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몰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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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 본 론
Ⅰ. Rome공화정의 몰락
Ⅱ. Rome제국의 멸망

3. 결 론

본문내용

충성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영농들은 아에 스스로 대귀족에게 토지를 바치고 그들의 소작농이 되어, 무거운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로써 서방속주에는 점차 중앙권력과는 동떨어진 독립당국에 가까운 대영지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의 생산품이 중앙으로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으며, 황제들은 관직매매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려 하였으나, 장기적 안목으로는 오히려 관직매매는 세원을 감소시킬 따름이었다.
걷힌 세금도 생산적 투자보다는 전제정하에서 비대해진 관료제와 군대를 유지하기에 벅찬 형편이었다. 서방 속주들의 대지주들은 점차로 독립적인 왕국에 가까와 졌으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희박해져 갔다. 대지주 귀족층들은 국가기구를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에 부합하게만 조종하였으며, 국가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게르만족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은 간단하게 충성의 대상을 로마 중앙정부에서 이민족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배계급내 분열만이 아니라, 하층 피지배계층의 봉기 또한 로마제국을 밑에서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거운 세금과 착취였다.그것은 국가와 귀족의 착취에 대한 하층민들의 반항이었다. 5세기가 시작될 무렵 국제와 지대의 견딜 수 없는 중압, 원로원의 복권후 변경의 황폐와 동요의 와중에 반란은 계속 확대되었고, 심지어 국가를 건설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서방의 사회적 양극화는 암울한 2중주의 피날레로 끝났으니, 제국은 밖으로부터 일격이 가해지기 전에 이미 안에서부터 위 아래에서 분열되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3. 결 론
로마제국의 멸망원인은 이미 공화정후기에 그 싹이 뿌려져 있었다. 노예제 대농장제도는 공화정후기에 성립되어 초기로마제국의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번영은 노예제 생산양식의 한계를 억압과 강제와 착취로 가리운 번영이었다. 노예제 생산양식은 생산력에 한계가 왔으며, 노예제생산양식의 성립에 따른 자영농의 희생과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 채 제정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노예제 생산양식의 한계는 결국 소작농제도를 만들어내었으나, 소작농제도의 출현은 중앙과 지방의 분열, 즉 중앙의 황제권력과 지방의 대토지귀족간 정치적 분열을 가져왔다. 재정위기와 정치적 혼란을 타개하려던 제국말기 황제들의 노력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욱 악화시켰으며, 농업과 상업, 도시를 피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농업과 상업의 쇠퇴는 더 이상 로마제국이 유지될 수 있는 하부구조를 상실해나갔고, 하부구조에서 쇠퇴에 반비례하는, 하부구조의 튼튼한 받침이 필요한 중앙집권적 국가의 수립기도는 오히려 하부구조를 더욱 쇠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앙과 지방간의 분열을 조장하였다. 이러한 상하부구조의 쇠퇴와 혼란, 분열은 한 국가가 유지/발전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완전히 상실케 한 것이었다.
게르만족의 침입이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것이 아니다. 로마제국은 이미 게르만족이 침입하기 이전에 썩은 고목이 쓰러지듯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게르만족의 침입은 쓰러져가는 고목을 한 번 밀어주어 더 빨리 무너지게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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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08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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