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고대 중국의 결혼 풍습
1. 고대 중국의 혼례의 유래와 절차
2. 고대 결혼의 다양한 유형
3. 중국 지역별 고대 결혼 의식
Ⅱ. 중국 젊은이들의 연애
1. 연애에 대한 가치관
2. 과거 젊은이들의 연애
3. 현재 젊은이들의 연애
4. 부작용
5. 한국과의 차이
6. 배우자 선택의 기준 변화
Ⅲ. 소수 민족의 결혼 풍습
1. 꺄오산족
2. 따이족
3. 두롱족
4. 라후족
5. 리쑤족
6. 먀오족
7. 모쑤어족
8. 바이족
9. 와족
10. 이족
11. 지눠족
12. 투쟈족
13. 하니족
Ⅳ. 현대의 결혼 절차 및 풍습
1. 새로운 혼인법
2. 결혼식의 절차
3. 새로운 혼례의식과 풍습
4. 결혼비용
5. 변화된 관습 남아있는 관습
6. 이혼 붐
7. 한국과의 공통점과 차이
1. 고대 중국의 혼례의 유래와 절차
2. 고대 결혼의 다양한 유형
3. 중국 지역별 고대 결혼 의식
Ⅱ. 중국 젊은이들의 연애
1. 연애에 대한 가치관
2. 과거 젊은이들의 연애
3. 현재 젊은이들의 연애
4. 부작용
5. 한국과의 차이
6. 배우자 선택의 기준 변화
Ⅲ. 소수 민족의 결혼 풍습
1. 꺄오산족
2. 따이족
3. 두롱족
4. 라후족
5. 리쑤족
6. 먀오족
7. 모쑤어족
8. 바이족
9. 와족
10. 이족
11. 지눠족
12. 투쟈족
13. 하니족
Ⅳ. 현대의 결혼 절차 및 풍습
1. 새로운 혼인법
2. 결혼식의 절차
3. 새로운 혼례의식과 풍습
4. 결혼비용
5. 변화된 관습 남아있는 관습
6. 이혼 붐
7. 한국과의 공통점과 차이
본문내용
.5%로 급증했으며 10만원 이상을 쓴 가정도 19%나 됐다. 이에 반해 중국의 결혼적령기 남녀의 월수입 합계는 절반정도가 1천∼2천 수준인데 구체적으로는 1천원 미만이 4.8%, 1천원 이상 2천원 미만이 48.7%, 2천원 이상이 24.8%로 나타났다.
결혼비용을 자력으로 장만하는 젊은이들의 비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93년 까지만도 60% 이상이 제 힘으로 결혼을 했으나 94년에는 48%, 95년에는 31.7%로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의 부담이 늘었고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혼남녀의 20% 정도가 평균 1만∼2만원의 혼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중국의 일부 청춘남녀들은 감히 연애할 생각을 못하고, 몇 년씩 연애해 온 사이라도 결혼을 결행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결혼식이 시골보다는 보통 작고 검소한 편이다. 그리고 참석하는 하객들도 부모와 친척과 연관 있는 먼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결혼당사자들의 직장 동료나 친구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결혼의 초점도 가족 구성원보다는 당사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결혼식 후에 떠나는 신혼여행은 보통 3일 정도로 되어 있다.
