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문학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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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작가로서의 자기설정

Ⅱ. 염상섭 소설을 읽는 한 가지 방법 

Ⅲ. 삶을 추동하는 두 가지 욕망과 심리적 이중성

Ⅳ. 염상섭 소설의 현재성
 
Ⅴ. 맺음말-`생활사?로서의 문학의 한계와 새로운 과제

본문내용

오늘의 관심뿐만 아니라 염상섭 자신의 소설관을 동시에 함축한다.
염상섭이 『삼대』 연작을 쓰기 직전의 시기에 그의 눈앞에 전개되었던 중요한 사건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간회운동?(1927~31)과 ?원산총파업?(1929)이다. 이 가운데 신간회운동의 기초가 되고 있는 포용정신은 병화에게 보낸 덕기의 편지에 얼마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병화의 계급투쟁적 편협성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투쟁은 극복의 전수단은 아닐세. 포용과 감화도 극복의 유산탄만한 효과는 있는 것일세. 투쟁은 전선적(全線的) 부대적(部隊的) 행동이라 하면 포용과 감화는 징병과 포로를 위한 수단일세. 포용과 감화도 투쟁만큼 적극적일세.? 그러나 원산총파업에 대해서는 그 어디에서도 편린조차 암시되지 않고 있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노동운동에 가담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노동자의 집단적 운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지니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점은 그의 태생적?계급적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생활사?로서의 그의 문학관 자체의 한계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삼대』 연작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그 비합법성을 반영한 듯 전면화되지 않고 암시되기만 한다. 그것은 소설의 배면에 도사리고 있다가 소설의 뒷부분에서 ?검거선풍?을 통해 불안한 일상의 틀을 깨고 일시에 전면화된다. 이 소설에서 룸펜이나 테러리스트처럼 보이는 사회주의자들의 크고작은 암약은 언제나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사실은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운동-- 특히 서울 인텔리겐치아들의-- 의 지리멸렬성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생활을 중시하는 작가 자신의 반감이 투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소설들의 주인공인 조덕기(이원영)는 친구인 김병화(김동국)에게 이념적으로는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의리상 운동자금을 대주고 검거선풍이 일어날 때마다 이중의 피해를 입는다. 그는 연루된 사람들을 빼내는 자금까지 스스로 떠맡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영에 대해 일본인 안달외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주의자요? 그러면 소위 심파(원조자)요? 나 보건대 그 아무것도 아니오. 주의로 말하면 민족주의자라 하겠지만, 부르주아로서 몰락해가는 인텔리가 아니오. 그가 김동이와의 교분으로 돈 (…) 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가족들이라든가 친지들까지라도 신변이 안전치 못하니 이 일을 어떡하는냐 말요.?
이 소설에서 이원영과 김동국의 세대는 희망이 없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고, 그 뒷세대인 완식과 조정애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완식은 김동국의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피신하고 있는 조정애에게 그들과 좀 떨어져 있다가 자기와 함께 새로운 길을 가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의 내용으로 볼 때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길은 김동국과 이원영을 동시에 지양하는 것으로만 제시되고 있지만,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면서 더디지만 확실하게 세상을 바꾸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와같은 미래적 담론은 젊은이의 고뇌어린 사유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실감을 가지고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파산지경에 빠진 이원영과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채련 사이의 대화에서 생활에 뿌리내린 정상적인 삶의 가능성이 엿보이며, 이런 부분이야말로 염상섭 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피적 감정에 빠진 이원영이 인텔리와 쁘띠부르즈와의 비애와 약점을 들먹이며 자신의 무능을 계급적 약점으로 일반화하자, 채원은 이렇게 말한다. ?최후의 일 전을 쓰고 나서 물로 뛰어들어가는 뒷모양과, 두 손 탁탁 털고 일어나서 저자로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앞모양이 다른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원영은 결국 완식을 교육시킬 돈이 있다면 철공장을 내주어 자수성가하기를 바라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 소설의 끝부분에 와서야 비로소 생산성과 결부된 돈의 실체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원영에게는 이제 돈이 없고, 형사들에게 연행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Ⅴ. 맺음말-'생활사?로서의 문학의 한계와 새로운 과제
염상섭은 자신의 비평적 글들을 통해 문학의 일차적인 효과는 그 예술성이 지닌 감동 또는 감화인바, 이것을 통해 집단적인 공동감정이나 공동행위, 나아가서는 투쟁성이 ?표현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문학상의 집단의식과 개인의식」)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삼대』 연작은 우리에게 어떠한 감동을 주고 있으며, 그 안에 얼마만큼의 투쟁성을 응축시켜놓았는가? 이 작품들은 당대의 생활현실을 있는 그대로 폭넓게 그려냄으로써 그 시대의 삶에 배어 있는 시대성을 드러내는는 데에는 빼어난 성과를 거두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대로 수락할 수 없는 식민지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큰 범주의 운동성을 내재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것은 작가의 관심이 서울 중류층 지식인들의 삶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조차도 중도적 지식인의 시각으로 조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그의 시대의식은 진정한 의미의 역사의식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소설들은 당대현실의 변화 가능성을 당대의 삶 속에서 찾아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운동성도 내재하지 않은 채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은 무수하게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을 멜러드라마로 만들고, 김홍근(『무화과』의 인물)과 같이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인물을 만들어내 소설진행상의 촉매로 써먹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제 일상성과 역사성의 결합이라는 모호한 태도까지 반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사회변혁에 대한 방법론을 문학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작가의 현실의식만큼은 일상의 틀을 깨부술 수 있는 방법론으로 무장될 필요가 있다. ?생활사? 또는 ?일상성?의 문학은 결국 극복해야 할 부정성을 내재한 생활 또는 일상의 논리로 회귀할 가능성을 많이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염상섭의 소설들을 좀더 면밀히 연구할 때,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학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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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19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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