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그들은 과연 친구였더냐?
2. 소품으로 처리되고 있는 시대와 여성
3. 서열관계가 바탕이 되는 친밀함
4. 폭력-그 더럽고 지저분한 경험 감추기
2. 소품으로 처리되고 있는 시대와 여성
3. 서열관계가 바탕이 되는 친밀함
4. 폭력-그 더럽고 지저분한 경험 감추기
본문내용
와 힘을 가지고 상대방을 제압해가며 화려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너무 그냥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힘을 갖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건달이라면 왠지 찜찜하겠죠. 다른 이들의 폭력은 올바르지 못하더라도 내가 휘두르는 폭력은 사나이들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연인을 지키기 위해서 등의 의미부여가 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그 건달에 동일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이 준석과 동수는 다른 건달과 달리 가족, 친구에 대해 고민하는 겉으론 무섭지만 실제론 정이 많은 녀석으로 비쳐져야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전 사실 이런 것들에 공감하기도 힘들었고 영화를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되고 물리적인 힘 앞에서 나약하게 찌그러질 수밖에 없는 나의 모습을 그리게 되며 불편했었죠. 물론 폭력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이번 대우차 노조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을 놓고 노동자들도 폭력을 행사했으니 똑같이 나빠라고 보는 건 정말 순진하면서 위험한 생각이죠. 경우에 따라서 폭력 자체보다 그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상황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어쨌든 폭력 자체를 놓고 봤을 땐 그걸 행사하는 이나 당하는 이나 참 더럽고 지저분한 느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에 대한 경험들은 그렇게 얘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무용담이 되면서 그런 경험을 함께 했다는 것에서,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것에서 남성들이 하나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느냐, 그런 경험들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중요치 않게 되거나 별달리 얘기되지 않게 됩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일을 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에 비해 특별한 존재가 되게 되고 그 경험을 해보지 못한 이들은 그에 대해 함부로 얘기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폭력적이고 급박한 일상 자체가 동경의 대상이 될 순 없습니다. 그런 현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뒷 배경에 대해 함께 얘기하지 않고선 폭력이 싫다며 현실의 사회적인 역관계를 외면해버리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남성이 겪게 되는 더럽고 소외된 경험-고등학교 친구들 간의 분화된 그룹, 분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선생님, 동료집단으로부터 별의미 없이 당하게 되는 폭력들..그리고 자신이 또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모습 - 을 '친구 아이가'란 한 마디로 애써 사나이들의 끈끈하고 찐한 우정이 뒤섞인 낭만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니..사실 이 영화가 '비트'만큼 그렇게 단순하진 않습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나뉘어진 모습들, 배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 - 의 원인을 조금은 들쳐보려 하니까요.
하지만 여전히도 문제는 그냥 개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고, 폭력적이고 급박한 상황에서 왜 그렇게 되었느냐의 질문은 중요하지 않은 가운데 주인공들은 그들이 친구였다고 안심하게 믿을 수 있는 어렸을 때 기억을 계속 떠올리며 자위를 하고 있을 뿐인 것이죠.
그렇기에 이 준석과 동수는 다른 건달과 달리 가족, 친구에 대해 고민하는 겉으론 무섭지만 실제론 정이 많은 녀석으로 비쳐져야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전 사실 이런 것들에 공감하기도 힘들었고 영화를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되고 물리적인 힘 앞에서 나약하게 찌그러질 수밖에 없는 나의 모습을 그리게 되며 불편했었죠. 물론 폭력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이번 대우차 노조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을 놓고 노동자들도 폭력을 행사했으니 똑같이 나빠라고 보는 건 정말 순진하면서 위험한 생각이죠. 경우에 따라서 폭력 자체보다 그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상황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어쨌든 폭력 자체를 놓고 봤을 땐 그걸 행사하는 이나 당하는 이나 참 더럽고 지저분한 느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에 대한 경험들은 그렇게 얘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무용담이 되면서 그런 경험을 함께 했다는 것에서,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것에서 남성들이 하나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느냐, 그런 경험들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중요치 않게 되거나 별달리 얘기되지 않게 됩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일을 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에 비해 특별한 존재가 되게 되고 그 경험을 해보지 못한 이들은 그에 대해 함부로 얘기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폭력적이고 급박한 일상 자체가 동경의 대상이 될 순 없습니다. 그런 현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뒷 배경에 대해 함께 얘기하지 않고선 폭력이 싫다며 현실의 사회적인 역관계를 외면해버리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남성이 겪게 되는 더럽고 소외된 경험-고등학교 친구들 간의 분화된 그룹, 분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선생님, 동료집단으로부터 별의미 없이 당하게 되는 폭력들..그리고 자신이 또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모습 - 을 '친구 아이가'란 한 마디로 애써 사나이들의 끈끈하고 찐한 우정이 뒤섞인 낭만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니..사실 이 영화가 '비트'만큼 그렇게 단순하진 않습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나뉘어진 모습들, 배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 - 의 원인을 조금은 들쳐보려 하니까요.
하지만 여전히도 문제는 그냥 개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고, 폭력적이고 급박한 상황에서 왜 그렇게 되었느냐의 질문은 중요하지 않은 가운데 주인공들은 그들이 친구였다고 안심하게 믿을 수 있는 어렸을 때 기억을 계속 떠올리며 자위를 하고 있을 뿐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