5. 변화된 관습 남아있는 관습
많은 지역에서 당시까지만 해도 민며느리제도나, 조혼, 보쌈 등의 악습이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당시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내용에는 ''20살 큰언니 신랑은 1살짜리, 매일 밤 요강을 침대 밑에 놓네. 남편이 때릴까 무서운 게 아니라 발로 너를 차서 침대 밑으로 떨어뜨릴까 그것이 겁나네"라는 가사 속에도 당시 조혼의 풍속을 읽을 수 있다. 사실, 부모에 의한 정혼이나 조혼, 매매혼, 보쌈 등은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낮 익은 풍경이지만, 우리와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러한 악습이 중국은 50년대 말까지도 여전히 행해졌다는 것이고, 지나치게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로 인해 결혼식에 많은 비용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일련의 전통혼례들을 보면, 예를 들어 화베이 지방의 농촌에서는 남녀쌍방이 결혼에 동의한 이후 여자 측에서 매파를 통해 남자 측의 집을 구경한 이후 만일 만족하면 곧바로 정혼을 하는 관습이 있었고, 정혼 시 여자 쪽 부모와 가족들이 남자 쪽 집에 가면 남자 쪽에서 연회를 베풀게 되어 있었다. 상호 면식이후 남자 쪽 부모는 미래의 며느리에게 돈을 주는데 이것은 소위 '찌엔미엔리'(見面禮)라고 불리는 전통으로, 아직까지도 남방지역에는 이러한 풍습이 보편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결혼당일이나 결혼전날에 여자 쪽에서 각종 결혼도구나 신부물건들을 먼저 남자 쪽 집에 보내게 되는데, 신랑의 동생이나 신부 쪽 가족의 남자는 빨간색이나 분홍색으로 행운을 상징하는 수가 놓여진 그림을 문 앞에 내걸게 되고 남자 쪽에서는 신부측에 짝수의 액수가 담 '홍빠오'(紅包)를 건네는 풍속이 있다. 이러한 습관은 대도시에서 모두 남아있는 전통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 쪽에서 결혼 전에 여자 측에 '함'을 건네고 여자 측에서 이러한 '홍빠오'를 건네는 풍속과는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6. 이혼 붐
중국속담에 ''사찰 열은 허물어도 혼인 하나는 깨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이혼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화해시켜 그 혼인이 유지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중국에 이혼율이 낮은 것은 아마 사람들이 이혼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사이에 개혁·개방의 흐름 속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991년에 북경시의 이혼율은 14%로 올라갔다. 이혼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합의 이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어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계 기관의 통계에 의하면, 북경에서 합의 이혼을 한 사람이 1986년에는 2424쌍뿐이었는데, 1987년에는 3192쌍, 1988년에는 4188쌍, 1989년에는 5121쌍으로 늘어났고, 1990년에 와서는 6000쌍에 이르렀다. 거의 해마다 1000쌍씩 증가한 셈이다. 그런데 1990년 법원에서 판결한 이혼은 7000여건이다. 합의 이혼과 법원에서 판결한 이혼의 숫자가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이혼하는 경우가 절대적이었다. 식구가 되지 않으면 원수가 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혼을 하려면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 법정에 나가서 너 죽고 나 살기로 누가 옳고 그런지를 판가름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자면 당사자 쌍방이 정력과 재력을 많이 소모하게 될 뿐 아니라 식구, 친척, 동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니 그 파급 효과가 대단히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혼사유로는 개혁개방정책이 진행됨에 따라 불륜의 경우와, 외지로 벌이를 나가는 것이 이혼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농촌에서 도시로 나왔다가 다른 이성과 사귀게 되는 경우이다. 지난 수년동안 중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해외유학이나 해외 취업이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은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7. 한국과의 공통점과 차이
비교적 점점 결혼식의 모습이나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개방화되어 서양식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름없이 점차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 가지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점을 살펴보자면, 결혼비용에 있어 신랑측에서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신부측에서 약간의 살림자금을 보태주어 한국과는 반대이다.
또 중국에 남아있는 풍습 중에 결혼당일이나 결혼전날에 여자 쪽에서 각종 결혼도구나 신부물건들을 먼저 남자 쪽 집에 보내게 되는데, 신랑의 동생이나 신부 쪽 가족의 남자는 빨간색이나 분홍색으로 행운을 상징하는 수가 놓여진 그림을 문 앞에 내걸게 되고 남자 쪽에서는 신부측에 짝수의 액수가 담 '홍빠오'(紅包)를 건네는 풍속이 있다. 이러한 습관은 대도시에서 모두 남아있는 전통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 쪽에서 결혼 전에 여자 측에 '함'을 건네고 여자 측에서 이러한 '홍빠오'를 건네는 풍속과는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1993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가 26.9세이며 여자가 23.7세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보다 결혼 연령이 조금 (2∼3세) 낮은 편이다.
결혼비용을 자력으로 장만하는 젊은이들의 비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93년 까지만도 60% 이상이 제 힘으로 결혼을 했으나 94년에는 48%, 95년에는 31.7%로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의 부담이 늘었고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혼남녀의 20% 정도가 평균 1만∼2만원의 혼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중국의 일부 청춘남녀들은 감히 연애할 생각을 못하고, 몇 년씩 연애해 온 사이라도 결혼을 결행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결혼식이 시골보다는 보통 작고 검소한 편이다. 그리고 참석하는 하객들도 부모와 친척과 연관 있는 먼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결혼당사자들의 직장 동료나 친구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결혼의 초점도 가족 구성원보다는 당사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결혼식 후에 떠나는 신혼여행은 보통 3일 정도로 되어 있다.
