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잔다르크`속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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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영화소개 ◈
잔다르크 영화 줄거리(감독; 뤽베송, 주연:밀라 요보비치)

◈ 백년전쟁과 배경 ◈
백년전쟁(百年戰爭)
백년전쟁의 의의
영국사
프랑스사의 백년전쟁

◈ 중세유럽의 경제·사회적 배경 ◈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1.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2. 상인이 나타나다
3. 도시로 가다

◈ 토론주제 ◈

본문내용

성지를 탈환한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지중해 연안의 이슬람 교도들과 동유럽의 여러 부족을 상대로 한 약탈이 목적이었으며, 그들의 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십자군 운동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집단은
첫째, 교회였다. 기독교국의 영토가 넓어질 수록 교회의 권력과 부도 커지므로 세력 확장을 꾀할 수 있었다.
둘째, 이교도국의 인근에 있는 비잔틴 제국과 비잔틴 교회(그리스 정교회)였다. 그리스 정교회는 자기 영토에 이슬람 교도들이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단으로 보았다.
셋째, 전리품을 원했거나 빚을 진 귀족과 기사, 유산이 적거나 전혀 없었던 젊은 자제들이었다. 그들은 토지와 부를 얻을 기회로 생각했다.
넷째, 이탈리아의 도시들인 베네치아,제노바,피사였다. 이 도시들은 주로 무역 도시였기 때문에 소아시아 연안 도시들과 무역할 수 있는 특권을 원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십자군의 결과는 일시적이었다. 왜냐면 이슬람 교도들이 결국은 예루살렘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업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나게 중요했다.
십자군은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장하는 상인 계급을 유럽 대륙 전역에 퍼지게 함으로써 침체된 서유럽 봉건제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십자군은 봉건제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중세 초기의 지방 주시는 소규모였고, 대부분이 농산물인 지역 상품을 취급했으나, 12-15세기 정기시는 대규모였으며, 알려진 모든 세계에서 들어오는 도매 상품을 취급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화폐 거래가 점차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은행가 등의 독립적인 직업이 자리를 잡았다.
화폐 사용은 상품 교환을 더 쉽게 함으로써 상업을 촉진시켰고, 상업 발전은 다시 화폐 거래를 확대하는 반작용을 함으로써, 중세 초기의 자급자족하는 장원의 자연 경제는 상업이 팽창하는 세계의 화폐 경제로 변모했다. 화폐를 매개로 해서 국지 시장, 또는 자급자족에 그쳤던 봉건 시대의 경제 체제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3. 도시로 가다
상업이 급속하게 확대된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도시들은 크게 성장했다. 상업이 크게 확대되면서 일자리도 많아졌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갔다.
봉건 체제는 전체적으로 속박의 분위기였던 반면, 도시의 상업 활동은 전체적으로 자유의 분위기였다. 상업은 본질상 활동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장벽을 견디지 못하기에, 장원의 생활과는 다른 도시 생활에 어울릴 새로운 방식이 생겨나야 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경제 체제는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사회.정치 체제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 놓기 마련인 것이다.
상인들은 자신들을 속박하는 봉건적 제약에 대응하여, '길드' 또는 '한자'라는 조합으로 뭉쳤다. 도시민들은 마음대로 다닐 자유를 원했고, 토지를 마음대로 처분할 자유를 원했고, 자신들의 법정에서 스스로 재판하기를 원했으며, 독자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과세하기를 원했다. 이는 도시민들이 정치적, 경제적 자유와 권리를 요구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요구는 그들이 가진 경제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처음에 영주는 도시에 대한 자신의 권리 가운데 일부를 도시민들에게 팔았지만, 나중에는 조금씩 더 팔게 되었고, 그런 일이 계속되면서 마침내 도시는 사실상 영주에게서 독립하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사회적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성공했지만, 그러한 변화가 언제나 타협을 통해 평화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역사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과 부유한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하려 한다. 이들은 단지 특권 유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상 유지가 되지 않으면 정말로 사회 질서 전체가 붕괴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도시들은 폭력으로 자유를 획득했다. 도시민들은 영주들을 타도하려고 투쟁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업 확대에 방해가 되는 낡아 빠진 봉건적 관행의 일부를 완화하려고 투쟁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영주를 비롯한 봉건 귀족을 타도하고 그들을 지탱해 주던 중세적 정치 질서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도시는 도시에 대한 간섭에서 자유롭기를 원했고, 몇 세기 뒤에는 원하던 것을 얻었다. 도시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상인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도시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었고, 상인들의 길드나 한자는 온갖 특권 (도시의 도매업 독점)을 획득했다. 그에따라 이제는 상인들이 과거의 귀족들 대신 특권 계층이 되었다. 이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사용할 차례가 된 것이다.
길드의 목적은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었다. 과거 봉건 영주들의 터전이 토지였다면, 상인의 기반은 시장이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도시에 들어오고 나가는 상품은 무엇이든지 길드의 손을 거쳤다. 길드 상인들이 이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그래서 여러 도시에서 상업을 독점하기 위해서 당국과 유착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관리를 포섭하기도 했고, 직접 관리가 되기도 했다. 독점적 특권을 손에 넣으려 그토록 갈망했고,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토록 주의를 기울인 상인 길드는, 조합원 각자가 지켜야하는 일련의 수많은 규칙으로 조직을 유지했다. 상인과 도시가 획득한 권리는 상업이 부의 원천으로서 더욱 중요해졌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도시 상인의 지위는 화폐 재산이 토지 재산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더욱 중요해졌음을 보여 준다.
봉건시대에는 토지만이 부의 척도였으나, 상업이 확대되면서 활력있고 유동적인 화폐가 부의 척도로 올라섰다. 봉건 시대 초기에 토지를 소유한 성직자나 기사는 사회적 위계의 맨 위에 있었으며, 사회적 위계의 맨 아래에 있는 농노의 노동으로 살아갔지만, 이제는 매매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중간 계급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중간 계급이 소유한 화폐는 경제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권리까지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봉건 시대에는 부의 유일한 원천인 토지 소유가 성직자나 귀족에게 지배 권력을 주었으나, 이제 부의 새로운 원천인 화폐 소유는 떠오르는 중간계급에게 부분적인 정부참여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토론주제 ◈
우리나라와 유럽 봉건제도의 차이점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3.10.23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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