묘들의 갈등을 이용하여 천하를 손에 넣을 속셈이었다. 그는 도요토미가 죽자, 무력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문치파를 역적으로 몰아 군사를 일으켰다. 전세는 곧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7만)과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8만)으로 나뉘고 양 진영은 대혈전을 벌였다. 이것이 1600년에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이다. '천하를 건 전투'로 불린 이 싸움은 전국의 다이묘들이 두패로 갈라져 벌인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싸움의 하나였다. 이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이시다 미츠나리를 선봉으로 한 친도요토미 다이묘들을 격파함으로써 일본 천하는 그의 차지가 되었다. 그는 1603년 마침내 쇼군이 되어 자신이 다이묘로 있던 에도(현재의 도쿄)에 바쿠후를 설치했다.
마치면서....
일본의 역사에서 주안해야할 것은 천황의 존재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국가에서는 전래 없는 오직 단 하나의 핏줄로 이어진 천황은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이 일본을 이해하는 '코드'의 첫번째 단계인건 확실하다. 일본역사를 보고 일본에 가졌던 편견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일본을 단지 피해주의적인 입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취적인 사상은 배워야 할것이라고 생각이든다. 우리나라가 지금껏 대륙권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유교주의의 폐해가 많았는데 일본의 역사와 사상은 결코 유교주의에 종속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고, 한편으로 많은 변동이 있었지만 천황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게 지금의 일본을 있게 한것 같다. 우리나라 또한 다른 나라와의 교류속에서도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국민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자세하게 쓴다고 썼는데 대충 흩어보니 참 엉성한 리포트가 되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전국시대 삼인방 얘기를 이렇게나 많이 써버리다니... 각 시대마다 각각의 문화와 비중이 모두 중요한건데 저는 제가 읽고 싶고 재미있어하는 부분만 강조하다보니 정치나 군사적인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균형을 못 잡은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단순히 리포트를 써내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보다는 어느정도 일본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심도 있게 알게된 부분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다. 또한 일본의 역사는 계속 한 왕권만으로 지속되어서 시대 구분이 매우 어려웠는데 정치적 이야기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시대가 넘어가도 구분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많은 역사를 리포트로 담아내는건 정말 어려웠지만, 일본역사 책을 두권이나 들고 쉬는 시간 마다 읽었던 것은 정말 재밌었고 보람있는 경험이었다
참고 서적
이노우에 키요시 저 , 차광수 역 , <<일본인이 쓴 일본의 역사>> , 대광서림 출판 , 1995년
박경희 저 , <<연표와 그림으로 보는 일본사>> , 일빛 출판, 1990년
참고 인터넷 사이트
http://myhome.naver.com/japan815/ (박복원 일본정보뱅크)
http://www.j-cafe.pe.kr/ (소윤주의 일본여행 까페)
http://guidejapan.net/ (GUIDE JA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