5. 변화된 관습 남아있는 관습
많은 지역에서 당시까지만 해도 민며느리제도나, 조혼, 보쌈 등의 악습이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당시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내용에는 ''20살 큰언니 신랑은 1살짜리, 매일 밤 요강을 침대 밑에 놓네. 남편이 때릴까 무서운 게 아니라 발로 너를 차서 침대 밑으로 떨어뜨릴까 그것이 겁나네"라는 가사 속에도 당시 조혼의 풍속을 읽을 수 있다. 사실, 부모에 의한 정혼이나 조혼, 매매혼, 보쌈 등은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낮 익은 풍경이지만, 우리와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러한 악습이 중국은 50년대 말까지도 여전히 행해졌다는 것이고, 지나치게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로 인해 결혼식에 많은 비용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일련의 전통혼례들을 보면, 예를 들어 화베이 지방의 농촌에서는 남녀쌍방이 결혼에 동의한 이후 여자 측에서 매파를 통해 남자 측의 집을 구경한 이후 만일 만족하면 곧바로 정혼을 하는 관습이 있었고, 정혼 시 여자 쪽 부모와 가족들이 남자 쪽 집에 가면 남자 쪽에서 연회를 베풀게 되어 있었다. 상호 면식이후 남자 쪽 부모는 미래의 며느리에게 돈을 주는데 이것은 소위 '찌엔미엔리'(見面禮)라고 불리는 전통으로, 아직까지도 남방지역에는 이러한 풍습이 보편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결혼당일이나 결혼전날에 여자 쪽에서 각종 결혼도구나 신부물건들을 먼저 남자 쪽 집에 보내게 되는데, 신랑의 동생이나 신부 쪽 가족의 남자는 빨간색이나 분홍색으로 행운을 상징하는 수가 놓여진 그림을 문 앞에 내걸게 되고 남자 쪽에서는 신부측에 짝수의 액수가 담 '홍빠오'(紅包)를 건네는 풍속이 있다. 이러한 습관은 대도시에서 모두 남아있는 전통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 쪽에서 결혼 전에 여자 측에 '함'을 건네고 여자 측에서 이러한 '홍빠오'를 건네는 풍속과는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6. 이혼 붐
중국속담에 ''사찰 열은 허물어도 혼인 하나는 깨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이혼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화해시켜 그 혼인이 유지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중국에 이혼율이 낮은 것은 아마 사람들이 이혼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사이에 개혁·개방의 흐름 속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991년에 북경시의 이혼율은 14%로 올라갔다. 이혼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합의 이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어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계 기관의 통계에 의하면, 북경에서 합의 이혼을 한 사람이 1986년에는 2424쌍뿐이었는데, 1987년에는 3192쌍, 1988년에는 4188쌍, 1989년에는 5121쌍으로 늘어났고, 1990년에 와서는 6000쌍에 이르렀다. 거의 해마다 1000쌍씩 증가한 셈이다. 그런데 1990년 법원에서 판결한 이혼은 7000여건이다. 합의 이혼과 법원에서 판결한 이혼의 숫자가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이혼하는 경우가 절대적이었다. 식구가 되지 않으면 원수가 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혼을 하려면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 법정에 나가서 너 죽고 나 살기로 누가 옳고 그런지를 판가름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자면 당사자 쌍방이 정력과 재력을 많이 소모하게 될 뿐 아니라 식구, 친척, 동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니 그 파급 효과가 대단히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혼사유로는 개혁개방정책이 진행됨에 따라 불륜의 경우와, 외지로 벌이를 나가는 것이 이혼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농촌에서 도시로 나왔다가 다른 이성과 사귀게 되는 경우이다. 지난 수년동안 중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해외유학이나 해외 취업이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은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7. 한국과의 공통점과 차이
비교적 점점 결혼식의 모습이나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개방화되어 서양식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름없이 점차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 가지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점을 살펴보자면, 결혼비용에 있어 신랑측에서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신부측에서 약간의 살림자금을 보태주어 한국과는 반대이다.
또 중국에 남아있는 풍습 중에 결혼당일이나 결혼전날에 여자 쪽에서 각종 결혼도구나 신부물건들을 먼저 남자 쪽 집에 보내게 되는데, 신랑의 동생이나 신부 쪽 가족의 남자는 빨간색이나 분홍색으로 행운을 상징하는 수가 놓여진 그림을 문 앞에 내걸게 되고 남자 쪽에서는 신부측에 짝수의 액수가 담 '홍빠오'(紅包)를 건네는 풍속이 있다. 이러한 습관은 대도시에서 모두 남아있는 전통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 쪽에서 결혼 전에 여자 측에 '함'을 건네고 여자 측에서 이러한 '홍빠오'를 건네는 풍속과는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1993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가 26.9세이며 여자가 23.7세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보다 결혼 연령이 조금 (2∼3세) 낮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